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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n 06. 2021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 1952

He was an old man who fished alone in a skiff in the Gulf Stream and he had gone eighty-four days now without taking a fish.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으며, 84일이 지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인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의 하나로 일컫는 작품 '노인과 바다'. 대부분의 대작들은 작품의 첫 문장에서부터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작가들도 첫 발걸음을 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이 간결하고 쓸쓸하며, 빈틈이 없는 문장은 헤밍웨이를 곧바로 노벨문학상의 반열로 올려놓는다.


  나는 헤밍웨이의 작품들 속에서 마초(macho)의 고독한 허무와 천진하고 강렬한 사랑의 에너지를 느낀다. 그의 삶이 그러하였고 그의 사상이 그러하였으며 '무기여 잘 있거라'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들도 모두 그러하다. 전쟁과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 던져진 하나의 작은 존재가 나약한 인간의 덧없음에 체념하고 죽음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줄을 부여잡고 자신의 존재를 끌어올린다.


  노인과 바다는 내가 인문학의 바다에 빠져들면서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 시금석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빈 손으로 태어나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는 모든 지구 상의 존재에 대한 헌정 시이다. 나는 늙고 초라해져서 능력도 잃고 과거의 명성도 잃은 한 노인의 한줄기 희망과 목표에 대해서 증폭된 울림을 느낀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모든 텍스트에서,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땀과 뜨거운 피와 먼지와 석양과 강렬한 눈빛과 외침과 의지와 희망과 절망 그리고 사랑을 느낀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누구나 인생의 커다란 굴레를 떠올린다. 바다는 이 세상 자체를 뜻하며 산티아고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고, 마놀린은 삶의 여로에서 마주치는 모든 인연들이며 청새치는 우리가 얻기 위해 노력하는 희망들이고, 상어 떼들은 인간이 헤쳐나가야 할 장애물들과 고통들을 자연스럽게 의미한다. 한 때 잘 나갔던 노인,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명성과 힘이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인연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쓸쓸하게 자신의 낡은 인생을 어떻게든 끌고 나가야 하는 노어부의 처절한 독백과 사투를 통해서 우리는 하루하루 고달프게 살아가는 개개인의 자화상과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인간 본연의 숙명적 숙연함을 느낄 수 있다. 


  헤밍웨이는 사랑에 목마른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주인공들의 허무와 애정에 굶주린 눈빛을 떠올릴 수 있다. 어느 날 보았던 헤밍웨이의 눈빛. 바로 그것이었을까. 미국을 떠나 청새치의 바닷가인 쿠바의 하바나에 정착하면서 그의 인생관도 자신 속에 고착되고 정착되었을까. 따뜻한 남미의 바닷가에서 자신의 배를 타고 나가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작품 속 인생의 부조리와 덧없음을 비관하면서 그는 꼭 자식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일까.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모든게 다 꿈이라면, 내가 저 물고기를 낚은 일이 전혀 없던 일이고 그저 혼자 침대에 신무지를 깔고 누워 있는거라면 좋을텐데...


  나는 이 작품이 성과와 효율과 결과와 이익의 극한을 향해서 달려가는 이 시대의 첨예한 문명에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산티아고의 시시콜콜한 독백과, 마놀린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투정과, 실패를 벗어나기 위해서 작살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절박한 몸부림을 통해서 인간의 근원적 고통과 만물의 피곤함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 선한 분투에 경의를 표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매 순간 인간 개개인의 호흡 간에 생기는 무수한 실패와 좌절과 회한과 고통이 결국 우리는 이렇게 단련시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길고 긴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이 세상 모든 산티아고의 깊은 잠을 축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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