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의 신뢰는 '시간값'
매일 문을 연다는 건,
매일 감동을 주는 것보다 어렵다.
남들보다 일찍 눈을 뜨고,
셔터를 올리고,
간판 불을 켜고,
재료를 손질하며 손님을 기다리는 일.
그건 하루를 버텨내는 용기,
매일을 견디는 단단한 믿음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한국 자영업자들의 미담을 기사로 본다.
어린 남매가 빵을 이것저것 망설이며 고르다,
돈이 부족한 듯 동생에게 하나만 사주려던 누이에게,
말없이 빵 한 봉지를 내어준 빵가게.
허름한 차림의 모자가 식당에 들어와
1인분만 시켜 나눠먹으려 하자,
2인분을 내주고 식사값도 받지 않았던 식당.
“아직은 따뜻한 세상이구나. 힘이 난다."
"저 가게, 돈쭐 내야겠다.”
댓글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진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현실은 혹독하다.
그런 감동을 실천하는 것과
매일 가게 문을 연다는 것,
그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매달 큰 고정비를 감당해야 하고,
장사 하루하루가 생존인 사람들이
‘돈쭐 나는 미담가게’로 오래 남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어떤 가게가 처음 생기고 나면
눈길은 보내되 들어서진 않고,
무심한 듯 그러나 꾸준히 지켜본다.
드물게 방문객이 있더라도,
몇 가지 질문만 던지고 명함만 받아간다.
저곳이 잠깐 생겼다가 금세 사라질 곳인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운영될 곳인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새로 무언가 생겼다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오픈런은 드물다.
그래서 새로 비즈니스를 오픈하고 나서
한동안 고전하는 곳이 많다.
그러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도
여전히 그곳이 건재하면
한번, 두 번 방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충분히 이용해 보고 괜찮다 싶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조용히 추천한다.
이렇게 천천히 시작된 관계는
오래 지속된다.
충분히 지켜보고 선택하고
만족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한 신뢰를 얻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치르는 ‘시간값’이 있다.
나 역시 한의원을 개원하고 무척 고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미국이 망할 수도 있다’란 말이 나돌 정도로
경제 전망이 공포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지금의 나였다면 그런 시기에는
절대 개업을 하지 않았겠지만,
경제에 문외한이어서였을까? 아니면
한국에서 크고 작은 성과를 늘 이뤄내며 달려온 터라
무모하게 믿는 구석이라도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그 믿음은 실업자들로 넘쳐나는
미국 경제 상황을 체감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 접어야 하나를
매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회계사와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많이 힘드시죠?"
"저도 처음에 회계사 사무실 오픈하고
2년 동안 무척 힘들었어요.
신용카드 한도가 끝까지 차더라고요."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 2년이 지나면서
큰 고객이 오기 시작하더니
눈 녹듯이 비즈니스가 풀리더라고요.
원장님도 이제 2년이 다 되어가니,
잘 풀릴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눌러두었던 마음고생이 울컥 올라왔다.
경제가 폭망한 미국에서
눈뜨면 한의원, 자기 전에도 한의원이었다.
아픈 손가락 같은 내 한의원,
인생의 화두와도 같은 짐을 지고
젊음을 다 보내고 있구나.
한탄했던 날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2년만 버티면 된다고?’
그런데, 회계사가 말한 그 ‘2년’에는
정말이지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실제로 내 한의원도 2년을 넘기면서 활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해부터 전년 매출의 2배를 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 목표가 태엽 감은 시계처럼 착착 움직이기 시작해
제대로 풍년을 맞이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2년'이라고 하더니,
"폭싹 속았수다."
결국은 그렇게 10년의 ‘시간값’을 제대로 지불한 것이다.
진짜 좋은 가게는 오늘도 문이 열려 있는 곳.
지켜낸 시간만큼 신뢰도 묵묵히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