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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Dec 26. 2018

왕따로 자해를 하는 B군에게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지 알아.

제 3자인 내가 어떻게 아냐고 하겠지만 적어도 다른 어른들보다는 훨씬 잘 알아.

너처럼 힘들어 하는 아이를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이야.

상담했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 그중 몇 명이 나를 통해 도움을 얻었을까,

도움이 되긴 했을런지. 과연 지금 그 얘들은 행복할까? 하고 생각하면 선생님은 항상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져.


의사가운을 입고 책에서 본 지식으로 너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거야'라고 말해봐도 학교는 여전히 너에게 지옥이었고 네 편은 아무도 없었지. 몇시간동안 힘이 되고 희망을 줄만한 명언이나, 격언, 동영상을 테드나 유튜브로 다 뒤져보고 보여줘도 너한텐 아주 잠시의 위로일뿐.

손목의 상처가 계속 늘어가는 것을 보았을 땐 선생님은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단다.


'실망시켜서 죄송해요' 라고 하는 네가 너무 고맙고 안스러웠지. 대체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겠니 하고 솔직히 물었을때 잘 모르겠어요 라던 너의 표정과 한숨이 아직도 마음 아프단다. '그래도 저한테 이렇게 관심을 가져준 건 선생님뿐이에요' 라고 했을 때 네 부모님도 너를 무척 사랑하고 계셔 라고 나는 말했지. 네가 잘 모르겠다고 했을 때

나는 ''분명히 그러실거야''라고 했었지만 그 때 너가 했던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구나.


“선생님 부모님은 선생님을 중학교 때 사랑하셨나요?”

“그럼”
“혹시 선생님이 공부를 잘하서 그런 건 아닐까요?

저는 공부도 못하고 부모님말도 잘 안듣는데 그래도 사랑받을 수 있나요?.”

말문이 턱 막혀 버렸었지. 어쩌면 선생님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탓에 네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없는지도 몰라.

왕따를 당한 적도 없고. 있다면 네 입장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훨씬 더 좋은 의사가 되어 줄 수 있었을텐데. 아쉽고 미안했단다.
 
선생님은 네가 부모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뭔지 알 것도 같단다. 또 아버지께서 왜 너에게 참고 버티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던 건지, 가끔은 이해가 되기도 해.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결정하기엔 아직은 네가 너무 어리고 이르다고 생각해. 미안하지만 그게 아마 사실일 거란다.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게 좋아지진 않을거야. 더 나빠질수도 있지. 하지만 너가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것보다 불행한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


20살이 되면. 25이 되면 혹은 선생님 나이가 되면.

모든 어른이 현명하진 않지만 적어도 너의 힘들었던 시간을 차분히 되돌아볼 수는 있겠지. 그 때 떠올려도 지금 시간이 괴롭고 힘들거라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깨닫는게 있을거야.

'난 그 순간을 견디고 버티었구나.'

그 때 너 스스로가 무척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거라는 걸,

그게 삶의 모든 순간에 있어 가장 큰 힘과 원동력이 되줄거라고 선생님은 확신해.


정신과 의사인 선생님이 이런 말 밖에 못해줘서 부끄럽지만 너가 겪는 슬픔과 깊은 괴로움은 사랑으로 치료할 수 밖에 없다는게 내 결론이야.
너 자신을 사랑할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그게 너무 힘들고 어렵겠지, 지금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싫을 테니까. 네 곁에 누구에게라도 너를 사랑해달라고 부탁하길 바래.
어쩌면 너의 부모님이나 친구가 그 응답을 충분히 못해줄 수도 있을 거야. 그럴때는 선생님보다 훨씬 똑똑하고 훌륭한 어떤 상담사를 만나 위안을 얻거나 인터넷을 통해 너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의 슬픔을 공감해보거나 책을 읽는 것도 추천한단다. 네이버 웹툰 여중생 A 이야기를 우리는 참 많이 했었더랬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네가 아픔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기를 선생님은 간절히 바라고 믿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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