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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Sep 07. 2018

바람핀 여자친구와 결혼해도 괜찮을까요?

지난 4월 결혼을 앞둔 한 커플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커플 상담을 받고 싶다는 두 사람은 입을 떼자 마자 눈물을 흘렸어요.

20살에 만나 같은 대학을 졸업한뒤 미국에서 4년을 함께 지냈습니다. 남자는 변호사 자격증을 땄고 여자는 박사가 되어 대기업에 취직했습니다. 10년을 소울 메이트로 지냈고, 안정적인 직장, 부족하지 않은 양가의 지원, 두 사람에 미래는 행복할일만 가득해 보였습니다.

여자분이 말했습니다.
너무 술에 취해서 실수를 했다고.

결혼 준비중에 신혼집과 상견례 문제로 크게 다투게 되어 2주 정도 연락을 안하고 지냈다고 합니다.
여자는 오래 알고 지낸 동네 오빠이자 같은 직장 선배와 이런 저런 고민을 나누던중 술에 너무 취했고 밤이라 택시가 너무 잡히지 않아 그 선배의 오피스텔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10년 동안 두사람은 이런일은 커녕 작은 의심조차 할만한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결혼이란 큰 일을 앞두고 내가 잠깐 미쳤던 것 같다. 하늘에 맹세코 아무일도 없었다.
물론 믿는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10년을 봐왔고, 절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남들이 다 비웃어도, 자신은 백 퍼센트, 천 퍼센트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자는 여자친구의 카톡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오늘 뭐했어? 몇 시에 집에 들어갔어?
요새 대기업이 회식을 그렇게 자주 하나? 회식 아닌거 아니야?

티끌 같던 의심이 큰 멍이 되어만 갔고, 만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싸우게 되었습니다.
진짜 아닌데,,,정말 아닌데 차라리 그랬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나 않을텐데,,,

믿는데,,,정말 믿고 싶은데 자꾸 그날이 생각나요, 꿈에 나와요. 인터넷에 누가 바람을 폈다, 지나가는 농담만 들어도 미칠 거 같아요,

석달 가까운 시간동안 두 사람은 1시간씩 10번의 상담을 함께 받았습니다. 정말 많이 울었고, 서로 했던 모진 말들을 후회하며 안아주었습니다.

사람의 믿음이란 이렇게 연약한것일까.
10년을 한결같다가도 이토록 가벼워지는, 순간의 작은 실수가 이토록 모질고 지독하게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구나.

정신과 의사로서 10시간 동안 지켜본 그녀의 말엔 절대로 거짓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남편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겁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 날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간단한 겁니다. 믿을것이냐, 믿지 않을 것이냐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사랑하며 보냈던 10년의 시간을 믿을것이냐
불안하고 아팠던 그 하루때문에 인연을 포기할건지를 선택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기억납니다.
"그래도,,만약에,,,선생님 정말 만약에 그날 무슨 일이 있었으면 저는 어쩌죠? 앞으로 평생,,,어떻게 같이 살죠?"

"끝까지 그런 생각을 버리시지 못한다면,,, 저 훌륭하고 매력적인 여자분은 아마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죠. 정말 아까운 일이네요."

마지막 말은 어쩌면 정신과 의사로서는 해서는 안될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교과서에서는 항상 중립을 지키라고 나와있는데, 어째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을까요.

지난 주에 저는 이메일로 두 사람의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아픔을 함께 이겨낸 두 사람에게, 그 믿음과 용기에 존경과 행운을 보냅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중한 누군가가 떠올랐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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