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귀족과 노예로 구분되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분법 적인 상하관계나 지휘체계가 아닌, 수평으로 넓게 퍼진 인간 개개인들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밀알 같은 존재가 되어 고유의 개성과 가치를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시대이다. 날씨가 좋은 날, 옷장에서 옷을 하나 입더라도, 박에 나가 누군가 동일한 옷을 입고 있으면 마음이 꺼려진다. 본인 자신의 아이텐터티가 분할되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인간 개개인은 자아의 독립된 고유성을 보존받고 싶어 하고, 그것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이 되기를 원한다.
빅데이터와 Ai 같은 IT시대의 혁명기술은 인간의 그러한 고유성을 몰개성화한다. 그것은 거대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세워놓은 기술의 집합체이다. 그럴싸한 테크놀로지 영어 단어들이라는 것들이, 얼핏 들으면 이 세상을 바꿀 것 같고 미래시대가 도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막상 개개인의 일상에는 별다른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 개개인이 아닌, '초 거대기업의 만족감과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어느 시간에 어디로 가는지 휴대폰 제조사가 알 수만 있다면, 그것을 활용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수억의 사람들이 어떠한 시간에 주로 어떠한 장소로 가는지, 특정한 시간에 주로 어떠한 앱을 많이 사용하는지 일반인들이 알아서 무슨 행복감이 생기고 돈이 생기겠는가. 하지만, 기업에게는 상상하지 못할 막대한 이익과 권력이 생긴다. 기업은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것을 위해서 소비자를 유혹한다.
물론 그러한 개인정보는 법적으로 개인이 허락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그 복잡한 사생활보호의 시스템 앞에서 개인이 모든 것을 방어하기란 불가능하다. 매년 등록해야 하는 자동차 보험 하나만 들려고 해도, 웬만한 나의 정보는 오픈해줘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저렴하게 배달시킬 수 있는 쿠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체험티켓, 엄청난 양의 이벤트와 경품 등, 모든 기업들은 무료나 혜택을 미끼로 소비자의 주머니를 노린다. 하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단순한 제품의 홍보가 아니다. 거대기업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와 Ai이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의 패턴만 파악하면, 예전과 같은 소모적 노력을 하지 않고도 더욱 거대한 양으로 쉽게 돈을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사회복지나 의료혜택을 위한 정책적 목적이 아닌 이상, 빅데이터나 Ai, 혹은 ChatGPT 같은 현란한 광고문구는 절대로 당신의 개인적 일상에 행복과 이익을 제공하지 못한다. 오로지 기업의 이윤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 시대의 지혜로운 지성인들은 한 목소리로 인간의 고유가치와 개인적 다양성을 추구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나 자신의 정보와 데이터를 신중하고 폐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정체성과 정보가 어떠한 기업과 집단의 커다란 데이터 속의 일개 숫자로 치부되기를 거부해야 한다. 어느 날, 이메일이나 전화로 나만을 배려해 주는 듯한 유혹을 해올 때, 그들이 대면하고 싶어 하는 것이 과연 나의 고유한 정체성인지, 아니면 하나의 실적과 숫자로 치환하려는 조직의 돈벌이인지 파악해야 한다. 어느 보험회사에서 광고 전화가 올 때, 그들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해 줄 시간은 단 몇 초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들이 당신이 좋아하는 색과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책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어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고리타분하고 답답할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과 정보를 보호하라. 바쁘더라도 휴대폰의 모든 위치정보와 연락처 공유를 차단하고, 필수가 아닌 선택적 정보 제공을 해지하라. 누군가가 눌러준, 좋아요 개수보다는 당신의 고유성을 거론하는 하나하나의 댓글과 조언을 중요하게 생각하라. 학급에서, 조직에서, 단체에서 여러 명 중의 한 명으로 치부되는 수강생 이기를 거부하고 당신의 이름과 성격과 가치관으로 거론되는 존재로 활동하라.
세상은 대량 소품종의 시대가 아닌, 소량 다품종의 시대를 넘어 셀 수 없는 개별 품종의 시대로 가야 한다. 그것이 유럽의 인권 선진국들이 추구하는 생활의 방식이다. 그 나라들 대부분이 맹목적인 IT발전과 인터넷 기술에만 매달리지 않고, 주어진 자연을 누리면서 자신의 육체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이다. 막대한 자본의 굴레에 올라타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씌워진 배금주의의 멍에를 짊어지지 말고, 소소한 개인, 독창적 가정, 이 세상에 고유하게 드러나는 하나의 개성적 존재로 일상의 행복을 영위하라.
현대의 기업들은 우리를 소비자라 부른다. 구글 같은 기업은 우리를 빅데이터의 한 점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몰개성적 존재로 환원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안에 나만의 작은 우주를 건설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현실의 우주가 빛나는 별과 행성, 블랙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크레페 케이크를 닮은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들이 조용히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와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김영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