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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Mar 02. 2024

MZ 세대는 왜 불행한가?

일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들 보고 투정 부리지 말라고 해왔다. 버릇없이 굴지 말라고 하고, 인생이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고 조언해 왔다. 2500년 전 그리스 시대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결국 이러한 신구세대의 다툼은 영원히 이어진다는 소리이다. 지금 한창 묘한 변곡점에 서있는 대한민국의 MZ세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기들이 특별한 불행에 처해있다고 유별나게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MZ세대의 처지 중에서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기성세대에게 사냥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도 기성세대가 어리고 젊은 세대들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살아왔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이 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의 유별난 점이다. 한마디로 부모세대에게 먹힌 것이다. 


1. 정의를 부정하는 식민역사의 싹(1900~50년)

온전하게 민주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던 시기가 허술했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제식민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고 우리의 손으로 온전한 나라를 다듬어 두 발로 설 수 있었던 시기에, 나라를 팔아먹고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매국노들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했다. 꼼수를 부리고 타인들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악하게 살아가는 것이 죄악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비천한 대접을 받았으며, 오로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타인들을 짓밟고 나라를 팔아가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 그 해당 가족들이 대대로 찬란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는 본보기가 전해지고야 말았다. 이것은 한반도 5000년 역사의 비극적인 매듭이었다. 나치에 부역한 악마들을 남김없이 처단한 드골의 프랑스를 본받지 못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은 이타적이고 정의롭게 사는 것이 바보 같은 것을 알게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타인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피해를 주면서까지 권력을 가져오고 이익을 채우는 것이 선이고 정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80년대까지 이어진다.


2. 자식세대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625세대의 대리만족 본능.(1950-70년)

6.25를 기점으로 해서 그 앞뒤로 태어난 세대들은 나라가 발전하고 격동적으로 변화하던 시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했고,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몸으로 체험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가족을 이루어 치열하게 일상을 이어갔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각자의 운명을 지켜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없는 사람은 돈을 벌기가 힘들었고, 이미 갖추어져 있고 이미 손에 무언가를 쥔 사람들만이 승승장구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위정자들은 공권력을 남용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죄 없는 국민들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 여전히 추앙받고 상식으로 여기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거치는 동안 군사정권이 이 나라의 정신을 지배했으며, 국민들은 바쁜 일상과 험난한 생활에 매진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독재의 악취에 세뇌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아이를 낳고 가정을 만든 사람들은, '내 자식세대는 이러한 고생을 시키지 말아야겠다. 혹은, 내 새끼는 어떻게든 출세시켜야 한다'라는 집착의 굴레에 들씌워지게 된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세대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어떻게든 대학이라도 들어가서 입신양명하고 집안을 먹여 살리기를 바라며 자식을 키웠다. 농촌의 부모들은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해서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 했고, 집안의 여자들은 여동생 혹은 누나라는 죄명으로 공장으로 가서 일을 하거나 학업도 이루지 못한 채 오로지 그 집안의 아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비천하게 대접받고, 부조리하고도 정의롭지 못한 나라에서 하층민처럼 살아왔어도 아들이 대학에 합격에서 서울에서 근사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보상받았다. 아들들은 부모의 노후를 챙겼고, 집안의 살림살이를 풍요하게 해 주었으며, 이러한 인생의 굴레가 진리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3. 이기주의의 편리함을 착각한 21세기 부모들의 실수(1970-2000년)

70년대 즈음에 태어난 세대들 중에는, 그 이전의 부모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하는 가치를 공유했다. 농촌에서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며, 서울에서 고부가가치 일을 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한다. 사람들은 서울로만 모여들었고, 대학입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IMF 같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20세기 마지막 세대들은 급격한 민주화와 산업화, 정보통신발달의 혜택을 누리면서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했고, 자칭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면서 X세대로 변화한다. 이들은 결혼해서 자식을 많이 낳지 않았다. 문화적인 풍요와 정보통신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야 했고, 옛날처럼 자식에게 인생을 올인하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에게 자녀라는 것은 소중한 열매였지만, 자신들이 노후를 맡기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식의 일생을 책임지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들이 민주화시대에 거쳐야 했던 불필요한 고생을 시키지 않고 풍요한 과학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자식을 하나 아니면 많아야 둘 정도만 낳았고, 옛날과는 다르게 뛰어난 문화적 배경과 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부유하게 키울 수 있게 된다. 유모차와 일회용 기저귀, 온갖 고급스러운 육아용품의 전성기가 2000년대 초반에 펼쳐진다. 거친 음식이 아닌, 달고 부드러운 음식. 거친 옷이 아닌 부드럽고 따스한 옷. 불편한 엄마의 포대기가 아닌 안락한 유모차. 이 모든 화려한 문명의 산물들이 아이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했고,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아이들의 성장을 이루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아이들의 기쁨과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부모의 기쁨과 편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값비싼 유모차에 아이를 앉히면 아이가 기뻐하고 행복해할 것이라고 착각한 부모의 허세와 기쁨이었다. 성인의 옷보다 비싼 유아복과 장난감을 사주면 아이가 즐겁고 행복해할 것이라고 착각한 부모의 허세와 기쁨이었다. 씹지 않아도 쉽게 목으로 넘길 수 있는 달고 부드러운 가공음식을 주면 아이가 즐겁고 행복해할 것이라고 착각한 부모의 허세와 기쁨이었다. 하루종일 유모차에 앉은 아이들은 걸어 다니면서 주변의 식물과 사물에 대해서 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발로 중력을 이겨내면서 몸체를 지탱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렸다. 값비싼 유아복을 새것으로 입어야 했던 아이들은 변화하는 주변 온도와 환경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폐쇄적이고 민감한 면역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시도 때도 없이 감기와 장염으로 시름해야 했다. 부드럽고 달콤한 가공음식을 삼켜야 했던 아이들은 이름 모를 아토피에 진종일 피부를 긁어대고 울면서 자신의 괴로움을 알려야 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위하는 것이랍시고 해주었던 혜택이 실은 신들의 문화적 만족을 위한 착각은 아니었을까.


4.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소비층의 이동

20세기의 TV에서는 삶의 체험을 미화하고 일상의 고된 현실을 극복하면서 성취를 이루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미스코리아나 연예인들이 멍석위에 있었지만, 그들은 외모와 돈을 미화하지 않았고, 대박의 꿈과 허무맹랑한 벼락부자의 꿈을 그리는 것을 불편해하였다. 연예인들이 TV에 나와서 활동하는 것이 일반인들 자신의 삶과 극적으로 비교되어 스스로에게 허무함과 패배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살아가고 소시민은 소시민 자체의 삶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연예인 얼굴을 따라서 무리한 성형을 하지도 않았고, 또한 괴랄하게 외형과 풍토를 쫒으면서 일상을 내버리지 않았다. 미디어와 시장의 논리는 돈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상품을 만들어내었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사 먹었으며, 돈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면서 즐겁게 살았다. 없는 것이 서럽기는 했지만, 없다고 자살하는 것이 당연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상업문화의 타겟이 바뀌게 된다. 일하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의 일터를 구경해 본 적도 없고, 부모를 위해서 내복을 산다거나 용돈을 주어본 경험도 없이 오로지 달콤한 가공식품을 먹고, 비싼 유모차를 타고, 고급 유아복을 입으면서 귀하고 편하게만 자란 세대들은 자신들의 일생에서 고통과 고난이라는 단어를 삭제해 버리기 시작했다.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파악하기 시작했으며, SNS나 TV에서 마네킨 같은  아이돌이 나오면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면서 마치 자신들의 일상 곁에서 항상 존재하는 사람처럼 어떻게든 똑같이 흉내 내고 따라 하려고 했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피곤함이 없는 세계. 티 하나 없이 완벽한 외모의 사람들과 상품들이 마치 생활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여러 가지 각종 방송 프로그램들. 마치 저 가수는 화장실도 가지 않을 것 같고, 하루종일 울어대는 갓난아이는 절대 낳지도 키우지도 않을 것 같은 태도의 품위 속에서 MZ세대들은 여전히 달콤하고 솜사탕 같은 자신들의 일상을 동일시하면서 지갑을 연다. 그렇다면 그 지갑 속의 돈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부모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편리하게 계좌이체해 준 돈. 아무런 생각 없이 귀찮으니까 편리하게 툭 던져서 자녀에게 쥐어준 신용카드. 용돈이 부족하면 학교의 다른 친구들에게 혹시라도 왕따를 당할까 봐 기죽지 말라고 돈으로 채워 넣은 그 호의의 흔적. MZ세대들은 돈이라는 것이 부모에게서 자동적으로 입금되는 하나의 권리 같은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엄청난 돈을 쓰기 시작한다. 미디어와 방송, 시장에서는 이제 MZ세대의 지갑을 털기 위해서 온갖 미사여구와 장식으로 은폐되고 꾸며진 가공의 상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수많은 아이돌문화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치 일상이 하루종일 데이트하고 낚시하고, 노래만 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착각에 이르기까지 그 달콤함은 극치를 향한다. 방 문을 닫은채 몇시간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만 보고 있어도 엄마 아빠의 잔소리, 집안의 지저분한 쓰레기들, 가족들의 다툼, 혹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진행해야 하는 대화와 갈등의 시간에 노출되지 않아도 된다. MZ세대는 소파에 누워서 손가락만 까닥하면 스마트폰 화면상에서 돈을 쓸 수 있는 시스템을 얻었다. 그들은 돈을 쓴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들은 부모세대이다.


5. MZ세대가 40대가 되면 비극이 시작된다.

공기업과 공무원이 되는 것은 현세대의 지극한 소망이 되었다.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힘들고 고된 일은 악한 것이고, 편안하게 오랫동안 보장받는 안전함이 선한 것이란다. 하지만, 공무원이라고 편하고 안전한가? 부모 세대들은 자녀세대들을 끝내 공무원 학원으로까지 내몰면서 돈을 챙기고 있으니, 인터넷을 한 번씩 살펴보라. 무슨무슨 에듀니 패스니 하면서 생겨난 공무원 전용 인강들이 얼마나 넘쳐나는가. 훗날 안정된 직장에서 돈을 벌고 싶으면 미리 돈을 내라는 것 아닌가. 부모세대들은 아파트청약에 매진하면서 어떻게든 부동산을 하나 마련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지만, MZ세대는 그러한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그 이유는 집값이 높아서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환경 자체가 대박의 꿈을 당연하게 만든 것에서 찾아야 한다. 집이라는 것은 현재 청약통장을 사용해서, 자신의 부양가족과 무주택 기간 등을 산정해서 필터링을 거쳐야 하는 구조이지만, 비트코인이라든지 주식은 그런 것이 필요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 빼고 모두가 몇백만 원 가지고 코인이나 주식으로 몇억씩 대박을 이루는 것 같고, 유튜브 방송을 한다든지 SNS 홍보를 통해서 쉽게 돈을 버는 것 같지 않은가. 힘들게 직장에 들어가서 상사에게 몇 년식 조아리고 줄타기를 하면서 아파트 분양을 위한 계약금을 마련하고 있는 와중에 바로 얼마 전에 들어온 내 옆의 신입사원이 코인을 사고 나서 내가 평생직장에서 벌어도 가지지 못하는 돈을 버는 것을 보고 박탈감과 괴리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MZ세대들이 정진해야 할 길은 없다. 정의롭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고,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우스운 짓이다. 그들은 길을 잃어버렸다. 그냥 멍하니 들판에 서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서 편하고 곱게 자라서, 거친 세상을 강건하게 상대할 수 있는 면역체계를 잃어버리고, 완전히 노출된 미디어 상품에 지갑이 털린 채, 인생이란 밝고 화사한 아이돌 인형 같은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유튜브와 인스타에 파묻힌 채 시간을 보내고 있는 MZ세대의 20년 후는 비관적으로 보인다. 이건 인구절벽일 뿐만이 아니라 세대절벽이고 인생절벽이다.


6. 진실을 바라보고, 자신을 추스른 채 대항하라.

MZ세대의 비극은 자신들의 탓이 아니다. 부모 세대의 탓이다. 그것도 625세대가 아니라 70-80년대 생 부모들의 탓이다. 물론 그들도 내가 가장 첫 부분에서 제기했던 역사적인 악순환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기에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굳이 책임을 묻자면 해방 이후에 제대로 된 가치를 세우지 못했던 세대에 돌려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온몸에 퍼진 암덩어리 세포들을 하나하나 뜯어내어 제거하는 작업처럼 지난하다. 


쉽고 편한 일이란 없다는 것을 직시하라. 그 어디든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구덩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 사람들이 내다 버린 것에 관심을 가져라. 에너지의 50%를 무모한 경쟁에 쏟아버리면서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리지 말고, 에너지의 50%를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에 투자하고 나머지 50%를 실력을 갈고닦는 데 사용하라. 참외 하나를 먹기 위해서,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비바람을 헤아리면서 마음을 졸이고 나 자신과 싸우면서 오랜 시간 기다리고 기다려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생의 좋은 꽃들이란 대부분 9번의 비참함을 견딘 후 1번 오기 때문이다.


광고에 현혹되지 마라. 인터넷과 유튜브 인스타는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디자인도 아니요, 기술도 아니요, 관심과 명예도 아니요, 패러다임과 의무감도 아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주머니다. 지난 1년간을 가만히 생각해 보라, 인스타와 유튜브를 통해서 내가 번 돈이 얼마이고, 내가 쓴 돈이 얼마인지. 그것이 현혹이다. 그것은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스타와 유튜브를 멀리하라. 지금 당장 온갖 SNS에서 해방되어라. 동서고금의 위인들과 현인들의 생각을 오직 책을 통해서 접하라. 자신 스스로를 위해서 글을 쓰고, 사유의 근육을 키워라. 그것이 MZ세대가 살 길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무모하게 도전하라. UFC파이터가 겁을 잔뜩 먹었으면서도 얼굴에 티를 내지 않고 성취를 위해서 기꺼이 상대방에게 도전장을 내고 케이지에서 피 흘리면서 싸우는 것처럼,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그것에 매진하라. 나는 가끔 UFC 경기 속의 핏자국들을 보면서 성장을 위한 대가와 흔적에 대해서 경외심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남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보기에 탐스럽고 그럴싸하게 존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피를 많이 흘려야 한다. 상처를 두려워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인생의 꽃 같은 모습은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삶을 추슬러가는 과정은 만만하지 않다. 일상의 온갖 갈등과 긁어부스럼이 나의 온몸을 휘감고 돈다. 아담한 커플링을 하나씩 나누어 낀 채 낭만적인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던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그보다 지독한 삶의 분투들이다. 내가 예상했던 결혼이 아니라고 투정 부리는 것도 변명이고, 너무 힘들다는 것도 변명이다. 단 하루라도 온전하게 자신 스스로 일해서 번 돈을 직접 손으로 매만져보라. 그것이 당신의 가치이다. 부족하다면 더욱 노력해서 가치를 올려야 하고, 만족스럽다면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 정승처럼 쓰기 위해서는 개처럼 벌어야 한다. 이제는 개도 유모차를 타는 시대가 아닌가.


행복한 인생의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나의 큰 꿈이 집 장만인지. 아니면 뜻이 맞는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인지. 혹은 내가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얻는 것인지. 혹은 다른 무엇이 있는지 본인만 알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아야,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그것이 없다면, 인생의 모든 시간이 고통이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고통을 이겨낼 정도로 즐거운가.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최우선으로 삼을 때 행복한가. 고민해 보라. 그리고 싸워라. 결국 쟁취하라. 타인에 대한 피해 없이 오로지 자신이 만들어놓은 자유로운 세계 속에서.


(퇴고 없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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