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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Dec 26. 2022

평양가족 이야기 / 양영희

디어평양, 굿바이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

  민족사의 커다란 격변기가 이제 한 챕터를 넘기고 있다. 개화-식민시절-625-남북분단의 상처가 깊게 남은 채 이제 한반도의 심장은 숨 고르기를 한다. 이제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역사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서 온몸으로 직접 그 삶을 살아왔던 장본인들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어린 시절의 일본 순사 이야기를 들려줄 할머니도, 한강 얼음을 밟아가며 피난을 가던 이야기를 들려줄 할아버지도 남아있지 않다. 이제 당사자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새로운 세대의 시기가 펼쳐진다. 양영희 감독은 그 마지막의 순간, 최후 증언자들의 기억을 어떻게든 붙들고 회복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자기 가족의 삶을 기록한다. 그 챕터의 마지막이 양영희 감독의 집안에서 마침표로 남겨진다.

 

  양영희 감독은 3남 1녀 중 막내딸. 부모님은 오사카 조총련 재일교포이다. 마치 응축해놓은 어떠한 음식의 진액처럼, 이 짧은 문장 속의 이력은 수많은 것을 설명한다. 남, 북, 일본 사이에 걸쳐진 모호한 경계인의 일상에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달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조총련 간부의 자녀라는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양영희 감독의 오빠 3명은 1970년대 북한으로 보내어진다. 남북 분단 이전부터 일본에서 살고 있던 재일교포들은 남북분단 이후에 남과 북의 국적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해방 당시 미군정의 일방적인 통치와 4.3 사건 같은 이승만 정부의 폭정은, 당시 제주도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일본 오사카로 발을 돌리게 한 계기가 되었으며, 그중에는 잔인했던 남한 통치에 염증을 느껴 북한을 국적으로 선택한 사람이 많았다. 양영희 감독은 이러한 민족사의 수난이 여러 갈래로 겹쳐 지나가는 자신의 집안 한복판, 가족의 수난을 오랫동안 영상으로 담아왔다. 


  막내딸은 오빠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오면서(북한을 국적으로 두고 있는 재일교포들은 주기적으로 북한에 다녀올 수가 있었다. 반면 이미 북한에 귀환한 사람들은 일본으로 다시 넘어갈 수가 없다) 그곳의 가족들 및 일상과 관련한 영상들을 촬영한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일본에서 막상 북한 학교를 다니면서 그녀는 가치관의 혼란을 느낀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송된 오빠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혼재하는 자신의 가정을 뛰쳐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들이 북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북한의 체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자신의 가족을 어떻게 어디로 데려가는지 끈질기게 응시한다. 그녀는 매번 방북할 때마다 자신의 가족들을 촬영하였고, 그 속에서 생명을 잇고 살아가는 가족들과 오빠들, 그리고 조카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이 커다란 이데올로기의 물살을 그저 바라보면서 무엇 하나 힘쓸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가족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승화시킨다. 그녀의 필름 화면 속에서 보이는 희뿌연 대기, 혹은 주거민들의 집이나 길거리에서 보이는 여러 균열 같은 것은 마치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기운이 무겁게 내리누르는 중압이나 상실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그녀는 자신이 95년도부터 촬영한 영상을 정리하여, 2004년 [디어 평양]이라는 다큐로 완성한다. 민족분단의 그 해묵은 갈등의 뿌리가 한 아빠와 딸의 대화를 통해서 해학적으로 서서히 풀려나간다. 2009년에는 감독 자신의 쓸쓸한 삶을 연상케 하는 한 조카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굿바이 평양]이라는 두 번째 다큐를 완성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작품을 통해서 당시 2000년대 초반, 공개적으로 알 수 없었던 북한의 모습과 가족들의 일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겨울, 이제 환갑에 가까워가는 나이 든 감독은 마지막으로 남은 시대의 증언자인 어머니의 인생의 뒤안길을 배웅하면서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작품으로, 제주 4.3 사건의 증언과 가족의 화합이라는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우리는 이 열정적인 감독의 영상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근원에 뿌리 박힌 가족애, 즉 기준 없이 휘몰아치는 외세의 격량에도 굴하지 않고, 보다 좋은 곳에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전형적인 한민족의 성실한 가정을 목격한다. 하여, 감춰져있던 당시 북한의 모습, 금기시된 영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는 한 가정의 내부 깊숙한 곳을 조용하게 응시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오래 전부터 우리가 함께 누려왔던 가족문화의 전통과 언어, 그리고 떨어져서 사는 핏줄을 그리워하고 위해주는 인간애의 근원적 바탕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이 다큐에 등장하는 한 열렬한 어머니는 그녀가 복한의 국적을 가졌든 남한의 국적을 가졌든지에 상관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오래전 민족의 허리가 잘리기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마음에 품었던 근원적 행복과 비애를 동시에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북한에 있는 자녀들에게 보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써가면서 생필품을 포장하는 신성한 의식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였던 역사적 필연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의 '625 관련 소설'들, 김은성 작가의 '내 어머니 이야기', 박경리 선생의 '토지',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 같은 작품들과 더불어,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우리 민족사의 커다란 상처를 관통하고 다시 그것을 보듬는 과정의 한 복판에 서있는 기념비 같은 기록물이라고 생각한다. 양영희 감독의 시선과 렌즈는, 민족분단의 상처를 안고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생생한 역사적 증언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고, 책으로도 실감할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이 직접 낳은 아들을 북으로 보내고,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 오로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평생을 헌신하고 주변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아온 한 가정의 이야기를 목격할 때만이 가능한 깨달음이다. 


  우리는 이러한 작품들이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고, 이러한 증언을 마지막으로 해준 사람을 곁에 둔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이제 불과 5년 이내, 더 이상 우리에게는 증언자들이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했던 당사자들을 우리는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다. 이렇게 증언자들의 역사는 사라져 간다. 하지만, 그렇기에 기록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처럼 여겨지던 곳에서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서 동일한 일상과 삶, 고뇌와 죽음을 감내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영화가 가진 힘, 증언자와 기록자의 역할이 발산하는 역사의 힘을 막연하게나마 느끼는 것이다. 남은 것은 온전히 후손들의 몫이다. 1점 1획의 틀림도 없이 사실대로 고스란히 역사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인류의 의무이고 권리이다. 


   내가 양영희 감독의 작품들을 접한 것은 축복이었고, 행운이었다. 작고하신 감독의 부모님과 가족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글을 마친다.






2022년 12월 26일 현재, [디어평양]과 [굿바이평양]은 인터넷 상으로 다시보기가 불가하다. 

2022년 12월 26일 현재,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인터넷 상으로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3부작의 배경이야기가 담긴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가 2022년 출판되었다.

영영희 감독은 2013년 [가족의 나라]라는 극영화를 제작하였다.

https://bit.ly/3WBvMnW 22. 10.20 김어준의 뉴스공장, 양영희 감독 인터뷰

https://bit.ly/3WqMuqj 22.11.15 영화의 전당 GV, 양영희 감독 관객과의 대화

양영희 감독은 현재 소설과 극영화를 추가로 계획 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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