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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Mar 31. 2017

초등학교 때 2년간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피아노 학원과 과외 매일 3시간씩 억지로 피아노를 쳤는데 

한 군데를 틀리거나 버벅거리면 손바닥을 한대 맞고 처음으로 돌아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당시 제게 피아노는 구구단, 산수나 다름없었습니다. 악보를 전부 달달 외우고 

손가락의 위치를 다 외우고서야 틀리지 않을 수 있었지요.
제가 치는 음악이 어떤 곡인지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혼나지 않기 위해 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싫은 것도 반복하다 보면 조금 느는 것인지 5학년이 되자 

음악시간에 반주를 할 만큼 치게 되었고 저에겐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2년 동안 그렇게 싫었던 레슨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5학년 2학기 어머니는 선생님께 제가 예중에 지원할 실력이 되는지를 물었고 

선생님은 단호히 어렵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쿨하게 현실을 직시하시곤 

피아노 학원과 레슨을 모두 끊고 대신 국영수 학원을 새로 등록하셨습니다. 


문제는 제가 피아노 치는 것이 좋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학원을 빼먹고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을 본 어머니는 며칠 후 피아노를 팔아버렸습니다. 
 '대학에 가서 취미로 해 빨리 국영수 따라잡아야지'


저는 지금 하고 싶은걸요
음대에 갈 만큼 잘 치지 못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 후로 20년이 넘게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습니다. 

피아노를 보면 항상 손바닥을 맞았던 기억과 어머니의 단호한 표정과 강압이 떠올랐지요. 

원망과 상처는 피아노라는 대상에 전치되어 제 손가락을 굳어버리게 했습니다


틀려도 괜찮아
네가 좋다면 못해도 괜찮아
그런 말이 있었다면 저는 피아노를, 음악을 더 좋아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24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오랫동안 느꼈던 불안과 미움 두려움들이 

이제는 조금 가벼워진 덕분인 듯합니다.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미래의 제 아이들에게 제 서툰 연주를 들려주면서 말하고 싶습니다.


틀려도 괜찮아
남들만큼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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