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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ug 26. 2024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 김민철 / 2019

박완서 선생이 타계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의 마지막 증언자라는 의미는 더 이상 이전과 같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증언해 줄 사람도 이제 남아있지 않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실향민의 설움 같은 감정을 우리가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박완서나 박경리, 이청준의 문학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는 기록을 남기고 문학은 인간을 남긴다.


박완서 선생은 늦은 나이에 데뷔해 다작을 남겼는데, 특유의 수다적 필법과 시대상을 깊이 고민하고 드러내는 증언의 문체가 그 뼈대를 이루면서 그분 작품의 전체 덩어리가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역사와 기록으로 남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박완서라는 거장의 이름을 설명하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꽃'이라는 코드로 접근한 방식은 이 책이 유일하다. '꽃'은 박완서 작품의 중요한 배우이고, 이야기와 감정을 이어주는 필수 상징이다.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의 필자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고 박완서 작품의 숨겨진 열쇠를 발견하였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고 했던 박완서 선생님의 가치관을 생각해 볼 때 그분이 평생 꽃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고 소환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던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정확히 명명해야 한다는 실존의 감각을 유지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분의 작품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언제나 항상 꽃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심지어 꽃에 한이 맺힌 사람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전문적이고 상세하기까지 하다.


아마 3월이 되자마자였을 것이다. 샛노란 꽃 두 송이가 땅에 닿게 피어있었다. 하도 키가 작아서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그러나 빛깔은 진한 황금색이어서 아직 아무것도 싹트지 않은 황량한 마당에 몹시 생뚱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곧 큰 눈이 왔다. 아무리 눈 속에서도 피는 꽃이라고 알려져 있어도 그 작은 키로 견디기엔 너무 많은 눈이었다...... 놀랍게도 제일 먼저 녹은 데가 복수초 언저리였다. 고 작은 풀꽃의 머리칼 같은 뿌리가 땅 속 어드메서 따뜻한 지열을 길어 올렸기에 복수초는 그 두터운 눈을 녹이고 더욱 샛노랗게 더욱 싱싱하게 해를 보고 있었다. (산문집 호미 中)


현대인들처럼 도시에만 모여서 살아가는 이들이 이분의 작품을 읽을 때 맞닥뜨리는 문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소한 꽃들이 매번 등장하여 사람을 갸우뚱하게 한다는 것인데, 알고 보면 그것들은 우리가 매번 출퇴근할 때 지나치는 길거리와 울타리에 지천으로 깔린 녀석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며, 더욱 신기한 것은 어느 순간 개망초, 달맞이꽃, 산수유, 이팝나무, 봄까치꽃, 괭이밥 같은 꽃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걸어 다니게 될 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점점 눈에 잘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 꽃의 이름을 아는 순간부터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다. 그 흔해빠진 들꽃의 이름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때에도, 그리하여 그 사람이 맞장구를 쳐주거나 신기해하는 순간 그 꽃은 온전하게 당신의 것 혹은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이름을 아는 순간부터 그냥 눈 밖으로 흘러가지 않고, 정확히 알아보는 이에게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명랑하게 조잘대는 시냇물 위로 점점이 떠내려 오는 복사꽃잎을 떠올렸다. 다음 날 물메기 말린 걸 한 보따리 들고 내 앞에 나타난 동생을 보자 그저 반갑기만 해서 허둥대며 맞아들였다. 석 달 만에 만난 동생은 어찌나 생기가 넘치는지, 첫 근친 온 딸자식이라 해도 그만하면 시집 잘 갔구나 마음을 놓고 말 것 같았다. (그리움을 위하여 中)


김민철 작가는 특유의 분석력으로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을 모조리 분석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러 문학 방면에 두루 통달하여 꽃이 등장하는 여타의 소설 작품들을 다수 인용하면서 얼핏 기억도 나지 않았던 모든 꽃들의 종류를 즉시 소환한 뒤, 묻힐 뻔한 문학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되살린다. 이 작가의 재치를 통하여, 평소 박완서 선생의 작품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다시금 기억력을 회복하면서 반가운 마음으로 그 작품의 장면들을 상기한다. 그러면, 그 장면의 인물과 대사와 분위기가 꽃과 연결되어 더욱 긴밀한 순간으로 압축되고, 그 꽃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고유성으로 마치 향기라도 내듯 우리 앞에 그 원초적인 상징이 펼쳐지는 것이다. 장소의 후각적 질감을 이용하여 눈을 감은 독자를 어루만지는 그 필력은 그야말로 천의무봉이다.


나는 내 몸이 한 그루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헐벗은 우리 시골 마을에 있던 단 한 그루의 꽃나무였다.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을 줄을 몰랐다. 이를 어쩌지. 그러나 박태기나무가 꽃피는 걸 누가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떨림을 감지한 대학생은 당황한 듯 내 손을 뿌리쳤다. (친절한 복희씨 중)


꽃의 종류와 문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매우 보기 드문 안내서이다. 꽃의 문학적 백과사전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해박하고 밀도가 높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하고, 들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하는 작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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