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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Mar 01. 2022

그리움을 위하여 / 박완서 / 2001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하고 가정환경이 어수선했던 나는, 고등학생 시절...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꼭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집과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며 오로지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만 하였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거나 혹은 다른 친구들처럼 놀기만 하면 훗날 후회하고 비루해진다는 막연한 공포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한 채 오로지 학점만을 위해서 또 노력하고 성적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결핍된 자아에 대한 방어기작이었을 테고,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의 경제사정과 메마른 정서에 대한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아버지처럼 되지는 말아야지... 젊을 때 빈둥빈둥 놀면서 나중에 후회하지는 말아야지.... 나 자신에게 잠재적으로 주문을 걸고, 압박하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얌전하게 공부하고 나대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의 욕구와 욕망이 시키는 것을 억제하며 자신을 추스르는 것, 가족 친지들에게 나는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놈팽이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무언가 교양 있는 사람이라든지, 착실하게 만들어진 범생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고, 성취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대학시절, 주변 친구들이 모여서 음담패설이라도 내뱉고 있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나는 그들을 업신여기며 무지하고 천박하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고 능멸하였고,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채 같이 시험공부를 하다가도 당구장을 간다든지 혹은 PC방을 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열등한 씨앗과 핏줄을 저주하며 내가 우월하다는 상대적인 정복감과 자아도취에 빠지고는 했다. 그렇게 나의 젊은 시절은 맹목적인 달리기와 욕망의 절제, 혹은 경쟁에서의 승리 같은 것으로 점철되어 나를 아주 단단하고 건조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세월이 흐르고 가정을 갖고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니, 어느새 그러한 기억 들로부터 20년이 훌쩍 넘게 흘러가는 것을 감지한다. 어린 시절 형성된 지독한 자아는 내가 다른 곳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그나마 가정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도록 해주었고, 주식이나 투자 같은 것은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이 바라는 요행이라고 치부하며 알뜰하게 월급을 모아가면서 그나마 안전하게 재산을 불린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오래전 강박증에 들씌워져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폐쇄적인 정체성을 여전히 꼭 붙든 채 그래도 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고, 튀는 짓은 하지 않았고, 놀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주문을 계속 외우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그러한 나의 가치관과 인생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시기는 그리 멀지 않은 최근이라고 고백한다.  오래전 같이 어울리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의 일상이, SNS라는 기술의 도움으로 생생하게 전달되고 관찰된다.  장애가 있던 녀석이 목사가 되어 있기도 하고,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항상 나에게 고민을 호소하고 공부방법을 상의하던 녀석은 일본에서 항공우주 관련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항상 헤프게 웃는 표정을 하면서 가벼운 언행과 의미 없는 유머를 구사하던 - 성적도 그냥 그렇고 그랬던 녀석은 카이스트에서 공부한 이후, 독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당시 흔히 직업반이라고 얕잡아 부르던 - 정말로 공부하고는 담쌓은 학급의 양아치 녀석  명은 부동산 관련 일을 하면서 보란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있었다. 여중생들로부터 부대를 끌며 다닐 정도로  생겼던 친구는 대학 졸업  연기에 도전하여 국내 유명한 드라마에도 가끔 출연하더니 지금은 백수가 되어 놀고먹는 중인  같기도 했지만, 그만의 일상에서 신기한 취미들을 드러내어 살고 있었다. 나와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했던 녀석은 ROTC 나와 어디 번번하게 정착하지도 못하는  같더니,  증권회사에서 일하며  나가는 PB 하고 있는 모양이다.  외에도 군무원이  친구,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 법무사가  친구  가지각색으로 다양한 삶을 영위하며 잘들 살아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친구들의 프사나 페이스북 사진이나 포스팅들은 하나같이 걱정 없이 즐겁고 유치하도록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그럴싸한 허세나 사회적 지위의 냄새가 느껴지지도 않았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그러한 일상의 소소한 부분들에 가치를 두고 재미나게들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까지나 위에서 언급한 친구들은 모두 내가 학창 시절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것들, 혹은 못난 인간이라는 굴레를 씌워 무시하고 비웃고, 나의 성적의 발판으로 삼았던 친구들이었음에도 말이다. 급기야, 최근 오프라인에서 만난 친구 녀석이 나에게 빈정거림 , 친근함 반을 섞어하던 ,  "이야, 이게 누군가, 범생 꺽다리  살아있구나!" 나는   말에서, 알듯 모를 듯한 슬픔을 느꼈던가....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다시, 인간 행복의 기준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 것은 왜일까. 비록 사진 몇 장, 인터넷 흔적 몇 개로 나와 친구들의 인생을 비교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가 그토록 고수했던 내 인생의 잣대, 가치의 기준들이 현재의 나의 일상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어떠한 행복감을 주는지 발견해내기 힘든 것을 본다면, 그나마 내가 부여잡고 살았던 것들이 나의 외면적 성취와 나의 정서적 결핍을 가려주는 역할을 했는지는 몰라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주지는 못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오래전 고등학교 국어시간, 고전문학을 가르쳐주던 노선생님이 창 밖의 화창한 봄날의 전경을 바라보며 내뱉은 한마디,  "너희들은 이렇게 따스한 봄날에, 어찌 이토록 답답한 학교는 그냥 하루 내팽개치고서라도 고궁이나 공원으로 나가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열정이 하나도 없는 인간들만 모여있는 것인가?" 이제야 그분의 말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된 나는, 아무리 봐도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을 오해하고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근래의 그 어느 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내 안의 자아는, 이제 그 비겁한 아집과 사회적 허세의 벽을 허물고 아무런 편견 없이 나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일까. 그리하여 나는, 무언가 훗날의 대단한 부귀영화와 성공을 위해서 지금을 감내하고 참고, 스스로를 혹사시키면서 흔하디 흔한 우리 주변의 자질구레한 일상과는 담을 쌓은 채, 족보도 이름도 없는 규범과 위선에 도취되어 나보다 못한 타인들로부터 우위에 있다는 착각을, 마침내는 서서히 의심하기 시작하였으리라.



  박완서 선생의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작품은, 아직도 나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 싶을 때 읽어보는 책이다. 이 짧은 단편에 들어있는 우리네 인생사의 비밀이라는 것은, 바로 그 행복의 의미 - 무엇이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가에 대한 수다스럽고 친근한 해답이다. 가난과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던 우리의 슬픈 역사가, 보잘것없는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억압할 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한 과거의 한을 덜어내고자 스스로에게 허식과 규범을 부여하고 우리는 그것을 성공과 출세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스스로에게 축복을 내리며 살지 않았던가. 사실 우리 안에 잠재된 행복에 대한 '형편없는 갈증'과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유치한 욕망'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우리가 사실 그토록 갈망했던 후회 없는 삶 - 사회적인 성공이 아닌, 진정한 인생의 성공이라는 것이 최초의 근본으로 삼았던 감동적인 발걸음이었는도 모른다.


 나는 동생에게 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상전의식이지 동기간의 우애는 아니다. 상전의식이란 충복을 갈망하게 돼 있다. 예전부터 상전의 심보란, 종에게 아무리 위태로워졌을 때면 종이 기꺼이 제 새끼하고 바꿔치기 해주길 바라는 잔인무도한 것이 아니던가. 나는 상전의식을 포기한 대신 자매애를 찾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년 여름엔 이모님이 시집간 섬으로 피서를 가자고 지금부터 벼르지만 난 안 가고 싶다. 나의 그리움을 위해.


  훗날 내가 걸치고 있는 여러 가지 인생의 허세와 위선의 규범들을 걷어내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아무런 걱정과 근심도 없이 나의 행복과 기쁨에 달음박질할 수 있는 날이 올 때, 부디 나의 그리움으로부터 내가 해방되고 놓여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로 말하리라. 이제는 영면한 우리 현대문학의 어머니로부터 내가 전달받은 이 작은 깨달음을 가슴속의 단단한 씨앗으로 삼고, 부디 나의 딸과 그 딸의 자녀들의 앞날에 보다 현실적인 행복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끊임없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으리라.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을 걷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이 의미를 전할 수 있다면 이보다 기쁜 날이 또 어디 있으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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