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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n 19. 2024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인디언 연설문집 / 류시화 엮음

이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어쩌면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자, 대부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본모습과 경이로움의 가치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얼마나 값진 경험인가! 


여기에 지구 반쪽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과 미국인들에 의해서 강탈당하고 점령당한 슬픔이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마치 우리가 구한말 일본에게 처절하게 나라를 내어준 것 같은 슬픔이 오버랩된다. 어쩌면 역사의 시작과 동시에, 거북이섬이라 불리던 아메리카 대륙에 터전을 잡고 수천 년간 살아왔던 인류. 외부의 유입이나 간섭 없이 자신들만의 지극한 이타 정신과 자연친화적 가치관을 키워온 토착인. 지금의 미국을 구성하는 모든 문화의 뿌리이자,  Native American, 즉 오리지널(원주민)이라 불리는 인디언들의 격조 높은 잠언들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신과의 만남이 이렇듯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모든 언어가 불완전하고 진리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디언들의 영혼은 말 없는 찬양 속에서 신에게로 올라가곤 했다. 신과의 만남은 홀로 있음 속에서 가능하다고 우리 인디언들은 믿었다.


이 책은 그야말로 인디언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어설프게 알고 있던 그 야만의 어감을 모두 해체하고 가지런하게 나열하여, 미대륙 역사의 시초부터 차근차근 따라오게 만든다. 진정한 인생의 행복을 추구했던 지구상의 유일한 자연인. 모든 것을 대지의 감사함으로 끌어안고, 태양과 동물과 바람의 조화에 순응하면서 그 무엇 하나 인위적으로 소유하거나 낭비하지 않은 채,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아래 전체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서 욕심을 버리고 공생을 유지하는 것. 이것은 바로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오래된 인류의 초상화이다. 그것이 바로 인디언들의 혼 속에 숨어있었던 것이 아닐까.



대지를 잘 돌보라. 우리는 대지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로부터 잠시 빌린 것이다.


가져도 가져도 소유욕이라는 것은 끝이 없고, 평생 써먹을 일 없는 무한입시경쟁과 오로지 돈과 이권만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의 혐오가 왜 우리 사회를 잠식해 버렸는지 그 기원을 되짚어보게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마력을 지녔다.



당신 백인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욕설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우리는 남이 자기를 모욕해도 그것이 진실이 아니고 오해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오로지 부와 명예만 좇아서 살다 보면 막연하게 떠오르는 그 허탈함! 인생 끝날 때까지 도무지 머릿속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재산에 대한 맹목적 집착. 적어도 내 자식에게는 아파트라도 하나 물려줘야 한다는 끈질긴 배금주의. 과연 나는 인간으로 살고 있는가? 도대체 현시대의 인류는 왜 이러한 삶을 살게 되었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면 그는 인디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우리 인디언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자연에 자신의 모습을 자주 비춰보곤 했다. 자연의 숨결과 자신의 숨결을 동일시하고 대지의 맥박과 자신의 심장을 한 박자로 여긴다.


인디언의 철학과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따라가다 보면, 왜 우리가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논리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유교 성리학이나 불교의 가르침, 혹은 기독교 성경을 읽어도 알 수 없는, 격조 높은 명상의 수준이다. 그것이 바로 인디언의 가르침 속에 숨어있었다니!



사람들이 밀집한 불결한 환경에서 생겨나는 온갖 전염병보다 인디언들이 더 무섭게 여긴 것은 다른 사람들과 너무 자주 접촉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영적인 힘을 잃게 되는 일이었다. 자주 자연 속으로 들어가 혼자 지내본 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는 나날이 커져가는 강한 영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다 보면 그 힘이 금방 사라져 버린다.


아무런 힘도 없이, 수천 년간 보존해 온 태초적 환경과 어머니 대지를 잃어버린 인디언의 처지는 이 책을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여자와 아이 할 것 없이 수백만의 인디언을 학살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잠식한 유럽과 미국인들의 야만성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잠시 빌린 대지를 인간이 마음대로 소유할 수 없다는 인디언들의 가르침은, 총과 성경책을 손에 든 인간만이 대지에 선을 그어 원주민을 학살하고 쫓아내어 소유할 수 있다는 서구인들의 폭력으로 인하여 300년 만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인디언 신앙은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추구했다. 반면에 백인들의 신앙은 환경에 대한 지배를 추구했다. 나눔으로써 모두를 사랑함으로써 인디언 부족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얻었다. 그러나 백인 부족은 대상을 두려워함으로써 정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서양의 문화로 대변되는 현대인들의 삶은, 의도하지 않게 그 피와 정신을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오로지 돈만을 거머쥐려는 집착. 지구를 있는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 되고 인간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손을 대고 다듬어야 한다는 의무감. 타인을 누르고 이겨야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느끼는 그 알 수 없는 경쟁심. 도대체 그러한 것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뿌리가 무엇일까?



우리 인간은 진화의 맨 꼭대기에서 살아가는 가장 우월하고 전능한 존재가 아닌, 사실은 나무와 바위, 코요테, 독수리, 물고기, 두꺼비들과 함께 각자의 목적을 완성하면서 삶이라는 성스러운 고리를 구성하고 있는 일원일 뿐이다.


이 책에 그 해답이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완전한 행운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려면 지식이 아닌 지혜의 책을 읽어야 한다. 류시화 선생이 900 페이지나 되는 이 무지막지한 책을 기꺼이 도맡은 이유가 있었다. 


아.... 왜 나는 이 책을 이제야 접하게 되었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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