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타이머의 시계는 거꾸로간다

(INT.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by 실버버드

이곳에 살면서 ‘올드타이머’(Old-timer)라는 표현을 종종 듣게 됐다.

처음엔 그저 이민 와서 미국 생활이 오래된 사람을 부르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주 들을수록, 그 말에는

약간의 비웃음과 냉소가 섞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겉으론 오래된 경험자를 존경하는 듯하지만, 속뜻은 달랐다.


“저 사람, 올드타이머야.”

"미국 온 지 오래되면 뭐 해? 생각이 올드타이머잖아.”


머물러 있는 사람,

낡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그리고 정서적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

올. 드. 타. 이. 머.


미국에 정착하면, 그 순간부터

정서의 시계도 멈춘다고 한다.

스무 살쯤에 왔다면, 20대의 정서로 살아가고

서른에 왔다면, 30대의 사고방식에 머문다.

몸은 나이를 먹는데,

감정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그 시절, 그 나이에 고정된 채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끔, 겉으로는 나이를 먹었지만

아이처럼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

서툰 방식으로 갈등을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서적 멈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 ‘멈춤’을 피하고 싶었다.


혹시 나도 어디쯤엔가 멈춰 선 채,

녹차 우려내듯 그 시절을 되새기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래서 정기적으로 한국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짧은 기간이라도 다녀오고 나면

숨통이 트인다.

바쁜 일상의 사람들, 거리의 풍경,

심지어 미세먼지 많은 공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한 번씩 리셋해 주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같은 또래, 아니, 나보다 어린데도

표정도 생각도 훨씬 어른스러워 보인다.

자기 나이보다

더 많은 무게를 지고 사는 느낌이랄까.

성숙해 보이고, 깊어 보인다.

그게 철이 들었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해마다 마주할수록

웃음이 줄었고, 여유도 없어 보인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세상에 깎이고 다듬어지기만 하다가

자기 안의 여백과 유머를

하나둘 잃어가는 건 아닐까.


‘올드타이머’라는 말이 싫었던 건

그 속에 담긴

정체감과 고립의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시계를 무조건 앞으로 돌려서

확 늙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나도

‘올드타이머’라고 불리게 될까 두렵지만,

그 시계는 늘 거꾸로 돌리고 싶다.


나이는 먹되, 감성은 늙지 않기를.
사는 날까지, 멈추어 있지는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