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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ug 31. 2023

디케의 눈물 / 조국

법 연구에 매진한 학자의 절규는 소리를 잃고 메아리만 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산 저산을 맴돌아 다시 돌아온다. 심연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심연 또한 당신을 쳐다본다는 니체의 경고처럼, 검찰개혁을 꿈꾸었던 법학자는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무려 4년이다. 심연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정의의 여신인 디케가 눈물을 흘리게 된 이유를 책 전체에 대해서 읍소한다.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을 이용한 지배'에 이 나라가 배신을 당했다는 것. 이내 곧, 정의의 본질을 분실한 디케는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로 변신했다. 이제 그 복수의 여신은 검을 휘두른다. 그런데 그 검(劍)이 아니고 저 검(檢)이다.


인류문명의 권력이라는 것이 '신분'에서 시작하여 '무력'을 거쳐 '자본'과 '정보화 시대'로 가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의 권력이라는 것은 '군부독재'를 거쳐 '민주화'가 꽃을 피우고, 그 민주화가 해체한 정권의 성역을 파고들어 '재벌중심의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렸으니, 자본의 독점에는 '법조의 비호'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막강한 검찰의 탄생에는 역시 배금과 천민자본주의의 사각지대가 한몫했다. 


이 책은 조국 전 장관이 2014년에 쓴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를 수정, 보완하여 다시 선보인 에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책을 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번 에세이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권력탄생의 배경과 법의 지배가 어떠한 탈을 뒤집어쓰고 오용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피력한다. 


법치는 법의 지배이지 법을 이용한 지배가 아니다. 법치가 법을 이용한 지배가 될 때 법은 법의 외피를 쓴 폭력이 된다


우리는 인간의 삶과 행복, 복지와 가치추구를 공부한 적도 없고, 시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내용의 인문학 소설들을 다양하게 읽은 적도 없이, 오로지 하얀 종이에 빼곡하게 들어찬 법조문 활자와 어려운 용어의 한자만 공부한 '고시합격생', 혹은 '수사기술자'들의 조사와 판결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트에서 빵을 훔쳤다면 왜 그 빵을 훔칠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이 몇 년의 형량을 받아야 하는지만 따지는 사람들에게 디케를 보낸 것이다. 디케는 '법조문 여신'이 아니다.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의의 여신'이다. 디케의 눈물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놓고 칼춤을 추는 검찰.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대선후보가 몸담았던 조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정부요직에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꿰차고 있는 네메시스의 수하들. 도대체 당신들은 디케를 어디로 끌고 가서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조 전 장관은 무간지옥의 수렁에서 그나마 힘이 되어준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린을 건드렸다고 자책한다


나의 가장 중대한 잘못 탓입니다(Mea maxima culpa)


하지만, 나는 정의와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독백한다.


도대체 당신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법과 법률은 다르다. 법이라는 것이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질서를 뜻하는 어떠한 약속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법률이라는 것은 그러한 법이 세상에서 어떻게 현실화되고 실행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행동 같은 것이다. 즉, 전자는 약속이고 후자는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약속과 행동 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다양한 해석을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결국 법의 직간접적인 주체는 사람인 것이다. 이 말은 곧, 법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사회 속으로 내보내졌지만, 사람들은 그 법을 다시 손에 쥐고 싶어 한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이율배반이다. 디케의 슬픔에 공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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