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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Nov 17. 2022

사회정의가 사라진 사회

  공직자의 도덕과 윤리에서부터 시작해서 법조계의 모든 법제 시스템을 통하여 개개인들의 준법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이 그것을 만듦과 동시에 그것에 의지하여 마치 대기에 몸을 노출하고 살아가듯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법제 체계, 곧 사회정의의 근본이다. 한마디로 사람이라면 법을 제대로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마치 아주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의 뿌리가 넓고 깊숙하게 땅속으로 내려가 그 토양의 양분을 흡수하고 자라는 것과도 같아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천천히 성장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번 자리를 잡으면 굳건하게 오랫동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인간들 사이에서 틀이 잡힌 법체계라는 것은 나무의 뿌리와 비슷한 기작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나무의 뿌리가 아주 탄탄하고 땅속 깊게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는 언제라도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을  있기 때문에 웬만한 가뭄과 혹한에도 죽지 않고  버틸  있다. 시련을 버티면 나시 잎이 나고, 쉼터와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그것에 위로받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무와 같은 인내와 끈기와 초연함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반면, 나무를 제대로 가꾸지 않아서, 혹은 토심이 낮은 땅에 나무를 심어서, 그 굳건한 뿌리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급하게 물을 많이 주어도, 아무리 많은 영양제를 쏟아부어도 잠시만 회생할 뿐,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세월의 부침에 초연하게 견딜 수 있는 나무를 기대하기란 힘들다. 그러한 나무는 금방 잎을 떨구고 황량한 갈색 섬유질로 변하여 썩고 문드러져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쓸쓸함을 느끼게 하고 인간의 노력이 덧없다는 허무감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정의란 인간이 정성스럽게 보살핀 나무의 뿌리와 같다.


  사회정의가 무너져가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키지 않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법을 잘 지키지 않아도 자기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불법이나 편법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연하게 존재하는 법을 피하고 부정하여, 결국 편법으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실현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선례를 보고 너도 나도 따라 하게 되어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법을 억지로 제대로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보가 되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법의 원류는 법 집행자들과 법의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권력자로 불리는 위계질서의 상위 포식자들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을 자신들 가까이에 둔 그들은 쉽게 그것을 만들고 수정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이용한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누군가 올바르게 노력하여 합법적으로 권력을 쟁취하거나 부를 획득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바른 시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저 사람은 아마도 불법을 저질러서 저것을 얻었을 것이다. 혹은 저 사람은 부정한 방법으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을 것이라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공격한다. 그것이 사회에 만연하면 서로 간에 신뢰를 하지 못하게 된다. 신뢰를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배금주의를 양산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니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된다. 그러한 사회는 비인간화된다. 몰개성화 되고 익명화된다. 사람이 죽는 것이 우습게 여겨지고 인간의 생명이 희화화된다. 나무의 뿌리는 벌레들에 의해서 공격받았고 결국 병들었다.


  사회정의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킨다. 커다랗고 무거운 법이건, 작고 사소한 법이건 사람들이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지킬 생각을 하는 것이다. 껌을 씹다가 길거리에 함부로 껌을 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준법의 분위기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과 공무원들과 권력자들과 같은 위계질서의 상위 포식자들의 흐름에서 발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돈을 가진 사람도,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무나 앉기 힘든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도 모두 올바르게 법을 지키고 따른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한다면, 그것에 대한 위엄과 경외심과 신성함이 은연중에 흡수될 수 있다. 나도 저렇게 법을 지키면 저러한 자리에 올라갈 수 있고 저러한 것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억지로 법을 제대로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정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존경받고 칭송받는다. 왜냐하면, 올바르게 법을 지키고 성실하게 노력해서 그러한 자리에 올라갔다는 절대적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나무가 아주 깊고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잎을 피우도록 하기 위해서 성실하게 물만 주면 된다는 완벽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신뢰가 점점 쌓인다. 신뢰가 쌓인 사회에서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할 수가 없다. 각자의 능력과 그릇에 맞는 결과를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계량화, 수치화된 돈 보다는 노력, 의지, 과정, 성취 같은 것들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물질이나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성을 추구하게 된다. 그들은 나보다 잘난 사람을 의심하고 시기 질투하지 않는다. 뛰어난 사람을, 혹은 많이 가진 사람을 응원해주고 격려하고 우러르고 칭송한다. 그 사람을 본받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게 되고, 그 사람이 더욱 잘되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다. 나무의 뿌리는 벌레들의 공격에서 방어되었고 결국 살아남았다.


  사회정의는 중요하다. 법질서라는 것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 뿌리가 썩으면 나무는 죽는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무의 뿌리는 인간 개개인이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는 뿌리가 버텨야 한다. 잔뿌리 하나하나, 인간 개개인 하나하나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무를 살리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정직하게 법을 지키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를 살리고 싶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누군가의 질투와 시기와 공격 거리가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뿌리를 좀먹으려고 달려드는 벌레를 가만히 놔둔다면 뿌리는 전부 썩는다. 결국 나무는 숨이 끊어진다.


뿌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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