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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Oct 29. 2018

<미영씨의 두번째 상견례>

작년, 긴 추석 연휴를 앞둔 일주일 전쯤이었습니다.

“선생님 이번 추석엔 아버지가 외출을 못하게 해주세요.”

“명절에는 웬만하면 환자들에게 외출이나 외박을 허락해주는 편인데요.”

“제가 상견례를 하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안오셨으면 해서요.”


미영씨의 아버지인 A씨는 만성알콜 중독 환자입니다.

정신과 입원이 벌써 3번째이고, 음주운전과 술문제로 직장에서도 잘렸지요. 더 큰 문제는 2년전, 딸의 상견례 자리에 만취 상태로 나타나 예비사돈과 사위에게 폭언을 했고 결국 결혼이 파토가 났다는 점입니다.


다 지나간 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 상견례에 못간다는 게 말이 되냐, 아버지 취급도 못하겠다는 거냐.

언성이 높아지고 모진 말이 오간 다음, 미영씨는 결국 눈물을 보이면서 나가 버립니다. A씨는 헛웃음만 지으며 연신 담배만 찾습니다. 내가 죽어야지,,,내가 죽어야지....


이럴때 딱히 무슨 말을 할수 있을까요. 저같아도 아버지가 너무 밉고 싫을텐데.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을텐데. 때로는 시간이 지나도 너무 생생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벼파는듯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정도로 나를 힘들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면 욕하고 안 보면 그만인데, 연인이면 헤어지면 그만인데.  

미영씨가 언젠가 아버지를 용서할지, 계속 미워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A씨의 간 상태가 악화되어 간경화 진단을 받았을때, 미영씨는 매일 병원으로 찾아와 간 수치를 묻고 수술이 가능하냐며 울었습니다. 제가 귀찮을 정도로요.
 

상견례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결혼식에도 아버지를 안 부를 건지, 미영씨는 계속해서 A씨를 미워할 마음의 준비가 된것인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수백번 미워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 또 먼저 연락해서 상처 받고. 부모를 미워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미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프면서도 끝내 손을 놓기 어려운 것이겠지요.  


만약,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알콜 중독자 아버지를 고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돈많은 아버지 금수저, 다정하고 나를 한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택하겠지요.  

참 많은 생각과 고민을 뒤로한채 A씨에게 물었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얼하고 싶냐고.

“술 안 마시고 싶지,,,,,,가족이랑 같이 살고 싶고,,,,”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A씨가 퇴원하던 날, 미영씨는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10월말로 상견례를 미뤘는데 잘한 건지 모르겠다고 물었습니다. 저 역시 자신이 없었으나 덤덤히 잘했노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얼마나 불안했을지, 며칠밤을 한숨도 못자고 고민했을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요.


A씨가 정말 술을 끊을 수 있을지, 미영씨가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런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너무나 아팠었던 그들 가족의 마음에 잠깐의 위안이라도 되었기를. 작은 행운이라도 함께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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