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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Mar 19. 2023

La Strada, 길 / 1954

안소니 퀸 / 줄리에타 마시나

  인간이 왜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지 깊고 은은하게 느껴볼 수 있는 영화이다. 길은 우리 앞에 주어져 있고 모든 인간은 자기만의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시간은 길과 함께 하고 있으며 돌이킬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일방통행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일회적이고 불가역적인 가치에 대한 회한과 통한의 슬픔을 우리는 모두 각자 하나씩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가. 왜 그때는 그 생각을 못하였는가. 왜 그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었던가. 왜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공허와 아픔이 밀려오는 것인가.



  연극무대처럼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이 발랄하고 짜임새있는 고전작품은, 실존과 인간 고독에 대한 의식을 파고들었던 1950~60년대 영화들의 힘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당시 프랑스 영화와는 확연하게 다른, 이탈리아 영화 특유의 우화적 제스처와 회화적 뉘앙스가 시각을 사로잡는다. 짙고 두꺼운 눈썹을 만드는 미간. 힘을 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동자. 자유와 생명을 찾아 이리저리 진동하는 여러 생명들의 분주한 움직임 같은 것들이, 세계대전 이후 각자 정체성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남부여대의 비극을 품고 있다.



  만약 신이 있다면, 하나하나의 영혼에 보란 듯 육신이라는 껍데기를 씌워 세상에 던져 놓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차가운 마초의 피가 흐르는 무심한 잠파노와 따스한 외톨이의 피가 흐르는 이방인 젤소미나의 만남을 통하여, 이 잔혹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냉혹한 현실을 헤쳐나가면서도 두 손으로 꽉 쥔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보존하고픈 그 어떠한 가치에 집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언제든지 짓밟히고 버림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나약한 들꽃조차도, 온갖 풍파를 이겨내고 햇빛을 마주하며 그 자체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낸다. 하지만, 모든 꽃은 이지러지고 사라진다. 무심코 그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생의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고독의 무게가 엄습해 오는 그 시간에 불현듯 그 오래전, 길을 걸어가던 자기 발 옆에 밟히던 꽃들을 떠올린다. 인간은 미련을 갖는다.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그것 또한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가까이 있거나 흔하게 존재하던 때 알 수 없었던 가치는, 그것이 누락되고 사라지고 난 다음에 돌연히 후회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혜택,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비록 이렇게 지독한 풍요 속의 빈곤처럼 뷰유한다 하더라도, 그 언젠가 모두 나의 손에서 빠져나가고 내가 필요할 때 나에게 따스함을 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복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늙어버린 잠파노의 회한에 찬 듯한 눈빛과 무겁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고 무언가 가슴을 짓누르는 비감과 인간애의 눈물을 동시에 느낀다면 아직 당신의 심장 속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감히 감정의 시금석이라 불려도 될만한 오랜 영화를 예찬하며.


 

끝.


La Strada 영화감상 사이트 (유료 500원)

https://me2.do/5WBTRB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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