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게 뭐 별거야?

조금 느린 아이와 함께하는 책육아

by 권이은

- 자문자답의 달인




열린 교육과 하브루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열린 교육'이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초등학교를 다니셨거나 교직에 계셨던 분이라면 기억하실 텐데요. 열린 교육은 기존 교육의 규격화, 획일화에 반발하여 나온 용어예요. 이 말이 유행하면서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는데요. 그 당시 일부 학교에서 이 '열린 교육'이라는 말을 아주 재미있게(?) 해석했습니다. 어떻게 해석했냐고요? 기존에 굳게 닫혀있던 학교 문을 활짝, 교실 문도 활짝 열었어요.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요. 어떤 학교는 학교 담장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교실 벽을 무너뜨린 경우도 있었죠(오픈 스페이스). 나중에 그 부작용이 더 커서 다시 짓느라 고생한 학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일들이죠. *대구에서 시작된 '담장 허물기 사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린 교육 때문에 실제로 학교 담장을 무너뜨린 사례가 있었기에 그것을 쓴 것입니다. ^^



요즘 '하브루타'라는 말이 꽤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하브루타 교육법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물론 교육에서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은 정말 잘 알지요. (제가 '읽기 교육에서의 질문'을 주제로 쓴 학술 논문도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하브루타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생긴 역효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설 곳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어떤 교육 용어가 유행하면 그 말이 가진 표면적 의미만 인기가 있지, 그 용어가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하브루타 교육이 질문만 하는, 그런 방법이 아니죠. 그런데 그렇게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께서는 이런 교육적 유행(?)의 문제점을 생각하시면서 인기 있는 용어를 앞세워 자신의 교육 콘텐츠를 파는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점잖게 말해서 '비전문가', 경박하게 말해서 '사기꾼'이 활동하기 쉬운 분야가 교육 분야거든요.





아이가 쓸데없는 말만 해도 다 들어주어야 하나요


요즘 독서교육 관련 강의 콘텐츠들을 보면 아이와 책을 읽을 때 질문을 하라는 이야기, 대화를 시도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책 읽고 소통하기' 정말 중요합니다. 책은 혼자 읽을 때보다 소통하며 읽을 때, 의미 이해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대화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인지 부모교육을 할 때 '대화 시도 자체가 안되는데 어쩌죠', '아이가 쓸데없는 말만 해도 다 들어주어야 하나요'와 같은 질문이 종종 등장하지요. 저도 무척 공감합니다. 저희 집에도 책을 읽어주면, 책의 핵심 내용과 크게 관련 없는 중요하지도 않은 단어나 그림에서 연상되는 말 자기 멋대로 하고, 제가 뭐 물어보면 관심도 없는 아이가 살고 있거든요. (웃프네요. 허허. 다른 사람의 자식들(학생들)이랑은 대화하는 게 그렇게 잘 되고 즐거웠는데, 우리 애랑은 왜 이렇게 안되는지...) 다음은 제가 아이와 그림책 <산타 할머니>를 읽으면서 한 대화입니다.


'(책을 읽어주다가) 산타 할머니가 지금 뭐 타고 가고 있어?(자전거 타고 가고 있음)'

'산타 할머니! 할머니 좋아요.'


주로 이런 식의 대화로 이루어집니다. 제 질문은 앞부분만 듣고 뒷부분은 듣지도 않은 거고요. 그렇다 보니 위와 같이 부분적인 단어에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언어 발달이 늦거나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일단 질문 자체를 이해 못 하기도 하고, (위의 대화 경우에는) 집중하면 이해할 질문이지만, 엄마가 뭘 물어보든지 말든지 자기 생각에만 집중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저럴 때면 전문가인 저도 '대화는 무슨, 얼른 읽고 접자.'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들은 다시 물어보고, 정답이 나올 때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어보고 그러기도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정답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은 부모가 하기에 적절한 교육 방법은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는 기본적으로 인지적인 관계라기보다 정서적인 관계니까요. (선생님하고 그 점에서 아주 다르죠.) 부모가 너무 집요하게 물어보면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수도 있고,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더 소중하게




우리가 북도 치고 장구도 칩시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이럴 때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해야 합니다. 자문자답하는 거죠.



'(책을 읽어주다가) 산타 할머니가 지금 뭐 타고 가고 있어?(자전거 타고 가고 있음)'

'산타 할머니! 할머니 좋아요.'

'엄마도 산타 할머니가 좋아. 할머니가 자전거 타고 가고 있네. 정말 멋지다'



이렇게 아이의 대답을 받아주며, 적절한 응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아이가 수없이 저의 자문자답을 듣다 보면 어느샌가 제 답을 모델링해서 제대로 대답을 해줍니다.(그럴 때 느껴지는 희열!!!)

그렇게 부모의 자문자답이 쌓이고 쌓이면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전이*가 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질문을 생성할 수 있는 나름 능숙한 독자로 자라 갈 거예요.



스스로 묻고 답해보자.

어느 날 아이가 답해줄 것이다.


*전이

어떤 학습의 결과가 다른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해요. 아이의 수많은 독서 경험들이 아이가 스스로 다른 책을 읽을 때 영향을 줄 거예요. 아이의 향후 독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면, 독서 상황에서 무엇을 묻기만 하기보다 적절한 답도 많이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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