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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l 05. 2024

차이와 가치의 오해

높고 낮음

빠름과 느림

뜨거움과 차가움

길고 짧은 것

어두운 것과 밝은 것

많음과 적음

거친 것과 부드러움

들어가고 나온 것

꽉 찬 것과 비어있는 것

앞과 뒤

처음과 끝

머리와 발

이러한 것들은 차이이다

일종의 구분이고 서로 다름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

'편리함'과 '불편함'이라는 문명의 산물을 적용시키면

돌연 '가치'라는 것이 태어난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좋은 것,

가치 있는 것,

우월한 것으로 변모한다.


높은 것은 낮은 것보다 가치가 있고

빠른 것은 느린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많은 것이 우수한 것이고

무조건 앞, 처음, 머리가 좋단다

항상 꽉 차 있어야 하고

밝아야 한단다.


일본의 동전문화라든지 팩스의 사용

유럽국가들의 느려 터진 행정시스템이

항상 미디어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그들은 21세기에도 아직도 구시대적이고

느리며 답답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느린 것이 안 좋은 것인가?

그냥 조금 불편할 뿐,

불편한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헬스장에 가면, 인간의 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온갖 불편한 쇳덩어리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스스로 불편한 시간을 갖기 위하여 헬스장을 찾는다

근육을 단련하는 이의 표정은 마치,

살 속으로 칼날이 파고드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일그러진다

보는 나도 불편하고,

쇳덩이를 들어 올리는 이도 불편할 것이다.

그들은 이 편리한 시대에

왜 스스로 불편한 짓들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불편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풀이 우거진 언덕을 걷는 가족이나 연인들을 보면

서두르며 뛰지 않는다

간혹 아이들은 먼저 서둘러 앞으로 뛰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무조건 다시 되돌아온다.

그들이 느리게 걷는 이유는 주변을 살피며

여유 있는 호흡을 하기 위해서이다.

천천히 걸으면, 주변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문다

그러면 더욱 풍요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소리도 더욱 생생하게 들려온다

차를 타고 가버리면 되는 그 길을

그들은 왜 굳이 그렇게 느리게 걸어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느린 것이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느린 것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느린 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더 빠르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 시대가 병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빨리 가보았자,

더 많이 가져봤자

그만큼에 비례해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억 수백억을 가진 유명인들이 자살하는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가난한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나의 작은 경험으로 보건대,

느리게 이동했을 경우,

혹은 덜 가졌을 경우가

항상 행복했고 많이 웃었더랬다.


오래된 사진만 봐도 그렇다

부족하고 느려터졌던 시절의 사진들 속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항상 바보처럼 웃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많이 유복해지고

편리해지고

말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사진 속 사람들은

웃고 있지 않다.


후딱후딱 무언가를 신속하게 해치운 당신의 오늘은

과연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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