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이은 Dec 18. 2021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경험, 그 '재미'에 대해.

얼마 , 좋은 기회가 있어 중학생들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만났습니다. 주최측(?)에서는 오프라인 수업을 하고 싶어 했지만,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메타버스 속에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을 기획하였고, 운이 좋게도 제가  프로젝트에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강의한 경험이 있습니다만, 중학생을 직접 만나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라 무척 떨렸습니다. (초등학생은 교사로 재직하면서, 대학생은 대학 교양과 전공 강의를 하면서, 고등학생은 대학생 시절 과외 교사로, 부모 교육으로 일반 대중 강연까지 모두 해보았거든요. 고등학생은 너무 오래되긴 했네요. ^^;) 그리고  공간도 저에겐 새로운, 메타버스 속이었기에 정말 긴장되었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업은 어땠냐고요?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메타버스 속 공간이 은근히 현장감이 느껴지고, 학생들과 진솔하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오랜만에 충전되는 기분을 맛봤어요. 설문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좋은 피드백도 많이 받았는데, 특히, 저와 현직 중학교 선생님이 함께 고심해서 고른 책에 대하여 좋은 피드백이 많아서 정말 기뻤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고른 책인지 설명하려면 말도 못 합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를 때까지 거의 서점과 도서관에서 살았지요. 독서와 상대적으로 안 친한 우리 중학생들에게는 어떤 책이 통할까 둘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처음 계획은 한 차례만 수업을 하기로 했는데, 첫 회 수업을 함께한 친구들의 반응이 정말 뜨거웠다며, 주최측에서 같은 내용으로 다른 친구들에게 수업을 해주길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신청을 받았는데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처음에 신청했던 학생들 몇 명이 다시 신청을 한 거예요! 이렇게 한 번 했던 같은 프로그램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니 놀랍고, 그리고 '다들 나처럼 재미있었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뭉클했습니다.


다시 신청한 학생들에게 아예 똑같은 활동을 하도록 할 수는 없기에, 학생들을 따로 조로 모아서 제가 약간의 심화 학습(?) 형태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제가 뭘 가르친 건 없고요,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는 가이드 역할만 했지요. 아이들과 수업을 마치고, 저와 따로 수다 떨고 싶은 친구들만 모여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왜 재신청을 했는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아이들 5명은 모두 '재미있어서'라고 말했습니다. 한 아이는 '그냥 재밌잖아요', 다른 아이는 '책 읽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야기 나누는 거 재밌더라고요', 다른 두 명의 아이는 '책 읽고 제가 아는 걸 이야기할 수 있어서 재밌어서 또 신청했어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한결 같이 '재미'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재미있다는 말을 듣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요? 재미있는 수업을 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다가, 스스로 '난 그다지 한 것 없고 깔깔 웃고, 감탄하는 반응만 해줬을 뿐인데'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너무 기뻐한 것에 혼자서 약간 민망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재밌다고 말하면 교사는 이렇게 자기가 잘한 줄 자주 착각합니다. ㅎㅎ)


중학생 하면, 다들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가요? 솔직히, 제가 교원 연수나 부모교육 강의하면서, 청소년들도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수업을 '재미'있어한다고 말하면 쉽게 잘 안 믿으십니다. 그건 아마도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어본 경험이 부족한 어른들이, 그들의 교사이고 부모여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을 믿고,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계획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자주 하다 보면 어른도 익숙해집니다. 저도 (아직 멀었지만, 여전히 자꾸 주도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많이 익숙해졌어요.



이제 메타버스를 닫을 시간이 되어 인사를 나누는데, 어떤 친구가 채팅으로 급히 물었습니다.

'선생님, 다음에 또 다른 책으로도 하나요? 저 또 신청하고 싶은데요!'

'어! 저도요!'


와 진짜. 이렇게 좋아한다고? 얘들아, 나도 믿을 수가 없다.





수업 내용은 저작권 문제로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온라인 수업 중 자신의 생각 쓰기를 너무어려워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