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프타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back Mar 21. 2019

낡은 조깅화

  달리고 또 달렸다. 2013년부터이다. 게으름이라는 악마에게 짓눌려 살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해 버렸을 것이다. 나의 흔적을 상세하게 기록해주는 조깅용 시계와 PC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약 2,700km가 쌓여있다. 글쎄, 이 정도면 거리가 얼마나 될까. 지도를 검색해보니 대략 경기도에서 몽고까지 간 거리이다. 검푸른 밤하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자살을 하고 싶어 질 만큼 아릅답다고 하는 몽고의 그 고원까지 나도 모르게 달렸던 것이었다. 평생을 달리기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다가, 왜 난데없이 달리기에 미쳐버렸을까. 근 5년간 신고 달렸던 조깅화가 초토화된 것을 보고 있노라니,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천식이 있었다. 티 내지 않고 살았으니 가족들은 대부분 잘 모른다. 운동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타고난 체력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키가 조금 컸을 뿐, 인내심이나 지구력이 매우 약했다. 어린 시절 체력에 대한 악몽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오래 달리기였을 것이다. 중학교 체력시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1km 달리기였던 것 같다. 4바퀴를 도는 동안 분명히 가장 잘 달리는 아이가 나를 한 바퀴 앞질렀던 것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박혀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중학교가 남녀 공학이었기 때문에, 많은 여학생들이 보고 있었다는 의식 때문이었으리라.


  농구를 좋아했지만, 다른 혈기왕성한 아이들처럼 몇 시간 동안 꾸준하게 하지는 못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공기가 안 좋은, 지하구조로 된 집에서 살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심폐기능이 안 좋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숨을 헐떡이고 스스로 짜증 나고 그랬던 것 같다. 왜 나는 이런 것을 잘 못 견딜까.... 매번 그런 생각을 하고 뛰는 가슴을 움켜쥐고, 기침을 하고 그랬다. 


  중학교 졸업할 때 즈음해서는 친구들과 같이 목표를 정해놓고 턱걸이 연습을 했다. 한 달 정도 남은 턱걸이 시험을 위해서, 매일같이 나가서 연습을 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고 턱걸이 5개도 못하던 내가, 20개 이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긴, 근력운동은 심폐와 별 관계가 없으니 그 정도의 발전도 있었을 터, 그때 처음으로 나의 체력이 연습한 대로 변화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 후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술 담배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인스턴트 음식을 매우 좋아했고, 규칙적인 식사습관이 없어서 몸이 하루가 다르게 둔해지고 쓰레기가 되어가는 것을 실감하였다. 체질적으로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기를 부려 먹고 또 먹고 눕고 자고 하니 족보 없는 원칙은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하긴, 그 정도 먹고 뒹굴었으면 100킬로는 이미 넘어야 할 몸이었다는 상대적 안도감을 위안 삼으면서, 협소한 구실로 현실에 안주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찾아온 것은, 하나의 원인은 아닌 듯하다. 가난한 셀러리맨의 비전 없는 삶, 불행했던 유년시절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가정에 대한 집착, 생각만큼 자신이 없는 체력, 또 그것에 영향을 받는 정신... 등 여러 가지가 껍질을 깨어 부수는데 도움을 많이 줬다. 원래 오기와 배짱이 있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어도 나아지지 않는 인생에 대한 완만한 그래프와 막연한 불안감이 다행스럽게도 부채질을 해주었다. 정신적으로 결핍이 발생하였던 부분에서, 육체를 통한 극복을 요구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그 요청에 대하여 나의 신체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반응해주고 있다는 것은 참 고맙게 생각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신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주위의 시선도 다양해졌으며, 몸에 대한 공부, 음식에 대한 지식, 나아가서 그러한 것들과 맞물려 있는 사회현상과 문화에 대해서도 정말 좋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규칙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가기 힘든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 그것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심리, 몸과 정신을 떨어뜨려놓으려는 이 사회의 철학, 그리고 그것이 상업주의와 결탁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둘씩 선명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을 때에는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거미줄처럼 얽히고 연결이 되어서 아주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것은 아무리 글로 설명하려 해도 부족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귀를 더욱 얇고도 두껍게 하고, 불안과 희망을 저울질하고, 공포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동전 앞뒷면처럼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무엇이 보인에게 도움이 되고 무엇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지 제대로 알고 취사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는 참 외롭다. 순전히 혼자와의 싸움이다. 어둠이 내리깔린 공기 속에서 목적지가 없는 곳을 향해서 정해진 시간과 거리만큼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나의 볼품없는 인생을 닮았다. 그래서 애착이 간다. 달리다 보면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나와의 대화가 아닌, 내가 벗어나려고 하는 자아와의 타협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시원한 바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또 나와의 싸움을 위해서 저 낡아빠진 조깅화를 신어야 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야청청, 대을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