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프타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back May 05. 2021

건축/인테리어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20세기 말, 우리나라에서 건축가(architect)라는 직업이 품격을 드높이던 시기가 있었다. 고뇌에 찬 모습을 하고 제도판 앞에 앉아서 트레이싱지 위에 자를 대고 신중하게 선을 긋는 모습. 초췌해진 얼굴로 밤을 새워가며 도면과 씨름하는 모습은,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오브제를 창조해내는 조각가의 모습 같은 - 일종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미켈란젤로의 망치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연필에서 느껴지는 그 거칠고 자유로운 손길의 흔적이 살아있었던 시기이자 이제 막 캐드(CAD)가 출현하여 학구열에 디지털 스킬을 입혀, 지적인 허영심을 부추기던 시기이기도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려던 그 단계. 건축학도들은 즐겁게 창조의 고통을 받아들였고, 자그하만 폼보드 모형의 공간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며 즐겁게 선을 그어대었다.


  어렴풋 중학교 2학년 때 기술과목 시간 제도 실습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책상 한가득 새하얀 종이를 펼쳐놓고 자를 대고 일정한 간격으로 선을 긋는 연습을 하던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1점 쇄선, 2점 쇄선, 파선, 점선 등등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이쁘게 선이 잘 그려졌고 나도 모르게 중독이 되어 기술과목 시간이 돌아오기만 하면 담당 선생님에게 한 마디씩 얻어듣고는 했던 것이다. 그 선생님이 당시 중학교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람이었으니 모든 친구들이 가장 꺼려하던 학급 시간이었으나, 그렇게 신경이 곤두서도록 조용한 분위기에서도 나는 늪에 빠지듯 맨 발가락 사이에 침투하는 진흙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나만의 세계에서 가지런한 드로잉의 선율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때 선생님의 한마디. "너는 커서 건축가가 되어라!".  '오호라!.....'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건축(architecture)'으로 진로를 정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한 곳을 바라보며 나는 건축학과에 입학하였고, 당시로서는 공대에서 의대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던 학과에 입학했다는 자부심에 대학 내내 아주 만족스럽게 공부를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대학에서 건축과(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는 완전히 다르다. 건축학과나 건축과는 설계를 하고 디자인을 하는 분야인 반면, 건축공학과는 건축시공과 관련한 공법과 기술분야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만큼 매력이 있는 학문이 또 어디 있을까. 건축과는 엄연하게 공대이면서도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을 창조한다는 이유만으로 인문학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던 것이다. 다양한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해야 하며, 그 사람들의 삶과 행동 패턴을 수용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조화로운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알아야 하고 삶을 공부해야 하고 심리학을 고민해야 하며 철학과 종교까지 모두 끌어안고서 삼각자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4년간 내 인생에서 가장 특이하고 지적인 경험을 했으며, 공학과 인문학,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각종 문화와 예술분야를 간접 경험하면서 풍요하고도 신기한 미적 감각들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르코르뷔지에 부터 시작해서 안도타다오, 김중업과 김수근, 밀란쿤데라를 거쳐서 모짜르트를 돌아나와 다시 렌조피아노로 들어가고 파르테논의 뜨거운 햇살을 경험한 뒤 인사동을 헤매며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기까지 다양한 문화예술분야를 두루 경험하면서 이 세상의 즐겁고 묘한 미학들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학문의 전당을 졸업하고 뛰어든 취업전선은 여지없이 나의 건축에 대한 환상을 무참하게 짓밟아주었다. 그리스 신전의 그 장엄하고 진중한 스테레오토미의 신성함은 갱폼과 타워크레인으로 차곡차곡 만들어지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필립스 엑스터 도서관에서 느껴지는 텍토닉의 고유한 품위는 법적인 제한을 피해 최대 용적률을 확보한 경사진 상가건물의 효율성 앞에서 뜬구름일 뿐이다. 가우디와 프랭크로이드라이트, 리자드로저스 그리고 레베우스우즈의 실험정신들도 아래층의 천장 높이에서 위층의 바닥 높이에 이르는 벽면을 간판으로 채워버린 이름 모를 한국의 건축물 앞에서는 어디까지나 개똥철학의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밀라노와 바티칸 그리고 피렌체의 두오모의 신성함 또한 신도 숫자와 은행 대출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값어치를 증식시키는 한국교회건물의 위세 앞에서는 한낮 중세시대 소설 속의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갑과 을의 부산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건설시스템. 막대한 가격과 면적의 숫자만이 그 건물의 가치를 상징하는 문화. 작고 의미 있는 공간을 갖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막대한 본말전도의 투기판. 나의 건축에 대한 환상은, 이러한 돈놀이와 생존경쟁의 그라운드에서 단 한순간에 사라졌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아름다운 기억과 체험을 실제 삶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학생들은 대학에서 건축과(혹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설계사무소로 진로를 정하게 된다. 원하는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설계를 몰아서 하는 곳이 아니라면 크게 돈을 벌기 힘들고 상공간과 오피스 분야로 설계를 한다고 해도 공사비용에 비해서 턱없이 포션이 낮은 금액 때문에 인재들이 설계하면서 버티고 있기 힘들다. 그러한 부분은 국내에서 채 10개도 되지 않는 대형 설계 사무소에서 콤페 전용 설계팀을 별도로 마련하여 덤핑 수주하듯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도 저도 안 되는 소규모의 작은 설계사무소에서는 특히 허가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주상복합 건물이나 소형 상가건물들의 도면에 도장을 찍어주면서 적은 인력으로 감리를 병행하면서 먹고사는 실정이니, 큰 꿈을 갖고 건축학에 뛰어든 건축학도들이 취업전선을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은 난생처음, 처참하게 무너진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의 비감과 비슷한 것이라고 본다. 


  한편, 건축학인 아닌 건축공학의 경우에는 대학 졸업 후 건축설계사무소가 아닌 주로 건설회사 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는데, 건설회사는 건축설계사무소에 비해서 연봉과 대우가 높지만, 현장업무가 힘들고 고되다는 특징이 있으며 직종의 특성상 지방근무와 해외근무까지 감내해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현장직이 아닌 본사직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공사관리와 원가관리와 같은 매니지먼트 업무가 주요이며, 이는 개인의 미학적 능력 같은 것보다는 조직의 운영이라는 큰 수레바퀴에서 얼마나 잘 살아남느냐는 처세의 능력이 더 중요시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방향을 약간 돌려서, 건축분야의 상세 카테고리에 속하는 인테리어 분야는, 꼭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주로 실내디자인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원한다면 건축학과나 건축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인테리어 분야로 진출할 수는 있지만, 실내디자인 쪽을 전공한 사람들은 건축설계나 건설회사 쪽으로 취업하기 힘들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인테리어라는 직종의 특성상 건설공사의 하위분야라는 인식이 있으며 실제로도 인테리어 공사라는 것은 주요 골조나 건축공사 이후 마감 수준의 시기에 투입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건설이나 건축 쪽은 이쪽 분야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분야라는 인식이 있고, 인테리어라는 것은 세밀하고 전문적인 분야라는 인식이 있어서 서로 인식하는 시각의 배율이 다른 것이다. 인테리어 회사는 상공 간과 오피스, 주거공간과 전시공간, 기타 모든 공간에 있어서 접근의 제약이 없다는 특성이 있지만, 한편으로 이들 회사의 주 수입원은 설계비용이 아니라 시공비용이라는 특성도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인테리어 설계는 주로 여자들이 많이 담당하고 공사나 시공 관련은 주로 남자들이 담당한다. 그래서 인테리어 쪽에서 설계만 하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다면,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닌 이상 그 꿈을 실현하기가 힘들다. 인테리어 회사는 건축설계사무소나 건설회사보다 규모는 작지만 담당하는 바운더리가 더 크고 광범위하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것 때문에 더욱 힘든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테리어라는 직종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갑을관계의 '종속자'라는 인식에 얽매어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의사와 변호사, 검사와 판사가 대접을 받는 나라이다. 물론 지금은 예전보다 덜하겠지만,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해외의 선진국에서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차지하는 위상을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사비, 혹은 시공비가 막대하게 들어가는 건물도 막상 디자인 비용이나 설계비용은 그것의 몇십 분의 일도 안 되는 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며, 건축사나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일개 도면 그리는 하청꾼의 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이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어깨에 힘주고 세상의 모든 고뇌를 혼자 짊어진 채 고상한 투혼을 하던 노력은 단 몇 분만에 쓸모없는 허세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건축가는 건물의 설계도를 창조하는 사람이고 하나의 건물이 그 정체성을 갖고 온전하게 중력을 버티고 서서 그 장소의 맥락과 운명을 함께한 채 100년 이상 그 시대와 사람들과 역사를 만들어 나가도록 계획하는 마스터 플래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아파트 문화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건축학을 써먹을 일이 거의 없다. 아파트는 사람이 설계한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모든 것이 자동화 포맷화 되어있고 정형화되어있다. 용적률과 인동간격의 법적 제한만 확인하면 배치도가 자동빵으로 생성되는 분야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건축학도들이 사회생활하면서 적성을 살리기 힘든 가장 큰 분야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건축과의 최대 적은 아파트이다. 아파트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고 모든 국민의 부와 명예와 인생의 최종 목표인 나라에서 '건축'이라는 학문은 말 그대로 취미일 뿐이다. 그래서 나도 대학시절 건축을 공부한 것을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두고 호화로운 취미생활을 했다고 자부하며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나는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지망하고자 하는 중고생들에게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직업으로 선택했을 경우를 염두에 두고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 학과에 지원하기 전에 반드시 관련 회사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보고, 단기 인턴이라도 신청해서 무조건 체험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건축학과를 가고 싶은 사람은 건축 설게 사무소에서 최소 3~6개월은 일해봐야 한다. 여름에 출근해서 겨울에 퇴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혹독하게 자신을 혹사시키고 단련하여 설계도면 그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건축공학과를 가고 싶은 사람은 건설회사에 들어가서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일명 노가다를 뛰어봐야 한다. 도무지 공사를 하기 힘들 정도로 성의 없게 그려진 설계도면을 받아 들고선, 수십수백 명의 작업자들에게 공사 작업을 시키고 하자가 나지 않도록 이질 재료 부위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낮에는 말을 안 듣는 작업자와 싸우고, 밤에는 공정과 기성금을 정리하기 위해서 엑셀장인이 될 정도로 부지런히 일해봐야 한다. 실내디자인이나 인테리어 분야로 가고 싶은 사람은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가서 최소 1개의 인테리어 공사현장, 그것도 리모델링 현장 하나를 마무리지어봐야 한다. 기존 마감재를 해체해보고 그 안의 기본 골조가 어떻게 버티고 서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 청소를 하러 오는 잡부들이 혼자서 합판을 몇 장을 들고 나를 수 있는지, 혹은 1시간에 얼마만큼의 쓰레기를 치울 수 있는지 그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합판을 들어봐야 하고 마대자루를 치워봐야 한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동생들이여, 부디 내가 말한 대로 충분히 인턴을 해보거나 건 접 경험을 하고 나서 대학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어떠할런가?






매거진의 이전글 얇은 표면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