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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

by Silverback


워낙에 망가진 가정에서 자라서 그랬는지,

어려서부터 완전한 가정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

내가 크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나의 아이에게는 불행한 유산을 물려주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불합리하게 대우받았던 원한도

불가피하게 맞닥뜨렸던 증오도

불가분하게 담고 살아야 했던 분노도

훗날의 완전한 가정을 위해서

삭이고 또 삭였다.


비록 초라하였지만,

젊어서 원하는 가정을 이룰 수 있었고,

보란 듯, 부모와 자식의 이름으로 반듯하게 정리된

최초의 주민등록 등본.


오래전부터 고대해왔던,

이 완전한 가정의 성립.


하지만,

무엇이 들씌워졌는지

아니면

무언가에 짐 지워졌는지

행복을 이루어야 한다는 그 의무감이

왠지... 오히려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사람은 겸손해야 해

부모는 반듯해야 해,

자식은 올바르고 예의 바르고 성실해야지,

나의 것이 아닌 것은 절대 손대지 말고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말 하나하나 생각하고 말을 하고

몸짓 하나하나 무게 있게 행동하자 했던

그 알 수 없는 집착


아내와 아이는 갈수록 나의 이름 모를 율법에 지쳐갔고

나 또한

알 수 없는 준칙으로 인하여

점점 신경이 곤두서간다.


무엇일까,

이 세뇌 현상은?


무엇일까

이 최면 의식은?


행복을 위해서 행복을 억압하고

자유를 위해서 자유를 제제하였던

알 수 없는

연결고리의 함정.


어린아이의 티를 벗고 어느덧 성장한 중학생 딸이

어느 날은 아빠와 다툰 뒤

며칠간 서먹하였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뭐지 이 상황은?


혹시 아빠의 면벽(面壁)인가?

그래 그거였구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가정에서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강자의 표정을 감시하고 눈치를 본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억압하고 억누르면

약자는 입을 닫는다.


뿌리 깊은 악몽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그 이름 모를 가정의 계율(戒律).


가족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

올바른 가정을 만든다는 이유,

어쩌면 그것은,

부모세대의 유년시절 악몽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이 아니었을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날 때, 아빠는 용기 내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딸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되돌아온 딸의 반가운 반응.


그래, 너는 기다렸던 것이구나!

아빠가 먼저 손을 뻗어주기를!

...


부부 사이이건,

부모 사이이건,

가정에서는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명목으로

원한과 증오의 싹을 만들면 안 된다.


잘못한 사람이 먼저 용서를 빌어야지,

실수한 사람이 먼저 숙이고 들어와야지...

어쩌면 이것은 교육을 받지 못한 유년시절의 잘못된 유산.


가족들끼리의 잘못과 실수는

달이 매일 떠오르는 것 같이 항상 있는 것이고,

흐르는 물이 그 속으로 흐르는 것처럼

항상 우리 인생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가족 구성원이 너나 할 것 없이

평소 일상의 경로에서 이탈했을 때,

꼭 한 번은 의자를 마주 놓고 이야기하되,

그 이후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리하여,

타이름과 칭찬과

걱정과 위로와

분노와 쾌락이

모두 커다란 인생의 굴레에서

항상 반복되는 친숙한 것임을 알게 해 주는 것.


그것이 구세대의 부모들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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