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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Nov 09. 2018

독야청청, 대을용

  꽤 오래전, 마왕 신해철의 라디오 방송을 듣던 중 '진정한 친구는 기대했던 곳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했던 멘트가 기억이 난다. 당시 유명했던 해적 방송 같은 것이었는데, 최근에 와서야 이 말의 의미를 하나둘씩 깨닫게 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분양받아 입주하던 3년 전 봄, 최초의 내 집을 갖게 된 기념으로 가족들과 근처 화원에 들러 각자 맘에 드는 화분을 하나씩 골랐다. 아내는 예전에도 다육식물을 여러 번 길러본 경험이 있었으므로 화원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맘에 드는 갖가지 식물들을 슥슥 걱정 없이 골랐다. 허브향이 가득하다는 율마부터 시작해서, 먼지를 없애준다는 미니 고무나무, 그리고 강제 건조되어 오랫동안 장식용으로 쓸 수 있다는 박제 꽃에 이르기까지 내 집을 새집으로 마련했다는 기쁨을 오로지 식물을 통해서 표출하고 싶었던지 내가 옆에서 보기만 해도 풍요해 보이는 느낌의 지름(?)이었다고나 할까. 뭐 어쨌든 나는 식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니 입주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그냥 하나만 구입하자는 심정으로, 마치 젓가락 같은 심플한 형상의 이름 모를 줄기를 하나 골랐다. 이름하여 대을용, 혹은 페레난데스라고 불린다고 주인이 알려줬다. 선인장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고 그저 비유를 하자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항시 등장하는 앙상하고 초라해 보이는 나뭇가지를 닮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았다. 어쩌면 나의 성향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후 아내는 자신이 구입한 다육식물들을 보살피며, 그 옆에서 비참하게 젓가락 같은 줄기로 버티고 있는 나의 대을용을 무시하기 시작하였다. 이 집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둥, 을씨년스럽다는 둥, 앙상하고 독해 보이는 것이 나를 닮았다는 둥, 마치 자신의 선택이 더 의미가 있다는 구실을 얻고 싶었던 것 마냥 나의 외톨이를 샌드백 삼아, 상대적인 일상의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웬걸,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날수록 아내가 입양한 그 고귀한 다육이들은 사지가 말라비틀어지고 사막의 모래바람 같은 색으로 변해갔다. 급기야 메두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돌이 된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어 바스러지기 시작하였다. 오만과 독선으로 자신의 식물들을 호위병 삼아 입주의 기쁨을 과시하던 아내는, 자신을 위해서 고운 자태를 발산하지 않는 녀석들을 방치하기 시작하였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들의 화분들과는 무관하게 동 떨어진 일상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 생활하는 여인으로 변신해갔다. 그러나, 그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화분 무덤 사이에서 나의 대을용은 아주 느리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으니, 그 속에서 마치 카구야 공주라도 탄생할 것이라고 감히 예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고풍스러운 자태를 내뿜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입주 후 만 3년이 지나고 나니, 우리 집 거실 창가를 장식하던 수많은 화분들은 이제 모두 종적을 감추고, 무심코 나의 선택을 받은 앙상한 고도(Godot)의 외톨이만이 수많은 줄기와 잎 싸귀를 만들어내어, 고요로 평정된 거실에서 홀로 독야청청 자태를 뽐내며 가족들의 인정을 받게 되기에 이른다. 


  아!, 이것은 인생의 비밀스러운 기작이자, 미운 오리 새끼의 신화였던가. 타인의 죽음을 뒤로하고, 피어나는 고귀한 생명체. 그 누구도 관심도 받지 못했던 숨은 진주는, 이렇게 1년, 2년, 3년을 고독하게 버티고 혹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정정당당하게 오래된 친구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마왕이 언급한 바로 그것.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그곳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불혹을 넘기고 보니, 어느 정도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학창 시절 가까이했던 친구들도 그간 연락이 없다 보니 이제는 소원해졌다. 내가 갖고 있던 취미들도 일상과 육아에 밀려 나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무언가 내가 열정을 갖고 관심을 가졌던 그 모든 것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하지만, 가끔 보면 이렇게 대을용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 나를 향해 살아있음을 알려오고, 일상의 잔잔한 기쁨을 전해올 때가 많다. 아무런 생각 없이 선택하였던 만년필, 무심코 지나치던 지인들, 의도치 않게 선물 받아 어디엔가 처박혀있을 명작소설들, 어디에선가 내뱉은 기억도 나지 않는 조언들, 흘려들어서 놓쳐버린 여러 고민상담들, 멍하니 끄적거렸다가 쌓여간 스케치들이 모두 그러한 것들이다. 


  무심코 내가 던졌던 한마디에 감동을 받고 그 말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후배도 있을 수 있고,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모를 펜이 10년 이상 나의 필통에 보관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마지못해 시작했다가 맘에 들지 않아서 중간에 손을 놓아버렸던 최초의 미완성 작품이 오히려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냉탕과 온통을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진폭이 큰 주파수를 그리고 있노라면, 초연하게 묵묵히 삶의 작은 행복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지인들이 좌표의 원점에서 가끔 기다리고 있다.


  진정한 친구는 멀리 있지 않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은 곳에서 항상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하겠지, '나는 항상 여기 있어, 여행을 하다가 지치면 언제든 나에게 와. 그리고는 다시 여행을 떠나렴. 그래도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거야'라고.


桃李雖艶 이나 何如松蒼柏翠之堅貞 이며,

李杏數甘 이나 何如燈黃橘祿之馨列 이리오.

信乎 라 濃夭 는 不及淡久 하며 早秀 는 不如晩成也 로다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어찌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의 곧은 절개만 하겠으며,

배와 살구가 제아무리 달아도

어찌 노란 유자와 푸른 귤의 맑은 향기만 하겠는가.

참으로 아름답고 일찍 지는 것은 담담하고 오래가는 것만 못하고,

일찍 익는 것은 늦게 익는 것만 못하다

     -채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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