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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Feb 20. 2023

김어준에 대한 세번째 소고(小考)

나는 그를 '정의로운 광대'라고 표현한다.

그 족보는 '나꼼수' 훨씬 이전 '딴지일보'에서 기원한다.

2000년 5월 내가 전역할 때 즈음해서, 

당시 활황하던 인터넷 시장에 '딴지'라는 이름이 들썩하였다.

'광대'는 무언가를 예감하였던 듯하였다.

복종과 규율을 강요하던 군대문화에서 벗어난 나에게

'딴지'라는 일탈은 일종의 우회적 조롱이었으리라.


군부와 독재의 시대가 끝나고,

'국민의 정부'라 불리던 본격 민주화의 물살에 힘입어

인터넷 기반은 그야말로 발돋움했다.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 PC게임, 동호회 등....

Y2K와 더불어 새로운 지평이 펼쳐졌고,

사람들은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새로운 행성을 찾아 개척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언어는 발돋움하였다.


아마도 그때 즈음 사람들은 어떠한 예감을 맞닥뜨렸을 것이다.

무언인가 세상을 향해 잔가지들이 뻗어나가고 있다.

사람은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다는 것!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도처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염탐하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숨어있는 것이 드러나는구나!


그는 '리버럴(liberal)'이었다.

어쩌면 '집시(gypsy)'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인들 어떠하리,

사람들이 망각하던 어떠한 '어구'

사람들이 염원하던 어떠한 '통찰'

사람들이 담아두던 어떠한 '정서'

그는 그것을 핀셋으로 고스란히 끄집어낸다.

세상 밖으로 보란 듯 드러난 역겨움은

오히려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문명인들은 그것을 '해학'이라 칭한다.


해학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드러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을지 몰라도,

그것은 일종의 농축된 쾌락이었다.

증오와 혐오의 뿌리가 희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분노와 염증의 농도를 쌓는 것 못지않게

그 위에 덧 쌓인 조롱과 덧없음의 코미디도 찬미해 주었다.

손바닥을 뒤집으면 과연 무엇인가?

어쨌건 웃음을 유발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웃는다.

슬픔이건 기쁨이건.


그가 걸어온 광대의 시간은 의외로 길다.

우리는 웃느라 눈치채지 못했을 그 시간.

정의로운 광대는 오로지 하나의 탈을 뒤집어썼던 것.

그것은 바로 '상식과 정의'

그 누군가는 편향되었다고 폄하하지만,

당사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 편향의 과정은 '공정'이라는 변(辯),

그 너저분하고 구태의연하다던 '공정'이라는 탈.

과연 그에게 그것들은 반드시 붙들어 매고 끌고 갈만한 것이었을까.


그래도 우리에게는,

적어도 찬란한 한반도 강산을 뒤덮은

수많은 피 비린내의 개인적 분투와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사적인 역사의 의로움을

언급해 주는 누군가는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도 21세기에 어울리는 상식의 언어와

약자들을 한 번 즈음은 생각하게 해주는

그 어떠한 모양새의 언어가 있지 않을까.


난다 긴다 하는 언론인,

잘 나간다 하는 유명 미디어 인사들,

나 잘났다 하는 능구렁이 정치인들,

대단한 것을 꿈꾸고 있다던 고시패스의 법조인들,

그러한 판토마임의 제스처와

트루먼 쇼를 방불케 하는 뻔한 연기

뻔뻔한 거짓말과

속 보이는 허세 앞에서

그는 일침을 놓는다


조까! 씨바!

뻥치고 있네!


고귀한 교육을 받은 초 엘리트 가문의 '인지부조화',

내놓은 것만큼 돌려받아야 하는 논리로 무장한 '확증편향',

사람이 누리는 부귀영화를 오로지 

밥그릇 쟁탈전으로 몰고 가는 법조계의 비루한 '사법칼부림'에 대하여,

국민 개개인과 약자들을 거대한 비료로 치부하는 재벌과 거대권력에 대하여

그는 또다시 농으로 맞불을 놓는다.


쫄지마 씨바!


우리는 얼마 되지 않은 과거로부터

개인 미디어의 영향과

그로 인한 민심의 흐름을 목격한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 한 명이면 족하다!

수는 중요하지 않다.

바른말 하나가 중요하다!

물살을 만들어낸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최태민,

천안함의 진실,

다스는 누구의 것인가,

세월호의 항적은 실제로 어떠했는가,

검찰의 밥그릇 모양새,

언론은 무엇으로 먹고사는가,

박근혜 7시간의 진실,

검찰과 언론은 왜 한 패거리인가,

수구세력은 왜 검언과 가까운가,

진보는 왜 도덕적으로 페널티를 받는가,

등등부터 시작해서

문화, 예술, 스포츠, 

그리고 숨어있는 재야의 인사들까지

김어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는 이 사실이 놀랍다

왜냐하면,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부분이므로,

심지어 정치인들 까지도...


그가 재야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내느라 고군분투하는 동안

세상을 의식한 유명인들이 하나둘씩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눈을 의식한 것이든 아니든

김어준의 독립투쟁을 방관하면 안 되겠다는 허세였든 상관없이,

실제로 의식 있는 지식인들은 발을 맞추어 주었다

그래서 시너지 효과가 난 것도 있었지만,

김어준은 본래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번 더 외친다!


너무하네 씨바!

도와주라 쫌!


그는 어디까지나 광대이다.

우리는 삐에로의 우스운 분장 속에서 울고 있는 코미디를 본다.

이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일당 백'이다

이 세상이 일당 백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일당 백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이 보잘것없는 한반도의

아슬아슬한 숙명적 역사의 생명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국민 개개인들의 집단지성과

한 번의 칼부림으로 목을 날려 없앨 수 있는 지성인들의

개인적 사투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기막힌 사실!


잘 나가던 공영방송에서 쫓겨나 망명정부 방송을 하고 있는 그는

오늘도 비상식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권력자의 꼼수를 고발하기 위해서

되지도 않는 박치로 노래를 부른다.


열두 시에 만나요 삼천삼백 

둘이서 만나요 팔만주에

살짝궁 데이트

도이치 모터스~


그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법한

시시콜콜한 정치 이야기

그 누구 하나 자신의 밥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을 법한 음흉한 시사 이야기

그는 오늘도,

그 누가 억지로 뒤집어쓰려고 하는

멋진 모양새와 허세 가득한 아나운서의 폼을 마다하고

청취자의 이해력에 초점을 맞춘 볼품없는 코멘트를 덧붙인다


그래, 어떻게 되나 한번 봅시다!


우리나라 역사에 그러한 캐릭터는 없었다.

우리는 그를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아는 것은 그의 말(言)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이러한 시국에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발언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말하라! 내가 그대를 볼 수 있도록!"


자신이 아닌 것을 위해서, 자신을 불사르는 광대,

결국 촛불은 자신을 태워 다른 것을 밝힌다.


볼품없는 광대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고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

더 늦기 전에!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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