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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ug 29. 2021

옛 선비들의 편지

선비의편지(글누림),옛사람의편지(가치창조)

  짧은 시간에 세상이 변화하고 있고 그 무엇이든 허무하게 다가오고 사라지는 시기이다. 마음 속에 오래 남는 것이 없으며 쉽게 소비되고 쉽게 잊힌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문화에 찌들어있다 보니 나의 성격도 급해지고 날카로워진다. 말초신경이 예민해지고, 조금만 나의 뜻과 어긋나도 신경질이 난다. 지금은 그러한 시대이다. 


  사람들은 유교문화의 가치관과 성리학의 전통이라는 것이 대하여 꼰대니 틀딱이니 하면서 조롱하지만, 공자의 사상은 필요할 때마다 인류에게 훌륭한 조언을 해주었고, 장자와 노자 같은 사람들의 글들 또한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속도와 이익과 물질과 부와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들이 별로 쓸모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만 타고 놀 수 없으며 1년 내내 맵고 짜고 단 음식만 먹고살지 못한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기 위해서는 느림과 빠름, 높고 낮음, 뜨거움과 차가움, 풍요와 결핍이 상호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생활해야 하며,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몸과 정신에 병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말이라는 것도 말초적이고 감각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상업주의와 배금주의 때문인데, 잘못된 언어의 유래는 따져볼 생각도 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고 좋아하기만 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방송에서도 사용하고 언론에서도 사용한다. 저속하고 퇴폐적인 뜻에서 유래한 비속어들이 버젓이 광고나 언론 그리고 공영방송에서도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알고 사용하는 것는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냥 생각없이 사용하는 것인지 가끔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에 찌든 일상의 스트레스를 정화할 수 있는 길은 그 반대편에 있는 훌륭한 글들을 접하는 것 밖에는 없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1대 1로 대할 때 가져야 하는 자세와 생각들, 꼭 필요한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과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연륜이 묻어나는 글이라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해독제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선비의 편지(구자청 엮음/글누림)'와 '옛사람의 편지(순문호 엮음/가치창조)'는 그러한 의미에 잘 부합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편지글이라는 것의 의미를 고려해볼 때 불특정 다수를 의식하여 말하는 독백이나 방백의 개념이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이 정해져 있어서 상대방의 지위와 상황을 똑바로 알고 있으며 전달하는 내용이 명확하여 글의 내용이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집중적이다. 그래서 글을 가다듬는 노련미가 탁월하고 마치 사람을 만나서 인사하듯 말의 예의와 법도에 깊은 품격이 묻어난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드러날 때까지의 순서가 느껴지고 편지를 받는 사람이 차근차근 설득당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도 탁월하다. 이러한 글을 읽고 있으면 오합지졸의 족보도 없는 요즘 사용되는 비속어들의 천박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정성과 배려를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비의 편지'는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한 뒤 은퇴하여 한학과 전통문화연구에 매진하여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구자청 작가가 엮은 책이다. 신라, 고려, 조선시대 등의 우리나라 옛 시대 전체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편지들을 실었다.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몇 가지의 분류 주제를 정하여 카테고리를 구분하였으며, 각각의 편지들에 대한 엮은이의 탁월한 보충설명도 추가되어 있어서 해당 편지의 왕래에 대한 맥락도 짚어볼 수 있다. 옛 선조들의 섬세하고 기품이 넘치는 글들을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글쓴이의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며, 글을 읽는 사람을 어떻게 배려하고 있는지 의도를 파악해볼 수 있다. 지금처럼 돈이 최고이고, 물질이 최고인 시대에는 이러한 글들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글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무언가를 집어넣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안에 있는 것을 거두어들이고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그 무엇이든 그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날이고 간에 머리가 복잡하고 부대끼는 사회생활과 허무한 일상 속 마비된 입맛에 지쳐있다면,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 큰 재목은 들보와 기둥으로 삼고 작은 것은 서까래와 추녀를 만들어 눕히고 세움이 각기 제자리에 안정된 다음에야 큰 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녹진이 김충공에게 보낸 편지 -
사람은 비록 지극히 어리석더라도 남을 꾸짖는 일에는 밝으며, 비록 총명하더라도 자기를 용서하는 일에는 어두운 법이다  - 이이가 이발에게 보낸 편지 -
새로 맛을 들이려는 것은 달지 않고 익숙한 곳은 잊기 어려운 법. 마음을 비우고 이치를 살펴야하며 먼저 자기의 의견을 정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차츰차츰 쌓아서 완전히 성숙하게 해야지, 짧은 시일에 효과를 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 이황이 이이에게 보낸 편지 -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이 선비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면 그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 윤휴가 송규정에게 보낸 편지 -
요즘 서울의 젊은이들은 마치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과 같아서 다만 빨리 성공할 방법만을 연구해서 성현들의 글을 다락에 묶어두고 날마다 영리하게 남의 비위에 맞게 하는 작은 문자를 찾아내어 그 말을 따서 글을 지어 시험관의 눈에만 들게 한 후 성공한 사람이 많다  -유성룡이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
묘갈문을 청할까 합니다. 필묵의 수고를 내리시어 쓸쓸한 무덤에 광채가 나게 해 주신다면 죽인 이와 산 사람에게 맺어질 감격이 어떠하겠습니까  - 정약용이 채제공에게 쓴 편지 -


  그리고, '옛사람의 편지'는 서원대 총장을 역임한 후 경주에서 서당을 운영하며 한학을 가르치는 손문호 작가가 엮은 책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대부분 잘 아는 선현들의 편지글이 등장하는데, 조선의 개국을 알리는 시대에 활동했던 정도전의 편지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사림파의 계보를 관통하는 김종직, 조광조, 조식, 이황, 이이 등이 여러 편지들의 주인공들로 등장하며 이순신 장군과 정조 임금, 정약용, 김정희의 편지도 실려있어서 조선시대 유교사상과 선비들의 가치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손문호 작가의 경우에는 한 편의 편지글에 십 수 페이지가 넘는 해설과 역사적 설명을 첨언하여, 비록 '선비의 편지'보다는 적은 수의 편지가 등장하지만, 편지를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편지글에 등장하는 사람에 대한 배경지식을 매우 깊고 세심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성리학의 양대산맥이었던 이황과 조식이 연이어 주고받은 편지 5건이 친절한 설명과 함께 실려있어서 그들의 학식 수준과 언어 기품의 백미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평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느껴지는 개인적인 편지도 읽을 수 있어서 가슴이 먹먹하기까지 하였다.


생각건대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은 의가 아닙니다. 군신 사이의 큰 윤리를 어찌 폐할 수 있겠습니까. 선비가 혹 벼슬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다만 과거가 사람을 어지럽게 하고 잡진의 길은 더욱 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하는 선비는 종적을 감추고 숨어서 나아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 이황이 조식에게 벼슬을 권하는 편지 - 
생각 건데 선생은 서각을 태우는 명철함이 있고, 나는 동이를 인 것 같은 탄식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문덕이 아름다우신 선생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눈병까지 있어 앞이 흐릿하여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한 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명철하신 선생께서 발운산으로 내 눈을 밝게 열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삼가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멀리서 지면을 빌려 말씀드리니 파초잎처럼 겹겹이 쌓인 마음을 어찌 다 드러낼 수 있을는지요.  - 조식이 이황에게 거절의 뜻으로 답한 편지 -
한번 불러도 벼슬길에 나오지 않는 자가 드물거늘 하물며 거듭 불러도 나오지 않고 뜻을 더욱 확고한 데에야 말할 것이 뭐가 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속에서는 이것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자는 항상 적고, 성내거나 비웃는 자가 항상 많으니 선비가 되어서 그 뜻을 지키고자 해도 또한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세론을 두려워하여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하는 저 같은 사람은 진실로 뜻을 지키는 선비가 아닙니다. 선생의 경우를 보고 의리를 세운 바 없는 나 자신이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 이황이 조식에게 답한 재권유의 편지 -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면, 손으로 물 뿌리고 비로 쓰는 것도 모르면서 입으로 천리를 담론 하며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망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는데, 어찌 선생 같은 장로게서 그를 꾸짖어 그만두게 하지 않으십니까. 저 같은 사람이야 마음을 보존한 것이 황폐하여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지만, 선생 같은 분은 일신이 상등의 경지에 도달하여 우러르는 사람이 참으로 많으니 십분 억제하게 하고 타일러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삼가 헤아려주십시오.  - 조식이 이황에게 강한 어조로 자신의 뜻을 재차 밝힌 편지 -
제가 지난 계미년에 견원보 권관으로 있을 때 부친이 돌아가시어 천리를 달려가 분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부친 살아 계실 때에는 약 한 첩 못 달여드리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영결조차 못했습니다. 그것이 죽을 때까지 늘 한이 될 것입니다. 이제 또 노모가 고희를 넘기어 노모의 해가 서산에 닿을 듯한데, 만일 또 하루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시고 효행을 다하지 못한 슬픔이 있게 된다면 제가 또 한 번 불효한 자식이 될 뿐 아니라, 모친은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건대 왜적이 화친을 청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 같습니다. 황제의 사신이 내려온 날도 벌써 한참 전 일인데 아직도 적들은 바다를 건너갈 기미가 없으니 앞으로 닥쳐올 화는 지난 때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겨울에 달려가 모친을 뵙지 못한다면, 봄이 되어 방비에 또한 바쁘게 될 것인즉 도저히 진을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합하께서 이 애틋한 정을 살펴 며칠간 말미를 주시어 노모를 한번 찾아뵐 수 있다면 노모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입니다. 만일 그 사이에 위급한 일이 생긴다면 어찌 대감의 허락이 있다 하여 감히 중대한 일을 그르치는 잘못을 하겠습니까  - 이순신이 이원익에게 쓴 편지 -


  사람들의 외형과 눈에 보이는 것과 물질과 부에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가끔은 이렇게 아무런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맑은 차를 마시듯 정제되고 다듬어진 선조들의 명문을 되새겨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해야 하고, 귀로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만 내 머리와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지 말고, 고요하게 비워서 그 속에 무엇이든 자리 잡을 여지를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공학도가 오늘도 책장을 넘기며, 졸렬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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