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프타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back Jul 04. 2021

21세기 한국영화 단상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들이 천편일률적으로 한 가지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 나할 것 없이 동일한 분위기로 제작되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니 영화나 드라마도 변화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개성이나 독특한 시각 없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패턴과 분위기를 추구하는 것은 관객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든 드라마든 똑같은 패턴이다. 너무도 획일적인 방향이라서 나처럼 무던하고 감각적이지 못한 일반 소시민이 리포트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이다. 100년 전 신파극이라 명명하던 하나의 장르가 다시 재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최근 5년간의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의 주요한 특징들을 개인적으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반전의 장면에 거드름, 비아냥, 허세, 약죽거림이 성실하도록 많이 나온다.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증도로 내러티브와 전혀 상관없는 애드립이 아직도 무수하다.

아웃포커싱이 너무 과도하다.

슬로우모션이 자주 등장한다.

화면 색온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파랗게 보인다는 뜻)

대사가 이유 없이 절제되어 있어 불필요한 침묵을 유발한다.

데시벨이 유난히 높아지는 느낌이다.

초망원이나 초광각렌즈를 남용한다.


  나는 한편으로, 이러한 한국 문화계의 영상적 장치들이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인물의 대사나 내용에 집중하게 만들고자 하는 효과로 판단되기는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때가 많다고 단언한다. 이는 마치 친구가 영화를 추천해 줄 때 이 영화는 너무 재미있어서 꼭 봐야 한다고 지나치게 강조하고 추천하는 경우 그 영화에 대한 몰입 자체를 방해하고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와 동일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서편제나, 살인의 추억,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등의 영화에서 보았던 탄탄하고 성실하고 머리 좋은 감독들의 자연스럽고 어깨 힘이 빠진, 그 훌륭한 연출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전의 장면에 거드름과, 비아냥과 허세가 등장하면 이제 관객들은 씬을 뻔하게 예측할 수 있다.

내러티브와 상관없는 한국 고유의 애드립이 아직도 등장한다면, 그건 우리가 아직도 군사문화에 찌들었다는 소리이다.

아웃포커싱이 과도하다면, 배경에 자신이 없다는 소리이다.

슬로우모션을 너무 자주 사용한다면, 스토리 자체보다는 말초적인 영상 자극을 더 팔고 싶어 한다는 소리이다

화면을 차갑고 파랗게 만든다는 뜻은, 본인 스스로 작품에 무게를 가하고 심각함에 도취된다는 소리이다.

관객의 집중을 유도하기 위하여 대사를 줄이고 침묵을 사용했다면 그건 한마디로 그냥 착각이다.

데시벨이 높다는 것은, 내용을 포기했다는 소리이다.

초망원이나 초광각렌즈를 남발한다는 것은, 스토리에 자신이 없다는 소리이다.


  운이 나빠서랄까.... 초호화 캐스팅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유혹에 넘어가 기대 이하의 영화를 보게 된다면, 20세기 TV 코미디 프로의 일종이었던 '테마게임'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허탈감에 빠질 수도 있다. 한두 번 느낀 것이 아니다.


  관객수로 영화의 순위를 세우고 칭송하는 문화. 독립영화는 재미없다는 인식을 씌워 원래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라는 관습을 만드는 문화. 시각적인 부분만을 초감각적으로 만들어 눈과 귀만을 즐겁게 해 주는 문화. 


  60인치 초대형 TV가 가정마다 널려있고 4K 초고화질 영상이 보편화된 시대에, 어찌 20인치 브라운관 TV에서 스트라이프로 보던 투박하고 거친 영화의 구성 하나 따라올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어찌 보면 2시간 내내 몇 편의 CF만 이어붙여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라는 장치는 시청자나 관객과 모종의 계약을 하고, 주어진 시간만큼 화면 앞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핸 채 무릎꿇게 만든뒤 일방적인 행위를 가하는, 어찌보면 다분히 폭력적인 문화이다. 그만큼 소비자는 창작자를 존중한다는 뜻이 되고, 반대로 창작자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나는 문득,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전경과 노란 햇살과 솔직한 대화들이 떠오른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자연스러운 애드립과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노련한 연출이 떠오른다. TV 드라마 '전원일기'의 그 평범하고 잔잔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인간 본연의 희로애락과 생을 존중하는 일상의 태도들이 떠오른다. 영화 '벌새'의 솔직하고 투명했던 은희라는 캐릭터의 디테일이 떠오른다.


  감독이 일부러 아웃포커싱을 쓰고, 클리셰를 구겨 넣고, 차가운 화면을 만들고, 슬로우모션을 쓰지 않아도 스토리 자체의 탄탄한 능력과 연출과 구성의 지적인 연결을 통해서 관객이 공감하게 되는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러한 드라마를 보고 싶다. 내 눈과 귀를 저당 잡히지 않고도 충분히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공감능력이 발휘되어 심장이 뛰도록 만드는 그러한 영화를 보고 싶다. 감독이 일부터 이 작품은 진지하고 무겁다고 떠벌리지 않아도 관객이 스스로 스며들고 인정하게되고 감동받는 그러한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미시마 유키오의 유작을 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