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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Oct 25. 2017

등록금도 빠듯한데 무슨 연애를 해요.

2년전부터 대학교 보건 진료소에서 정기적으로 상담을 해주곤 합니다.

신입생부터 대학원생들이 그 대상인데 아주 심각한 내용은 아니라서 의사보다는 선배의 마음으로 얘기를 듣는 편입니다.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 친구와의 갈등, 과내에서의 은근한 따돌림등등....


옛날 생각도 나고, 동생 혹은 조카같기도 하고, 이성문제나 친구관계로 풋풋한 고민을 정말 심각하게 하는 경우엔 청춘이구나, 부럽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1학년이건 대학원 박사과정학생이건 똑같이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졸업하면 뭐먹고 살지 모르겠어요,,,,"


요새 학생들은 입학하자 마자 취업에 대한 걱정을 하더군요.

학점, 스펙, 취업율, 상반기 기업 공채.,,,,금수저와 흙수저. SKY로 편입을 해야하나, 의전이나 로스쿨을 가야하나, 조교를 하면 교수님이 취직자리를 보장해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20살, 청춘, 첫사랑 같은 것들은 사치인걸까요.


제가 고 1이던 97년에 IMF가 터졌고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빚을 막다막다 결국 파산하셨습니다. 고3때는 큰이모가 마련해준 작은 월세집으로 이사를 가야했죠. 학원은 커녕 문제집을 살돈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도 대학 등록금은 비쌌지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4개 정도 했지요. 동아리 행사나 친구들 모임을 왜 그리 빠지냐는 핀잔을 들으면, 술이 약해서 혹은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어쩔 땐 돈이 정말 만원도 없어서 여자친구를 못본 날도 있습니다. 보고 싶다는데, 정말 섭섭해하는걸 아는데 차마 도저히 얘기를 못했지요. 데이트를 할땐 친구의 좋은 옷을 빌려 입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내가 휴학하면 당장 큰 돈을 벌수 있을까?

걱정만 한다고 뾰족한 해결책이 있나?

매일 하는 이 우울한 생각들이 나를 작아지게 하고 있었죠. 저는 다음학기 등록금,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열등감이란 좁은 방에서 뛰쳐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신 청춘을, 다시 오지 않을 이시간을 즐기자고. 내가 돈이 없다고, 걱정이 많다고 무언가를 포기하면 나중에 너무 후회할 것 같았지요.

 학자금 대출과 못난 모습들, 찌질함까지 사랑해주는 애인이나 친구는 아마 없을 겁니다. 나 자신조차도요.

하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은 있더군요.


서울대를 다니는 친구도, 건물주 아들인 친구도, 모두가 나름의 그늘과 트라우마, 불안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무시하고 내 미래를 불안하고 불행할거라 단정지은 사람은 정작 나 자신이었음을.


집이 가난해서, 부모님이 이혼해서, 몸이 불편해서, 키가 작아서,,,,나의 단점과 약점들을 극복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민과 불안까지 온전히 수용하고 인정해야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것이 자존감과 행복이라는 것을.


상담을 받으러 오는 어린 친구들에게, 혹은 20살의 나에게.

아직도 너무 부족하지만 이런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불행하지는 않기를.

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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