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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Oct 29. 2021

살빼기 전쟁 1

조깅입문과 중독

  8년 전부터 5~6년간 조깅에 미친 적이 있었다. 난데없이 갑자기 조깅이라는 운동에 빠져들었다기보다는, 수십 년 묵은 뱃살과 게으름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것에, 어느 날 갑자기 구역질이 나도록 나 자신에 대해서 진저리가 났던 것이었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회식 자리를 빠져나와 오 밤중에 미친 듯 근처 학교 운동장을 새벽 내내 달렸던 그날.


  그러한 결심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 같지 않은 위험한 상황이 다가오는 것에 워낙에 둔감했던 나의 근본적 DNA, 가정과 경제력에 대한 불안감, 뜻대로 되지 않는 회사일에 대한 여러 가지 욕구불만, 꽤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 잡은 탐식에 대한 이름 모를 집착 같은 것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던 것 같다. 젊었을 때에는 아무리 먹고 뒹굴어도 절대 살이 찌지 않는 나였다. 음식에 대한 별다른 부담도 없었고 건강에 대한 염려도 없었다. 남들은 비만이니 거식증이니 하면서 걱정을 하며 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큰 키에 골격이 단단하였고 살이 붙건 안 붙건 그냥 듬직한 체형의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옷맵시나 외모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살았으니 하물며 입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음식에 있어서랴. 그런데, 30대 중반을 넘어선 어느 날 회사에서 회식을 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평소 일도 잘 되지 않았던 시기였고 직원들과 썩 유쾌하게 어울리지도 못하던 터라 내키지 않는 자리에 참석하여 시간을 때우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곤욕이었다. 게다가 몇 개월 전부터 뱃살을 압박해오던 바지의 허리춤이 마치 토라지듯 단추를 끊어내고 있었고, 이대로 살을 접어 바닥에 앉아 있다가는 허리띠마저 나를 배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마침 이슬비가 아주 약하게 오던 시간, 나는 슬그머니 고리타분한 회식자리를 빠져나와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갔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여러 가지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내 안에 꼭꼭 담은 채, 가족들이 잠든 11시 즈음해서 반바지에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몸에 걸치고 근처 학교 운동장을 새벽 내내 뛰었다. 


  게으름의 마지노선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그때의 마음가짐이란, 그냥 이렇게 3~4시간 달리다가 숨이 차서 죽으면 내 몸뚱이의 피와 기름이 눈코입귀로 뿜어져 나와 그나마 몸무게가 줄어들고 살이 얇아질 것이라는 지질학적 망상이었으므로, 일종의 나태에 대한 학대였으며 오래된 방임에 대한 형벌이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이, 지리멸렬하게 나를 억누르고 있던 오만함을 후벼 파 주는 것 같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피로도가 쌓이는 근육과 뼈마디의 열기는 나를 불태워서라도 인간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반가웠으며 옷이 완전하게 젖을 정도로 흐르는 땀은 꼭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독소로 느껴졌다. 그날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새벽에 돌아온 나를 본 아내는 좀비를 본 듯 기겁을 하였으며, 바로 그다음 날부터 나는 온몸이 부서질듯한 통증을 느끼며 당분간 진정한 좀비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착수에는 시행착오와 고난이 따르는 법. 값비싼 수강료를 내 고난 뒤에 거의 3개월 동안 나는 정말 성실하고 지독하게 이틀에 한 번씩 조깅을 하면서 차차 거리를 늘려갔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을 기준으로 하였다. 조금 느리게 달리는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일반적인 중학교 운동장의 트랙 한 바퀴는 180~200m 정도. 대여섯 바퀴 정도를 뛰면 1km이다. 처음에는 1km를 쉬지 않고 뛰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하루에 한 바퀴씩 길이를 늘려가니 일주일 만에 1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에 성공하였다. 문제는 3km였는데, 거의 3개월 정도 걸려서 3km 달리기에 성공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의 생각은 7km를 목표로 삼는 것이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7km 조깅을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주워듣고선 막연하게 목표로 삼았단 것이었다. 7k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는 데에는 거의 10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아무리 못해도 삼일을 넘겨서 쉬어본 적은 없었다. 이틀 아니면 삼일 만에 한 번씩은 꼭 달렸다. 7km를 정복하고 나니 10km는 오히려 쉬웠다. 아마 한 달 정도 더 노력해서 곧바로 10km를 달성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러너스하이(runner's high)를 체험했던 때라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러너스하이'란 일종의 자아도취의 경지인데, 과학적으로 뭐라고 설명하는지는 몰라도 조깅을 하다가 어느 정도 숨이 차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몸에 피로가 느껴지지도 않고 숨이 차지도 않을 정도로 몸이 그 격렬한 운동에 적응이 되어버려서 일시적으로 평온한 상태가 되어서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순간을 말한다. 일종의 마취 같은 효과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는 매번 조깅을 할 때마다 러너스 하이가 어느 시간에 오는지 정확하게 알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달렸다. 


  10km를 달리게 되면 일반인들이 취미로 달리는 수준보다 월등하게 많은 체력소모를 필요로 한다. 처음 10km 조깅에 성공하였을 대에는 1시간 10~20분 정도 걸렸던 것이, 차차 줄어들어 2년째 접어들었을 때에는 50분 수준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그 정도라면 격렬하게 뛸 경우 1000kcal 언저리, 평균으로는 700~800 kcal 정도의 열량 소모가 된다. 나의 경우 땀은 거의 대부분 정확하게 1.5리터가 소비되었다. 그래서, 조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냉장실에 보관해둔 1리터짜리 녹차를 마시고, 이후 몇 시간에 걸쳐서 부족한 수분을 더 보충하고는 했다. 


  조깅 이후에는 근육을 제대로 풀어주는 것이 아주아주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까지 뭉친 근육이 그 형상 그 단단함 그대로 뭉쳐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종아리에 쉽게 쥐가 나고, 근육이 항상 피곤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피로를 많이 느끼고 거동도 불편하게 된다. 종아리나 무릎은 반드시 느리고 오랫동안 주무르고 문질러주어서 근육의 뭉침과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스트레칭도 너무 과격하고 빠르게 하면 역효과가 난다. 근육의 이완은 꼭 느리고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초반에는 무작정 달렸지만, 당시 얼리어댑터였던 나는 곧바로 순토 앰빗(Suunto Ambit)과 심박 패드를 구입하여 속도와 고도, 온도와 칼로리 등을 정확하게 측정하면서 달렸다. 과학적으로 관리를 받는 나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지방이 줄어들었고, 호날두 부럽지 않은 허벅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누구와 같이 뛰어도 나 보다 더 오래 뛰는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지인들과 등산을 해도, 땀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날아다녔다. 운동을 하지 않을 때에는 심박수가 50에 가까웠고 청바지도 앞에 '슬림핏(slim fit)'이라는 단어가 붙은 녀석을 고를 수 있었다. 3~4년 정도 지나고 나니, 조깅하기 전 90kg에 육박하던 체중도 70~75 정도로 내려갔다. 


  운동은 자칫하면 중독이 된다. 나는 중독이 된 케이스였다. 그것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데, 다이어트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단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지금 나는 예전처럼 조깅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183cm 신장에 체중 78kg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몸무게에 대한 집착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운동을 하지 않는데도 몸무게 유지가 가능할까. 몸무게 유지에 대한 해답이 운동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체중과 비만관리의 첫 번째 조건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답이다. 주저리주저리 잡설이 길었으므로, 나머지는 나누어서 포스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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