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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May 07. 2021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 2020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는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에피쿠로스의 선언을 읽을 때마다 오히려 인간이 죽음과 동떨어져서 지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느낀다. 인간은 아직 다가오지도 않을 죽음을 바로 눈앞의 공포처럼 두려워한다. 삶이 고통스럽다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삶의 고통을 끝내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막상 죽는다는 것은 고통을 떨쳐버렸다는 기쁨을 느낄 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살아서 죽는 방법을 생각하는 동안 절망과 공포는 더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는 언젠가 죽음이 찾아 올 것이고, 죽은 사람은 인간의 기억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완 작가의 에세이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해준다는 그의 직업 자체가 그것을 더욱 부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 세상을 버리고 떠난 사람의 뒷모습과 흔적을 관조한다는 것 자체가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다. 왜 우리는 길거리의 벤치나 공연장의 관객석을 보더라도 누군가 앉았다가 떠나가면 이유 없이 허무하고 쓸쓸해지지 않는가. 죽음 자체는 1인칭이지만, 죽음이 남긴 적막함과 허무함은 어디까지나 3인칭이다. 3인칭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한 법이다.


  작가는 원래 시인이자 작가를 꿈꾸었으나, 여러 가지 계기로 인하여 죽은 이나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름 모를 죽음들에 대해서 슬퍼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한 피를 가졌지만, 직업의 특성상 차가운 손을 움직이는 청소부이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나 하기를 꺼려하는 3D업종의 최극단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사연들을 이야기하는 언어가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다. 


부름을 받고 다다르는 곳곳에 가난과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검게 색 바랜 빈곤의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져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것 같다. 내 시선이 오랫동안 가난에 물들어 무엇을 봐도 가난으로 상징으로 여기는 것일까? 어떤 날은 죽은 이의 우편함에 꽂힌 채 아래를 향해 구부리고 있는 고지서와 청구서마저 가난에 등이 휜 것처럼 보인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최후에 머물렀던 공간을 바라본다. 이승을 떠나려는 사람이 무엇을 준비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떻게든 생을 꾸려가기 위해서 이리저리 바쁘게 공장일을 하였던 젊은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과 따뜻하게 위로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다가 구원의 손길을 얻지 못한 채, 짐 하나 없는 원룸 거실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텐트를 쳐놓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슬퍼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죽을 만큼 힘든 고독이었을까.....


친구여 이 모든 것이 그저 어느 날 당신과 내가 함께 꾼, 깨고 나서 돌아보면 웃어넘길 한낱 부질없는 꿈이었다고 말하자


  나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 살았던 인생의 가치를 느낀다. 각자의 사연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처연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유서를 쓰고 삶의 마지막을 천천히 마무리하는 작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았더라면 더욱 값진 의미가 있었을 각각의 삶의 예배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삶과 관련이 있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면이다. 우리가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죽은자의 이야기와 사연을 알고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죽음은 죽음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이 역사를 갖고 살아가고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한 죽음은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인간과 함께하는 것이다.


  죽음의 흔적을 정리하는 사람의 혼잣말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고, 우리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이유와 의미를 한 번씩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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