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지키는 목자

오늘도 경계 근무 중입니다

by 실버버드

"나갈까?"

벤지는 이 말을 제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제 볼일을 본 뒤

내 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

나를 바라본다.

'언제 나가?' 하는 눈빛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환자들이 내게 어떤 종류의 개를 키우냐고 물어볼 때,

프렌치 불독이라고 답하면

늘 조심스럽게 말하는 게 있었다.


산책할 때는 반드시 길의 안쪽으로 걷게 하고,
수상한 사람이 다가오면 조심하세요.


이유는?

프렌치 불독을 납치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

개를 납치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웃긴 농담인 줄 알았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다 여러 기사를 접하고 나서야

이게 전혀 농담이 아닌 걸 알게 됐다.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개는 프렌치 불독이다.

미국켄넬클럽(America Kennel Club, AKC)에 따르면

프렌치 불독은 2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려견 견종 1위'를 차지했다.


그래서였던 걸까?

뉴스에서는 프렌치 불독 납치 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되었다.

레이디 가가의 프렌치 불독 두 마리가 납치돼 현상금 5억 원이 걸려 화제가 되기도 했고,

산책 중이던 프렌치 불독을 납치하려 총으로 위협하는 사건도 발생했으며,

자신의 프렌치 불독이 어떤 차에 납치되자

도주하는 차를 막으려 견주가 한동안 그 차에 매달려 끌려가는

아찔한 영상이 SNS에 퍼지기도 했다.


왜 개를 납치하냐고?

팔면 바로 수천 불의 돈이 되기 때문이다.

참 잔인한 사람들이다.

개를 납치한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산책이 아니라

경계 근무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벤지를 산책시키면서

초긴장 상태로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피며 다녀야만 했다.

공원을 가도, 바닷가를 가도

보디가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몽둥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나,

내가 펜싱을 하니까 펜싱칼이라도 매고 나갈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처음에 와서 벤지는 나가기만 하면

쏜살같이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리려 했다.

그래서 줄을 당기고 느슨하게 하고 다시 당기고 하면서

한동안 산책 연습을 꽤 오래 해야 했다.


아무나 따라가면 안 돼!


듣는 둥 마는 둥.

녀석은 그저 밖의 냄새, 햇살, 사람들, 지나가는 개들, 소리..

모든 것들을 정신없이 즐긴다.

게다가, 아무에게나 너무 친절하고 상냥하다.

다른 개들이 뭐가 그리 심통인지

벤지 면상에 대고 사납게 짖어대도

아무 대꾸 없이 조용히 기다린다.

아이들이 다가오면

만지라고 얌전하게 머리와 등을 내어준다.


산책을 즐기며 평온한 녀석의 표정과 달리

리드줄을 꽉 붙들고 있는

내 손바닥은 늘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다.

내 마음은 호수 아래 발길질을 멈추지 않는 백조처럼 바쁘다.


왜 개를 쓸데없이 순위를 매겨서

이 개고생을 시키는 건지.

산책 나갔다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면서 너무 피곤했다.


나도 좀, 산책하며 즐기고 싶다.

이제 제발 1위가 아니라 꼴찌를 하렴.


한때 개는 주인을 지켰다.

이제는 주인이, 개를 지킨다.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웃픈 풍경이다.


경계근무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