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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Feb 13. 2023

조국의 법고전 산책 / 2022

  기득권을 지키려는 검언 카르텔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한 법학자가 불구덩이에서 살아 나왔다. 자기 스스로 검찰개혁의 불쏘시게를 자청하며 이 나라의 숙명적 법조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위하여 기꺼이 메스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보복은 가혹했다. 그와 그의 가족은 사법 활극의 인질이 되었다.


  한 발짝 더 들여가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진실. 스마트폰의 인터넷 포탈 첫 화면에 24시간 내내 등장하는 자극적인 기사제목 한 줄. 대한민국의 전 국민이 이용하는 포탈의 메인화면 한 줄을 차지하려는 처절한 계략. 검찰과 언론은 그 한 줄을 독점한다. 그리고 전 국민 앞에서 자신들의 먹잇감을 마녀사냥한다. 하지만 보편적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 그들이 먹잇감에게 들이대었던 '법률의 잣대'를 자신들의 조직에게는 절대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으리라는 것. 2023년 2월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司法) 정의는 나락으로 빠진 상태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지나 유검무죄 무검유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마디로 '검찰공화국'이다.


  만신창이가 된 법학자는 어지럽게 작동하는 대한민국의 정치공학의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학자로서의 본분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는 재판을 받는 와중에 책을 몇 권 내었지만, 나는 그의 최근 저서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없었다. 멸문지화를 당하고 있는 최근 몇 년간의 그의 어두운 표정에서, 담담하게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학자의 노력과 가장의 인내를 목격하게 된다. 이전의 조국과 지금의 조국이 쓰는 글의 어조는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인 법고전서들이 이전에는 '지식'과 '사실'의 측면에서 다루어졌다면, 지금은 그에게 '인권'과 '정의'를 어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무엇이 법률적 진실인가'가 아닌, '무엇이 사람을 위한 것인가'에 대하여 집중하였는지도 모른다.


  법무부장관 조국과 법학자 조국 사이에는 커다란 협곡이 있다. 읽는 독자도, 글을 쓰는 작가도 그 협곡을 건너기 위해 애를 쓴다. 이 책은 그러한 협곡 사이의 불완전한 다리에서 긴장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온전하게 하나의 법 교양 해설서로 다가오는 것은 오로지 작가의 집중력 덕분이다. 그는 그 협곡 사이에서 우물쭈물하지도 않았고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비롯한,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현인들의 저서를 하나하나 인용하여 차분하게 순서대로 설명한다. 그 어느 것 하나 인류에게 커다란 유산으로 남지 않은 것이 없는 여러 고전 속에서,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우리 삶을 관통하는 논리를 재발견할 수 있다면, 그 고전들은 오히려 현재의 시대적 값어치를 가진다.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법 해설서를 이렇게 일목요연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만든 것은 작가의 능력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호소하고싶은 열망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법고전에 대한 이해이자, 법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난 몇 세기 간의 서양 역사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챕터별 주제와 서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법체계와 인권이 발전해 나갔던 방식대로 정리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법을 들여다보면서 점점 '인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작가의 시선이기 이전에, 법의 본뜻이나 본질적 속성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 책은 법학자 조국이 인간 조국에서 헌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책에 인용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먼저 사람이 되고, 그다음에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함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당하게 사람을 잡아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으로 있을 곳은 감옥뿐이다.


  진정한 작가는 자신의 심혈이 글로 드러난다고 한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정리된 이 책의 문장들 속에서, 나는 작가의 '법체계에 대한 기대'와 '인간에 대한 애착'을 다시금 확인한다. 만약 내가, 혹은 우리가 성숙한 민주주의의 깨어있는 시민으로 남아있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선택한 권력이 우리에게 올바른 법을 적용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확인하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가의 주인이 법률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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