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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May 31. 2021

화난 사람들

  어느 해였던가 여름날, 퇴근하고 돌아와 아파트 공동현관문을 열고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더워서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비상계단 쪽 어두컴컴하고 시원한 구석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고 있으려니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사람이 바깥에서 걸어오는 소리, 알고 보니 음식 배달 오토바이 기사였다. 이 곳은 고층아파트라 누구나 엘리베이터를 차분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곳. 아마도 내가 계단 쪽 안 보이는 곳에 있어서 의식하지 못하여 그랬던 것인지 곧이어 그 배달 기사분의 터져 나오는 한숨소리와 혼잣말 같은 짜증과 욕설이 들려온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엘리베이터가 못마땅해서였을까. 아니면 더운 여름날이라 이래저래 짜증이 났던 것일까. 무엇이 그 사람을 열 받게 하였을까. 나는 그 배달기사와 마주치지 않고 따로 나중에 올라가려고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가 지하주차장을 일부러 한 바퀴 돌았다.


  배달 오토바이 기사뿐만이 아니라 택배기사분들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래된 저층 아파트에도 살아보고, 고층아파트에도 살아보았으나 이는 층수의 문제는 아니었다. 택배나 배달 같은 끈기와 인내와 손이 많이 가고 나름의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시간이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히면 그 서비스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아마도 짜증이 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과연 그 배달음식을 시켰다면, 온갖 욕설과 불만과 짜증이 섞인 그 음식을 먹고 싶지가 않을 것 같다. 그 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의 분노와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담긴 음식이 어찌 나의 허기와 안식을 위해서 온전하게 목으로 넘어가겠는가. 애타게 기다리던 택배 물품이, 그 물건을 가져다주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분노케 하여 나의 집 앞에 당도했다면, 어찌 나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서 온전하게 쓰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배달기사가 짜증을 낼만한 시간이나 날씨, 혹은 배달에 어려움을 겪을만한 음식 같은 것은 절대로 시켜먹지 않는 편이다. 택배도 마찬가지로 무거운 생수라든지 쌀 같은 특이한 물품들도 절대 인터넷 주문을 하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 시국으로 인하여 바뀐 물류중심의 사회분위기라든지, 각종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발달로 여러 가지 배달 분쟁의 문제를 없앤 시스템 때문에 지금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이지만, 사실 분노는 배달이나 택배서비스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곳곳에 숨어서 분출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택시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90년대 후반이나 혹은 2000년대 초반까지 택시를 타면 왜 그랬는지 모르게 그렇게 욕을 하는 기사님들이 많았더랬다. 서울 한복판의 그 험한 도로 한가운데에서 온갖 신호위반과 정체를 고스란히 떠안아가며 보채는 손님과 정신 싸움을 해야 하는 직업. 합승을 잘만 시키면 짧은 시간에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고, 유흥가 늦은 시간에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시간에 손님을 걸러서 태우면 짧은 거리를 여러 번 왕복하면서 쉽게 돈을 벌 수도 있다고 한다. 다른 택시들은 그렇게들 요리조리 돈을 잘도 버는데, 그런 요령을 터득하지 못한 택시기사들이 나처럼 어수룩한 손님을 태우고 나서 스트레스 배설을 해왔던 것일까.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택시를 탔던 기억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러저러한 정황을 근거로 이 사회의 분노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원인이 크게 한 가지로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사회정의(justice)'라는 것. 누구나 열심히 일한 만큼 대우를 받고 그만큼의 성취감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시스템. 몸은 비록 고단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직업을 존중해주고 나의 노고를 격려해주는 것. 배관공과 의사는 반드시 각자 모두 인류에게 필요한 직업이니만큼 종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가치의 차이는 없다고 인정하는 것. 서로 다른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가치를 이룩하면서 서로 다른 각각의 행복을 상대적으로 추구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회정의가 깨지면 인간에게는 그때부터 혼돈이 찾아온다. 사회정의가 깨지면 인간은 서로 비교하기 시작한다. 사회정의가 깨지면 인류의 모든 다양성과 고유성은 숫자와 서열로 바뀌고 돈으로 가치 지워지게 된다. 사회정의가 깨지면, 음식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 기사들이나 택배기사들은 자신의 직업을 하나의 고유한 직업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고 음식을 주문한 사람보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정의가 깨지면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택시들보다 덜 노력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사회정의가 깨지면 인간은 그때부터 헷갈리고 분노하고 폭발하는 것이다. 


  서로 아무 말 없이, 휴대폰만을 쳐다보면서 공존하는 시대.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하고 사이코패스로 변하는 시대. 누가 어떠한 문제로 어떠한 분노를 쌓아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만들어지고 있을 어떠한 분노들의 고요한 안식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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