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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pr 28. 2023

600년 고도(古都)의 위엄

수 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도시의 건축물들을 지키기 위한 유럽 선진국들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스페인은 가우디의 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지금은 퇴색해 버린 의미의 종교적 공공 건축물을 19세기부터 200년간 지독하게 쌓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샤워 한번 하기 위해서 커튼을 치고 물이 조금이라도 옆으로 튀지 않도록 별 짓을 다해야 하는 유럽의 오래된 석조 주택들은, 도시미관의 개선과 철거할 정도로 낡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구시대 유물의 건축적 명맥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불편한 고집. 한국의 아무리 허접한 3류 건설사라도 지하주차장이 없는 3층 건물이라면 일주일 만에 몽땅 때려 부수고 3~4개월 만에 다시 지어 올릴 수 있을테니,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국민 다수가 이용하는 공적인 광장, 시민 의식과 역사적 흔적이 서려있는 건축물을 세우고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 도시의 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선진국가와 도시, 정치인,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상적인 정서이다. 개인의 사적인 이익이 아닌, 그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공공 건축물과 광장을 설립하고, 공익을 위해 생을 헌신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거리를 만들고, 한번 다져놓은 보도는 쉽게 뜯고 다시 까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보다 IT발전이 더디고 일처리가 느리다고 놀려대는 유럽 선진국들에서 하는 일들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미숙하고, 열등하고, 더럽고, 게을러서 그렇게 오래된 거리와 건물과 조각과 상징물들을 미치도록 아끼고, 보존하고, 그대로 놔두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세게 최고의 건설기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콘크리트 문화는 대한민국의 주거문화와 역사를 드러낸다. 수천 채의 아파트 단지를 2년 만에 찍어내는 기술은, 그 면적과 스카이라인을 잠식하고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결국 600년 고도의 역사와 전통은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아파트 공화국에 의해서 세뇌당한다. 수험시절 커다란 꿈을 가지고 그 커트라인 높다는 건축과에 입학하여,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분해하고 그려보고 토론하면서 나는 반드시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작지만 나의 혼신이 담긴 건축물을 설계하리라 마음먹었던 그 진실한 희망.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자그마한 공간 속에 숨겨진 철학과 의미를 되새기던 그 순수한 열망. 하지만 보라, 건축학도 졸업생이 처음 사회로 나가 일반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창문 면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로 경쟁하듯 커다랗게 글자만 빼곡하게 채워 넣은 총천연색의 간판으로 뒤덮인 상가건물 아니면, 두부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한 평면으로 쌓아 올린 콘크리트 더미의 아파트 단지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어떠한 철학적 담론도, 어떠한 스케치도, 그 어떠한 인문학적 의도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분양받은 권리에 대한 이익을 관철시켜 주는 행위, 또한 건축사무소에 용역비를 지급해 주는 갑의 이익을 늘려주기 위해서 최대한 용적률을 끌어올리고 법적인 꼼수를 찾아내어 지방의 공무원들과 다투는 것만이 미화될 뿐이다. 결국 졸업한 건축학도의 제도판은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고, 홀더펜과 지우개, 트레이싱지와 컬러마커는 창고로 처박힌다. 남는 것은 계산기와 컴퓨터 모니터 속의 엑셀 뿐.


공익과 역사의 흔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돈을 가진 개인들의 허세와 재산증식을 위해서 존재하는 초고층 아파트의 청사진이 온통 기사를 잠식하는 서울 건축문화의 찬란한 초상을 보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온갖 회색 콘크리트 더미들이 경쟁하듯 높이를 뽐내고, 문화유산이나 각종 유적지의 미관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영어이름을 그려넣은 아파트만이 여기저기 솟아나고 있지 않은가.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기업이 파리에서 간판을 한번 내걸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고통은 온갖 규제와 제한과 클레임과 시안변경 같은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역사와 전통을 우선시하는 도시에서 돈을 많이 가진 재벌기업이 끼어들기 위해서 그들은 완전한 을이 되어 도시의 요구에 맞추어 허리를 숙이거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그 반대이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우리 아파트 단지의 상가로 들어오면 집값이 상승한다는 입주민의 빗발친 요구에, 입주자대표가 스타벅스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제발 우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와 달라며, 원하는 형태 어떠한 색상으로든 거대하게 간판을 달아주겠다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은, 600년 역사의 고도가 그 위엄과 품격을 드러내는 또 다른 형태의 자부심일지도 모른다. 


"서울은 600년이나 된 오래된 도시라고 합니다. 이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뭐가 있나요?"

"우리는 당신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돈을 만들어주는 비싼 아파트가 많이 있습니다. 네모 반듯하고 하늘을 찌르듯 솟아올라있는 위풍당당한 건축물들이지요. 이 건물들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아갑니다. 이 아파트 단지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 조원이 넘거든요. 이 건물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그 자체이고 정신입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이해가 잘됩니다. 모든 아파트 단지에 고유한 브랜드 이름이 붙어있고, 들어가는 입구들은 모두들 이집트 신전을 방불케하는 게이트가 형성이 되어 있더군요. 정말 화려해 보입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묘한 영어 이름들이 붙어 있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제가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왔지만, 무슨 말인지 인해가 잘 안가는 단어들을 커다랗게 다들 붙여 놨던데요?"

"그것은 그 건물의 아이덴티티 입니다. 그랑데, 파크, 캐슬, 에듀, 리버, 퍼스트, 드림, 타운, 오션, 포레스트... 얼핏 보면 모를듯한 그러한 영어식 표현들이 유식해보이고 동네의 품격을 높여주거든요. 있어보이잖아요!"

"아..... 네......."


우리는 그러한 자부심을 가진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는 나즈막하게 숲과 조화를 이루는 경복궁이나 육조거리가 아니다. 사람들의 시야를 죄다 가리고,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올라가는 아파트 재건축 아파트가 형성하는 직사각 콘크리트 스카이라인이 이 도시를 상징하고 설명할 것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초거대 건설회사들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이 기막힌 기술로 찍어내는 초고층 아파트들을 가졌다. 그 건물들 주변을 걷다 보면 비릿한 돈냄새가 나고, 나 자신이 재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 채당 수십억을 상회하는 빛나는 금자탑 주변을 걷자. 온 가족을 대동해서 돈이 흘러넘치는 콘크리트 더미의 정신을 음미하고, 하얀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빼곡한 고층아파트의 하늘을 우러르며, 언제 나도 이 도시에서 저러한 집 하나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자. 고궁과 문화유적이 나에게 십 원 한 장 준 적이 있나, 아니면 밥을 한 끼 사준 적이 있나. 오로지 부동산을 숭배하자, 아파트를 찬양하자. 내 돈을 불려주고 나를 안심시켜 줄 건축물 더미로 이 도시를 채우자. 어쩌면 언젠가 우리 눈에 진정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를, 저 네모 반듯하고 거대하며 사랑스러운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더미로 600년 고도를 상징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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