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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Feb 06. 2023

마녀사냥에 맞서는 '조민'을 응원하며...

수사기술의 기원

  어떤 사람이 밧줄을 하나 잡고 걸어간다.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고 도대체 무엇을 끌고 가느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자기는 아무것도 끌고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밧줄 뒤에는 소가 묶여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소를 몰래 훔쳐가는 중이라고 판단한다. 밧줄을 끌고 가던 사람은 이러한 말을 덧붙인다. "저는 무심코 길가에 버려진 줄을 하나 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줄 끝에 소가 묶여 있더군요. 허허 이런. 줄 끝에 소가 스스로 와서 매달렸나 봅니다." 이러한 논리를 '궤변(詭辯)'이라고 한다. 이러한 궤변에 몰살당한 한 가족이 있다. '조민'은 그 가족 중의 한 사람이다.



검찰권력에 칼을 댄 조국 법무부장관

  2019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조국대전이라고 불리던 광기의 마녀사냥에 대한민국 법조계가 온통 달려들었다. 오로지 4명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을 박살 내기 위해서 한 국가의 사법권력이 총동원된 것이다. 검찰은 왜 그리 비상식적이면서도 비효율적이며 광적인 호들갑으로 조국장관의 가족을 일점사(一點射) 하였는가. 바로 조국 법무부 장관이 검찰권력에 칼을 대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국 장관은 왜 검찰권력에 칼을 대려고 하였는가. 검찰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국민을 위해서 공정하게 쓰기보다는 검찰 자신의 밥그릇을 사수하는데 남발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패권력과 적폐청산을 목표로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서 조국법무부장관은 검찰 밥그릇개혁(일명 검찰개혁)을 단행하려고 했던 것. 참고로 검찰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산다.




검찰의 가족 인질극

  자신들의 밥그릇이 덜거덕 거리던 소리를 듣던 검찰은, 미친 듯이 조국 장관을 공격하였다. 조국장관이 의연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버티자, 검찰은 최후의 수단인 가족인질극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족들 하나하나 과거행적이나 기록을 조사하여 그럴싸한 죄목을 뒤집어 씌운 후 사람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도록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수사 기술자들인 검찰 쪽에서는 얼마든지 법조문과 언어를 조합하여 그럴싸한 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창의적이고도 도발적인 '궤변수사'의 개시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어느 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하여 다음날 등교하지 못한 경우 아이가 몸이 아파서 하루 쉬었다고 부모가 변명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부모는 '거짓진술'이라든지 '학교업무방해죄'라는 그럴싸한 한자어로 된 위압적인 죄목을 뒤집어쓸 수 있는 것이다. 정해진 법조문과 언어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다양한 생활양식을, 일명 '수사 기술자'라는 사람들이 어렵고 위압적인 한자어를 조합하여 특정한 죄목으로 엮어내는 기술! 조국장관의 가족들은 그러한 궤변수사기술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검찰은 마음만 먹으면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 그럴싸한 죄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 일부러 수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초상이다. 장자연 사건이라든지 김학의 사건, 최근 문제가 불거진 김건희 주가 관련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검찰이 제 식구가 관련된 사건은 처절하도록 회피하고 무마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검찰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말은 이제 고유명사화된 지 오래다. 이제 우리는 두 눈 뜨고 실시간 생중계로 검찰의 태연한 칼부림을 목격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 누구나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감히 손댈 수 없는 시스템. 그리하여 바로 내 눈앞에서 태연하게 검찰권력의 횡포가 자행되는 부조리한 상황. 이것이 바로 '21세기 대하민국 검찰의 밥그릇 시스템'인 것.

 


내 밥그릇을 건드린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준다

  검찰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법한 궤변수사기법을 총동원하여 조국장관의 부인을 그럴싸한 한자어로 죄명을 포장한 뒤 감옥에 집어넣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곧바로 검찰은 조국장관의 아들과 장녀의 목에도 칼을 겨눈다. 입시나 직업과 관련한 사항을 찾아내어 조각을 맞추고 죄명을 같다 붙인다. 마을의 소가 이름 모를 밧줄의 끝에 줄줄이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조국 장관의 장녀인 조민의 커리어는 난도질 당하고 그녀는 난데없이 검찰개혁의 인질이 되어버렸다. 우리 밥그릇을 건드렸으니 어디 한번 당해봐라는 식이었다. 검찰은 자신들의 밥그릇에 손을 대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맥락과 연고도 없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두들겨팰 수 있다. 심지어 지나가던 개들이라도.



입신양명의 홍패가 품은 검찰의 비루한 운명

  검찰이 같다붙인 조민의 죄목이라는 것들은, 그들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언어중독적 조직인지를 알게 해 준다. 검찰의 방식대로라면, 내 몸으로 빗물이 떨어져서 그것을 털어내다가 실수로 타인의 옷에 튀었다고 해도, 그 빗물로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죄명으로 단번에 '살인미수자'가 될 수도 있다. 혹은 타인의 옷을 손상시킨 '재물손괴'나 '특수상해'라는 특이한 한자어를 뒤집어쓸 수도 한다.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특정 언어의 힘은 무섭다. 검찰은 그러한 힘을 잘 알고 있다. 검찰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언어공부만을 집중적으로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입신양명을 위해 주변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면서까지 피 터지게 공부하던 방식. 그리하여 정말로 처절한 사법고시의 생존 경쟁에서부터 법조계 내부의 승진코스, 그리고 퇴임 후 그럴싸한 변호사로 둔갑하여 기존 자신이 일하던 법정에서 승소하고 많은 돈을 받아가면서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시스템을 맹렬하게 사수해야 하는 필요조건은, 대한민국의 검찰이 자신들의 노력을 보상받아야 하는 당위성으로 굳건하게 지지된다. 그들이 법정에서 사용하는 폐쇄적 언어, 국민들의 일상과 괴리되어 그들 내부에서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드높이고 일반인들의 이해영역에서 분리되어 마치 고차원적이고 위압적인 피안의 세계에서나 들려올법한 일제시대의 한자어를 부둥켜안고 견고한 밥그릇을 입에 문 채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은, 한계를 품은 바벨탑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1년 검찰개혁 관련 토크콘서트에서 김선수 변호사가 던진 말은 이러한 검찰의 태생적 불합리성에 대해서 많은 의미를 압축하고 있다.


검사들은 개개인으로는 훌륭한 분도 있는데, 일단 조직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완전히 조직논리로 똘똘 뭉쳐서 움직입니다. 검찰개혁 방안에 있어 (개혁의 방향이) 올바르면 평검사들이 먼저 난리를 치고 집단 항명할 것입니다. 검사들이 집단행동을 한다면 그 검찰개혁 방향은 올바른 것입니다 / '조국의 시간' 中



검찰과 다른 태도를 선택한 조민

  조국 법무부장관의 장녀 조민은 공식적으로 두 번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두 번째 인터뷰였던 오늘,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삶과 앞으로의 길에 대해서 의연하게 설명하던 그녀의 모습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고통스러웠던 사법고시의 장벽을 뚫고 엘리트코스의 신분을 거머쥔 검은 제복의 신사숙녀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밥그릇만을 지키기 위하여 어떤 가족을 게걸스럽게 몰살시키던 이기주의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 조민은 자신의 지위와 커리어를 담담하게 내려놓는다. 자신 때문에 피해가 될지 모르는 병원에서는 더 이상 근무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가족참극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며, 혹시라도 자기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각기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이, 막상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국가적 광기의 칼부림에서 살아남아 나지막하게 토로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공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부족하지 않은 저의 환경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특권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또래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가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어졌습니다. /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인터뷰 中




말하라 내가 당신을 볼 수 있도록

  그녀는 조국 장관의 딸이 아닌 한 명의 성인으로서 숨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거대한 검찰의 권력에 자신의 어머니가 난데없이 감옥으로 들어가고, 자신을 비롯한 동생과 아버지가 몰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 겁내지 않고 정면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세상과 괴리된 검찰들이 사용하던 '폐쇄적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활인이 사용하는 '일상언어'였으며, 이 세상을 평범하고 지극히 상식적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누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연스럽게 발언할 수 있는 정상인의 언어였다. 소설이나 수필, 인간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어떠한 인문학적 문학 작품이라고는 일체의 접촉도 없이 오로지 골방에 틀어박힌 채 어려운 한자어와 일제시대의 법조문의 잔재의 사전만 끌어안고 살아온 판검사들의 기계적 언어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생활인의 언어, 즉 그녀는 자신만의 언어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나타었으며, 자신만의 소리를 울림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묵시하였다. 사람의 언어는 그 사람의 얼굴이다. 그녀가 쉼표를 찍는 문장의 행간을 주목하라. 그녀는 중언부언 하지 않는다. 애면글면 목에 핏대를 세우지도 않았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어구의 차가움 속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본인을 설명하려는 집중이 포착된다. 이는 문득 조국 장관의 언어를 연상케한다. 누군가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의 성장환경과 가족문화를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타인을 마주하고 순간순간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의 기품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자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언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맥락을 끊지 않고 차분하게 들어야 한다. 이번 조민의 인터뷰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정확하게 주어진 앞뒤 맥락을 잃어버리지 않고, 마치 오래전 소크라테스가 외쳤던 "말하라 내가 그대를 볼 수 있도록(Speak so that I may see you)"의 가치를 실현하듯, 자신의 인생과 가치와 희망을 포함한 그녀의 존재 자체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

  세월호 사건 때 느꼈던 전 희생자들 및 그 가족들에 대한 국민의 공감능력과 그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정서적 고통. 때로는 희생자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여타의 부모들도, 생중계되는 사고장면을 목격하면서 트라우마를 겪어 오랫동안 괴로워했다고 한다. 조국대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는 자신과 상관없는 한 가족의 몰살을 통해서 이름 모를 희열과 대리만족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삶을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막연하게나마 자신의 부모님과 자신의 아들딸들이 사지로 내몰리는 고통의 공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민의 인터뷰는 우리가 우리보다 다소 나은 혜택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시기질투하지 않고 이유없이 미워하지 않고, 오로지 당사자가 그 사람의 역량과 노력으로 판단되어도 충분하다는 인식을 일깨워준다. 검찰의 망나니질은 오히려 이 세상을 도덕적으로 살고자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반어적으로 드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검찰의 의도가 그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 꼼수는 역효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그들의 필연적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


  바람을 타고 들불이 불어오면 뒷걸음질 치면 안된다. 불이 불어오는 방향을 따라 도망가면 죽는다. 오히려 그 불을 과감하게 뚫고 반대편으로 나아가야한다. 조민은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23년 2월 6일 방송, -조민 인터뷰 편-

https://www.youtube.com/watch?v=ow-fMBniwfY&t=256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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