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위한 신앙?

by Silverback

기독교란 철저하게 개인주의다. 완전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성경 어디를 읽어보아도 사람의 숫자와 관련한 언급이 없으며, 타인과의 연관이나 다수의 사람들과의 연계성에 신앙의 의미를 둔다는 구절이 없다. 여러 사람이 많이 모여서 예배할수록 그 예배당에 속한 사람들이 더 많은 복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보다 큰 소리로 기도를 하고 보다 화려하게 찬양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도 아니다. 성령은 인간 개개인에 직접 관여하고, 그와 1대 1로 교감한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며 지침이자 단순하고 명백한 명령이다.


교회가 전도와 복음 전파라는 명목 하에 사람을 끌어모으고, 건물의 크기를 확장하고 돈을 불리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 개개인의 신앙심을 키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한국의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일수록 유명하고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지만, 성경의 말씀대로라면 애석하게도 하나님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교회를 방문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대신, 자기만의 자그마한 골방에 틀어박혀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의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오로지 순수하게 자기의 의지대로 찬양하고 기도를 하는 사람의 집으로 찾아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를 다니다 보면, 점차 직분이 주어지고 사람들끼리 친분이 쌓이게 되며, 누가 어떠한 일을 하는지, 누가 어떠한 성격이고 누구는 얼마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는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모든 것이 노출되고 공유된다. 성경말씀이나 교리 자체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고, 신경을 쓰게 되고 그와 관련한 일들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급기야 여자들은 비교적 직장일이나 경제생활에서 자유롭다는 이유로 각종 구역 예배와 전도활동, 교회자원봉사와 교우관계 정리 같은 일들을 떠맡게 된다. 그리하게 되면, 애써 성경을 들여다보고 감동을 받고 말씀을 좇아 교회를 찾아갔던 사람들도 성경 대신 사람에 치이고, 건물관리에 치이고, 전도 실적에 치이고, 시간에 치이게 된다. 결국 본인이 손에 들고 있던 성격책은 점차 멀어지고, 그 손에 교회 주보와 팜플렛, 홍보용 사은품과 휴대폰만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 가는 곳도 아니고, 사우나에 가듯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마사지받으러 가는 곳도 아니고, 친구를 사귀러 가는 곳도 아니고, 연애를 하러 가는 곳도 아니고, 구경하러 가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가는 곳이어야 하고,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가는 곳이어야 하며, 또한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가는 곳일 뿐이어야 한다. 그것도 목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 설교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는 그 순수한 성경적 사명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타인에게 굳이 내가 기독교인임을 티 낼 필요가 없어진다. 내가 기도를 평소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티 내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목사에게 굳이 나의 신앙심이 두텁고, 찬송을 열심히 부른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없어진다. 내가 교회와 목사에게 검사받으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골방이 필요한 시대에, 할 일 없는 나이롱이 다시 또 자판을 두드려본다.




[마태복음 6: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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