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아이를 낳아서, 아이가 태어난 후 많은 전집을 물려받기도 하고, 선물을 받기도 했어요. 독서교육 전공이긴 했지만, 출산 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전집,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정말 다양해졌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전집의 세계로 슬며시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만난 전집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우선 책을 한 권 한 권 고를 필요가 없었죠. 전집 종류를 일단 결정하면, 3-40권의 책이 바로 책꽂이에 꽂혔으니까요. 아이도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보였고, 제가 읽어주지 않아도 기계가 읽어주기도 하고(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실감 나는 음향 효과와 아름다운 목소리가 저를 유혹하더라고요.) 너무 편한 거예요. 육아가 정말 힘든데, 이 와중에 아이가 읽을 책까지 고르고, 또 직접 읽어주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서도, 유튜브 보여주는 것처럼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니! 너무 마음에 들었죠. (웃음)
거기다가 아이의 연령, 심지어 월령에 맞추어 추천해주기 때문에 마치 이 월령에 이 전집을 안 보여주면 문제가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가만히 앉아있어도 다양한 광고지들이 돌에 읽어야 하는 전집, 16개월에 들이면 좋은 전집, 계속해서 추천해 주었고, 저는 결제만 하면 되었지요. 주제도 얼마나 엄마가 바라는 주제들로 엄선했는지,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인성 동화, 수 개념이 필요하면 수 전집, 한글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싶으면 한글 전집.. 전집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더라고요.
저는 그림책을 정말 좋아합니다만, 이렇게 편한(?) 전집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어요. 특히 영아기 보드북은 종이 찢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책을 찢을 수 없게 하는 아주 좋은 재질이었죠. 돌 쯤 되는 아이가 본다는 유명한 전집은 중고로 구입하기도 쉬워서 금액도 저렴했고… 여러모로 정말 편했어요. 편한 것은 참 중독되기 쉬운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영업 사원 분을 찾아 적극적으로 전집을 구매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전집을 읽으면서 아이의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던 것을 조금 늦게 눈치챘어요. 한 세트가 20권이라면 20권이 세부 주제만 살짝 다르고 형식은 다 비슷비슷한데, 아이가 한 권도 빼지 않고 고르게 볼 수 없죠. 20권 중에서 한 두권만 읽어도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전집은 아이가 무척 좋아하지만, 어떤 전집은 완전히 손도 안대어서 거의 새 책이 3-40권씩 그냥 꽂혀있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새 책인 채로 있는데 저도 한 번 읽어볼 생각도 안 했다는 게 더 문제였지요.)
어느 날 문득 쌓인 새 전집을 바라보다가 나는 왜 이렇게 ‘나한테도 재미없는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과감하게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날 책을 거의 3-400권은 처분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세어보지 않았으니 어쩌면 그거보다 많았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뒤로 전집을 단 한 번도 사지 않았어요. 물려받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나서 잠깐 근처 도서관에 들러 혼자 그림책을 여러권 훑어보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책을 사진으로 기록했어요. 기록한 책을 바탕으로 새 그림책을 사기도 하고, 중고 그림책을 사기도 했지만, 구매에 실패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시중에 나온 그림책을 1-2개월에 5-6권 정도 사서 여러 번 읽어주고, 저도 그림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그림책이 더 좋아졌어요.
어떻게 구매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냐고요? 그 비결은! 바로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니까요. 아이가 안 읽었다고 해도 엄마인 제가 독자로 즐겁게 읽었으니 일단 구매 실패는 아니죠. (웃음)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영유아기 아이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도 결국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먼저 아이에게 그 그림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거실 식탁에서 혼자 읽기도 하니까 아이도 그 책에 관심을 보이고, 결국 함께 읽게 되더라고요. 저는 아이에게 읽어주기 전, 혼자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봐야지 생각하는 것도 좋았어요. 그렇게 그림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저에게도 독서의 기쁨을 주고요.
언젠가 한 번은 아이가 제가 아끼는 그림책을 찢어놓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나왔어요. 그렇게 글썽거리며 아이에게 엄마가 아끼는 책이 찢어져서 너무 속상하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그 뒤로 책을 찢지 않는 거예요! 그 전에는 아무리 찢지 말라고 말해도 찢었었거든요. (웃음) 진심은 정말 통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그림책의 재미가 아이에게 잘 전달될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전혀 전달되지 않아서 관심도 받지 못하고 대화가 잘 안 되기도 해요. 그럼에도 제가 좋았던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고, 아이와 함께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그 또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활동이 아닐까요?
엄마는 이 그림책이 참 좋아. 왜냐하면 둘이 싸웠지만, 화해하고 싶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친해진 것 같아서. 너는 이 그림책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