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책이 있는지 몰랐어요.
마리쌤의 독서교육 이야기
독서교육에 대한 경험을 남겨 보려고 합니다.
교직을 그만두고 시간이 지날수록 10년 간 아이들과 쌓았던 소중한 경험들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실천했던 독서교육 경험을 편하게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부터 브런치에 조금씩 기록해두기로 마음 먹었다.
4학년. 참 좋지만, 참 어려운 그들.
모든 학년 아이들이 다 귀하고 사랑스럽지만, 나에게 4학년은 언제나 행복을 주는 아주 귀한 학년이었다.
학교 생활에는 이미 익숙해졌고, 사춘기는 오려고 준비를 하는 중이라 아직은 대처할 만(?) 하며, 선생님의 말을 따르려는 의지가 있고, 친구들과 협동 능력도 높고.. 다양한 면에서 우수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4학년은 독서교육 측면에서는 어렵고도 중요한 학년이다.
독서에 대한 흥미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권해지는 책은 점점 어려워지고, 이해해야 하는 수준도 높아지고, 교과서나 선생님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잘 읽는 친구들과 못 읽는 친구들 사이의 격차가 확연하게 벌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독서에 대한 동기가 감소되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2월 말.
책의 종류를 좀 다양하게 읽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취향이 분화되기 시작하는 시기이고, 수준이 나누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니 단순히 기관에서 나오는 권장도서를 비치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이론으로만 배웠던 영역별 읽기를 학급에 쉽게 안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급에서 장기간 실천이 이루어지려면 규칙이 단순해야 한다. 처음에는 과목별로 관련된 책을 지정해서 읽게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그 생각을 내려놓게 된 이유가, 그런 규칙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과목별이 아니면 어떻게 균형을 잡아주면 좋을까? 그러면서도 간단해서 나도 아이들도 지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다.
문학 텍스트와 정보 텍스트를 격주로 읽혀볼까?
긴 시간을 고민한 끝에, '격주로 문학 텍스트와 정보 텍스트를 번갈아 읽히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간단한 규칙이라 한 달 정도 연습하면 학급에 정착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우선 이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기존에 사비를 털어 만들어 가지고 다니던) 문학 작품 중심의 학급문고를 재편해야 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다양한 수준을 고려하여 1학년 수준의 책부터 6학년 수준의 책까지 고르게 준비했다.
책 읽기 시간을 고정하기 위해 1교시 시작하는 10분을 할애하여 매일 책을 읽는 것으로 규칙을 설정했다.
학생들은 학급 문고의 책을 보아도 좋고, 학교 도서관의 책을 빌려도 좋고, 어떤 방식이든 월요일에 지정된 종류의 책을 가져오도록 했다. 예를 들어, 3월 첫 주에는 문학 텍스트, 둘째 주에는 정보 텍스트를 준비하면 된다. 학생들에게 텍스트 유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학급 문고의 다양한 책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주었고, 학급 문고에 다른 색의 스티커를 붙여서 구분하기 쉽게 했다. 학기 중에 꾸준히 재미있는 책들을 권해주기도했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마다 어떤 종류의 책을 준비했는지 확인하고 읽도록 지도했다. 그런 과정을 2개월 정도 거치니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텍스트 유형에 맞는 책을 골라오기 시작했다. 텍스트 유형에 대한 개념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이들은 처음에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불만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안착되고 나니 점점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책이 있는지 몰랐어요'라는 한 학생의 말이었다. 이 학생은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지만 편독이 심한 학생이었다. 선생님의 약간의 강제로, 다른 종류의 책을 접하게 되면서 다른 종류의 책 중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정보 텍스트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였는데, 역사서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 그 해에 있었던 큰 변화였다. 반대로 동물에 큰 관심을 갖고 책을 열심히 읽던 학생이 '샬롯의 거미줄'을 읽고 이야기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긍정적인 변화였다.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책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 외에도 읽기 능력이 부족한 친구들에게 정보 텍스트 읽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문학 텍스트가 읽기에 재미있으니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로 문학 텍스트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그 전체를 소화하기 어려워서 오히려 흥미가 반감된다. 정보 텍스트는 내가 궁금한 부분을 찾아서 보거나 훑어보는 독서 방법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읽기 전략의 적용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읽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을 권하고 부분만이라도 읽도록 격려하면서 1년간 책을 놓지 않게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