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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Mar 21. 2024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1854

부당하게 사람을 잡아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으로 있을 곳은 감옥뿐이라고 외치면서, 노예제를 비롯한 인종차별을 정책을 유지하고 영토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던 비도덕적 국가에 자신의 세금을 낼 수 없다며 기꺼이 감옥행을 선택한 인류의 영원한 스승 소로우. 그는 네임드 작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학자도 아니었지만, 저술가로서 혹은 사상가로서,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사람이 가져야 할 근원적이고 상식적인 가치에 대해서 몸으로 체험하고 설명한다.


수많은 정치인이나 미디어에서 소로우는 시민의 불복종을 선언한 투사나 연설가라는 상품으로 팔리고 있지만, 그는 주어진 삶을 사랑했던 평범한 시민이자, 자연 속에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생활의 기쁨을 추구했던 성실한 육체적 생명체였다. 그는 핸섬한 양복을 입은 화이트컬러도 아니었고, - 비록 하버드대학을 나왔지만 현학적인 말을 일삼으면서 책상에만 앉아 있었던 샌님도 아니었다. 그의 글에서는 흙을 매만지면서 생긴 손톱 사이의 검은 때와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구두 등짝의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월든은 소로우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육체적인 삶의 실존을 추구하기 위해서 선택한 장소였다. 그는 사람의 흔적이 없는 월든호수와 그 수풀 한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나무를 자르고 옮기고 쌓아 올려 집을 짓는다. 근육의 고통을 체험하며 손수 일구어내는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 그리하여 인간에게 점점 불필요해지는 것을 하나씩 덜어내고,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가치들만 영위하면서 그 안에서 지극한 정신의 행복을 추구했다. 이는 법정 스님이 추구했던 무소유의 삶을 떠오르게 한다.


자발적인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산업화와 영토확장으로 인하여 강성해진 자신의 조국이 점점 제국화 되어가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받는 노예들의 삶은, 인위적 파괴와 부와 과잉을 허락하지 않는 자연 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소로우에게 불합리한 일들이었다. 그는 월든으로 걸어 들어간 이유를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소중하게 여긴다. 인공물이 없는 자연 속에서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흔적이 어떻게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그가 어떻게 영향을 되돌려 받는지를 관찰한다. 생과 사, 어둠과 밝음, 부족함과 넘침, 필요와 공급의 줄다리기 속에서 자신의 눈높이를 욕망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항상 견제하면서 어떻게 하면 만족스러운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하면 불만보다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지 통찰한다.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집을 살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결혼을 할 수도 없고 가정을 만들 수도 없고 또한 아이를 낳지도 못해서 비극적인 미래를 그려야 하는 이 부조리한 시대에 커다란 울림을 주는 명저이다. 앞으로 월든은 우리에게 더 커다란 경종을 울릴 것이다. 


잔잔한 월든 호수의 파문을 주시하라. 덧없는 욕망들은 사라지고, 누추한 현인의 언어는 계속 남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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