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아버지께서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멘붕에 빠지셨고 어머니는 내시경 검사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덜덜 떨면서 새벽기도를 다니셨습니다.
결과는 다행히 위암 1기였습니다.
저는 '에이 별거 아니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덜덜 떨면서 서로
'여보 내가 그동안 잘못했어 미안해'를 계속하셨지요.
1기는 정말 별게 아니다.
아버지 나이에 이정도 안 아프신분 없다, 오히려 빨리 발견된게 행운이다...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두분은 '혹시 당신이 잘못되면 나도 못산다'란 말들만 계속하셨습니다.
병변이 크지 않아 지방에서 치료해도 충분할텐데 굳이 어머님께선 내시경 시술 제일 잘하시는 분이 누구니...그래야 엄마 아빠가 여한이 없을거 같아...
두분이 너무 지나치게 오버를 하는거 같아 조금 짜증이 날 정도였지요. 환자의 입장이 되면 저렇게 사람이 약해지는구나....새삼 느꼈습니다.
세브란스 이용찬 교수님께 내시경 시술을 받던 당일, 아버지는 마취하시기 직전 펑펑 울면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석아, 혹시 잘못되면 아빠 통장에 돈 찾아써라,,,비밀번호는 30XX 다. 사랑한다"
"아이고 아버지,, 그럴 일 절대 없습니다, 수술도 아니고 시술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아버지는 거듭 비밀번호를 외우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왜 30XX 인데요?"
"니 고 3때 3학년 10반이었잖아 그거랑 출석번호,,,,"
목이 확 매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렇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는 제 자신도 기억 못하는 15년전 아들의 출석번호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큰 수술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아는데도 계속 눈물이 나고 불안해서 저보다 어린 레지던트,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잘 봐주시라고 몇번이나 몇번이나 고개 숙여 부탁했습니다.
무사히 끝내고 아버지가 나오셨을 때는 제가 죽다 살아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부담스럽고 미웠던 적이 있습니다.
더 성공한사람이었다면, 더 부자였으면 하고 바랜적도 있습니다.
과연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걸까? 하는 의심도 했었지요.
누군가 가족의 의미와 사랑에 대한 회의적인 질문을 하거나
사람은 결국 혼자야, 다 외로운 거야라는 식의 말을 들을때면
저는 항상 이날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