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Mar 31. 2017

용서 (1)

열 두시 2분

오전의 마지막 예약 환자가 들어온다.

정신과 상담은 딱히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단지 15분 미만은 3만 원, 15분에서 30분 사이는 5만 원, 

45분에서 1시간 사이는 대충 10만 원 정도로 가이드라인만 있을 뿐


이 사람은 우울증과 심한 강박증을 앓고 있다. 

이 두 가지 병이 혼재하는 경우 말수가 적고 말의 속도도 느리며 

단어 선택이나 뉘앙스에 대해 무척 조심하는 경우가 많다. 

졸지 않도록 엄청 애를 써야 한다는 얘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이O석씨.”

“오늘이,,, 선생님하고 면담한 지 일 년 정도 됐나요”

“네 그런 것 같네요.”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나이 든 사람 얘기 들어주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또 제가 많이 까탈스러워서..”

“저희 일이 다 그렇죠 뭘.”

“아닙니다,, 불편하셨을 거예요.”


사실 강박증 환자를 면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분석을 받는다는 건 그 사람의 내면을 통째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상담자 앞에서 옷을 벗는 것과 같다. 상담하기 쉬운 환자가 있을 리 없지마는 그중에서도 이O석씨는손에 꼽을 만큼 어려운 환자였다.

아들뻘도 안 되는 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으며 단 1분이라도 상담시간에 늦었을 땐 허리를 15도 이상 굽혀 늦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하고 사과했다. 상담비는 매번 소득 공제까지 해서 직접 내게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50회의 상담- 그러니까 500시간이 가까운 시간을 나와 얘기하면서 단 한 번도 가족이나 자신에 대한 깊은 얘기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억압과 자기 방어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밀과 사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