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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Nov 21. 2022

침묵의 세계 / 막스 피카르트 / 1948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꽉 차 있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어느 공간이나 방향을 향해서 무언가를 쏟아붓고 휘젓고 세워서 채워 넣고 싶어 하지만, 그건 채움이라기보다는 대체이다. 아니 오히려 삭제와 몰수일 수도 있다. 채워 넣는다는 것은 기존의 공간에 있던 그 무엇인가를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공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들이마시고 호흡하고 내뱉고 있지만, 사람은 공기에 포함된 산소 없이는 5분도 살지 못한다. 인간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그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아슬아슬하게 단 한순간도 끊긴 적 없이 언제나 인간 곁에 존재하는 그 공기라는 것.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영혼과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침묵은 그 공기와도 같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말과 사고를 하는 존재이지만, 그 말과 사고는 침묵을 배경으로 한다. 침묵이 없이는 언어가 생성되지 않는다. 마치 빛이 없다면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는 언어와 침묵의 관계, 그 본질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자 탐구이다. 그 어느 누구도 침묵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토록 철저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인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에게 부여된 '말(言)과 그 말이 싹트고 나오는 토양인 '침묵(沈默)'이라는 것에 대한 예찬이자 시(詩)이다.


  하루 종일 우리의 귓가를 괴롭히는 온갖 소음들과 의도하지 않아도 들리는 갖가지 언어들. 어느  하루를 마치고 마침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집안을 잠식하고 있던 고요한 침묵의 공기가, 하루 종일 소음에 시달렸을 나의 귓가를 사정없이 짓누른다. 그렇게 돌연 나에게 달려드는 침묵은 나를 훈계하는 듯하다. 침묵이 그렇게 무겁고 단단하게 느껴지는 경험은 흔하지 않다. 귓구멍이 왱왱거리다가, 이내   후에는  침묵의 부피와    농밀함, 그리고 포근한 중량감이 나의 전신을 감싼다. 그것은 서서히 나의 피부와 귀와 입과 머리칼을 타고 전신을 파고든다. 나는 거대한 침묵에 침윤되고 흡수된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자신을 바라보고 느끼고 사색할  있게 된다. 가만히 소파에 드러누워 눈을 감으면, 그제야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사실 침묵을 배경 삼지 않는 말은 소음이나 다를 게 없다. 생각 없이 불쑥불쑥 함부로 내뱉는 말을 주워보면 우리는 말과 소음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씨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꾸만 거칠고 천박하고 야비해져 가는 현상은 그만큼 내면이 헐벗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안으로 침묵의 조명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정스님, 무소유 中)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우주의 상호적 시스템이라는 것들은 모두 반대의 성질을 지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농구나 축구에서 공격수는 골을 넣기 위해서 공을 몰고 가지만, 막상 본인은 다가오는 상대 선수를 열심히 방어해야 한다. 공격의 바탕은 방어이다. 창가에 앉아 몇 가지 소품들을 두고 소묘를 해보아도 알 수 있다. 사물의 뒷면에 그림자를 그리지 못한다면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빛의 바탕은 어둠이다. 지상과 해를 향하여 수직으로 자라나는 이 세상의 온갖 나무와 꽃과 풀들을 보라. 그들은 지하의 뿌리가 없으면 싹을 틔울 수도 생존할 수도 없다. 지상의 바탕은 지하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언어라는 것. 아름다움과 진리와 용서를 담고 있는 그 말(言)이라는 것은 홀로 생성되지 못한다. 깊고 진중한 사색, 끈기 있는 관조, 무한한 성찰 같은 침묵의 토양이 있어야, 말은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드디어 한줄기 싹을 틔우는 것이다. 작가는 침묵과 언어가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언어는 침묵에서 싹을 틔운 것, 침묵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결국 상반이 아닌 포함과 포용의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의 세계는 침묵의 세계 위에 세워져 있다. 말이 마음 놓고 문장들과 사상 속에서 멀리까지 움직여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밑에 드넓은 침묵이 펼쳐져 있을 때뿐이다. 그 드넓은 침묵에게서 말은 자신이 드넓어지는 법을 배운다


  인간의 이성이 둘러싸고 있는 자아의 본질과 깊은 내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책은, 인간이 태초로부터 지니고 있었던 고요하고 엄중한 그 언어적 사명, 선험적으로 바탕 지워진 우주의 질서, 즉 침묵의 의미에 대해서 처절하리만치 완벽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일종의 근원적 태도와 접근은 과학적으로 풀이되지 않는 인간 영혼과 정신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음미하고 여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나는 자꾸만 어느덧 시간의 저 깊은 아래쪽, 모태의 두근거리는 심박이라든지 끝없이 펼쳐진 바다나 우주의 깊은 공간, 적막함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막스 피카르트의 언어는 침묵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점점 자신 스스로의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 나의 침묵은 무엇이었던가. '나'라는 존재가 하루 종일 내뱉는 언어, 과연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디로 흘러가서 소멸하는지 철저하게 성찰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행위뿐만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그 모든 질서에 있어서의 비유와 사고, 그리고 성장하고 나이 들고 죽기까지의 여정을 상징하는 거대한 잠언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침묵 그 토양은, 결국 하나의 고귀하고 주목받을만한 소중한 말을 잉태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한 침묵을 토양으로 갖고 태어난 말의 새싹은 성장하면서 침묵과 분리되지 않고 언제나 거기에서 양분을 공급받으며 언어와 진리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미와 사랑과 용서와 망각, 그리고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침묵에서 나온 말은 침묵이 말에게 부여했던 원천성의 힘으로써 대상을 포용한다.

  

   그러므로, 이 책이 어디까지나 침묵이라는 테마를 이끌고 가고 있어도, 결국엔 침묵을 바탕으로 한 말(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침묵과 언어는 분리된 것도 아니고, 서로 상반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라기보다는 나란한 것, 혹은 한쪽이 감싸고 있는 상호보완이나 포함의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서로 등지고 있지 않다. 이 세상에 등지고 있는 것이라고 없다. 모두가 가깝거나 먼 어느 한쪽을 차지하고 있을 뿐, 그것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화살표를 서로 향하게끔 하지 않는다. 욕망을 가진 존재만이 반대(反對), 적(敵)의 개념을 만들 뿐이다.


말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은 단순한 현상 이상의 것이 된다. 말을 통해서 인간은 어른거리다가 사라지는 현상성으로부터 끌어올려진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현상을 부수고 나와 현존하게 되며 확고해진다. 말이 굳건하게 서서 붙잡아주기 때문이다. 말은 인간을 단순히 짐승이 가지고 있는 순간의 현전성(現前性)으로부터 끌어내어 지속되는 순간 속으로, 현존재(現存在) 속으로 끌고 간다


  얼핏 읽으면 어렵고 난해한 산문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흐름과 움직임을 천천히 떠올리면서 읽는다면, 독자는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상징과 다이어그램을 만들고 개인적 체험과 기억을 이용하여 쉬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끈한 표면 위에 계속 한정된 자리를 차지해가면서 자꾸만 음각으로 새겨지고 깎여나가는 이 세상의 온갖 속임수와 폭력과 파멸의 악행 속에서, 그리고 반대로 자꾸만 양각으로 돌출되고 과잉되는 이 세상의 효용과 효율과 문화와 상업적 행위들의 피곤함 속에서, 오롯이 나 자신의 근원적 정체에 대해서 평평하고 부드럽게 되돌아보고 탐구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나는 왜 말을 하는가.

그리고 왜 침묵해야 하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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