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back Jun 12. 2024

명상록 / 아우렐리우스 / AD175

고대 로마제국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5현제 시대(AD96~180)의 마지막 황제이다. 그는 황제가문에서 태어나 위대한 스승들의 영향을 받고 마침내 황제가 되어, 외침과 내란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시민들을 다스리는 수련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칼과 창으로 쌓아 올린 피의 처세가 아닌, 명상과 사색으로 다진 내면의 훈련이다. 검투사와 전사, 갑옷과 칼, 마차와 경기를 연상케 하는 고대 로마제국의 무인(武人)적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일기는 그와 정 반대에 존재하는 철학적 가치관에 기반한 인식을 보여준다. 불필요한 미사여구가 배제된 간결한 언어와 함축된 문장들 속에서 지도자로서의 인격과 지극한 기품이 드러난다. 


아우렐리우스는 161년 황제에 즉위하고 180년 사망할 때까지 내외적으로 많은 전쟁과 내란을 겪어야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AD170 년 경 북부이탈리아로 침공한 게르만족의 침공에 대항하면서 전장에서 틈틈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겼는데, 그의 죽음 이후 이러한 자료들을 모아서 책으로 발간한 것이 '명상록'이다. 우리가 흔히 전쟁을 지휘하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문학적인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리더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명상록'은 리더가 어떻게 탄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명상록의 서두에는 마치 창세기를 연상케 하는 프롤로그가 펼쳐진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마주한 스승들과 가르침을, 마치 인생의 자양분인 듯 선언한다.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의 바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고백함으로써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리더의 자격으로 자신을 객관화하고, 황제의 계보에 막강한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루스티쿠스로부터 내 성격의 잘못된 점과 더 훈련해야 할 점들을 배웠으며, 궤변론자들의 수사법에 열중함으로써 그릇된 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과 확실하지도 않은 자신의 이론을 글로 쓴다거나 훈계조로 연설을 한다거나 금욕주의자나 이타주의자인 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스토아학파인 카를루스로부터 친구의 비난은 비록 그것이 온당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무시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 친구의 호의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플라톤학파인 알렉산더로부터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나 편지를 쓸 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 사용해서느 안된다는 것과 긴급한 용무를 구실 삼아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에 대한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세네카, 에피쿠로스 등의 철학을 다양하게 받아들여 자신만의 사유체계를 완성한 것이 맞을 것이다. 명상록은 한 곳으로 치우쳐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출신이었던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을 사숙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권위와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인으로서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한다.


'명상록'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 현재(現在) 하는 순간에 대한 집중, 사물을 보는 관점을 중시할 것, 그리고 공동선의 추구'라는 4가지 분류로 압축할 수 있다. 그는 명실상부 카르페 디엠의 추종자이다. 호타리우스의 계보를 명확하게 잇는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기록은 읽기에 편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의 언어는 매우 심플하다. 중언부언이 없고 기복도 보이지 않는다. 외부적인 것에 의해서 흔들리는 인간의 연약한 감정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으며, 자연과 우주라는 거대한 바탕에 일치되는 삶을 대범하게 진술한다. 인간의 모든 행복은 오로지 자신의 내부에 있다고 보며, 현재와 순간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전쟁터에서 침착하게 집필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한 그의 문장은, 글이 어떻게 사람의 면모를 드러내는지 알려주는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3천 년, 아니 3만 년을 산다 할지라도 당신이 잃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이 영위하고 있는 이 순간의 삶 뿐이며, 당신이 소유할 수 있는 것 또한 당신이 잃고 있는 이 순간의 삶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실패할 때마다 당신의 원칙으로 돌아가서 당신의 행동을 비롯한 대부분이 훨씬 더 인간다워졌음을 기뻐하라.
우주의 본질은 공공의 이익을 지향한다
이 지상의 생활에서 거두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수확은 내적으로는 당시의 내부에 있는 신성이고, 외적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뿐이다.
만일 당신이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에 대한 당신의 생각인 것이다.
인간은 어떤 일을 행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오로지 사람의 눈만을 현혹하고 모든 가치와 행복이 인간외부에 존재하는 물질과 재산과 권력과 명성에만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이 암울한 시대에, 인간이라면 반드시 묵상하고 곱씹어보아야 할 강력한 잠언이라고 생각한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솔닛 / 20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