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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drink Feb 02. 2021

그 아이(5)

또다시 미래를 꿈꿀수 있는 비결

“그래서 출석부를 가지고 나오다 맞부딪힌 날, 네가 낯이 익더라니 .. 그랬구나.. 근데 왜 난 기억이 없지?”


‘그 아이’는 사진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6학년 졸업식 사진이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졸업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찍어준 적당히 빛바랜 사진이었다.  


‘’여길 봐봐”


대각선으로 몇칸 빠진 뒷자리에, 초록색 브렌따노 파카를 입은 여자아이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 였다.  머리가 길어 거추장스러웠던 기억, 청바지가 다 마르지 않아서 차가운 채로 입었던 기억들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아이’ 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그 아이’는 나의 기억을 살리려 애쓰려는듯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키가 작고 바가지 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전학을 왔었던 것 같다.  6학년 졸업을 한학기 앞둔 때였고, 길고 쳐진 눈매를 가진 아이였다. 날이 추워지면서 회색점퍼를 즐겨 입고,  방학 얼마 남겨두지 않고 열렸던 학예회에서, 맘 맞는 남자아이들 4명중 한명이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했었던 것 같다. 그 중 한 친구가 엄청 개구지게 개인기를 보여주는 바람에 뒤로 넘아가게 웃었던 것 같다.  얌전한줄만 알았던  ‘ 그 아이’ 가 장난기 있게 웃었던 것이 찬찬히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발령으로 6개월 만에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것도, 그리고 중 3때 다시 돌아온 사실 모두가 나의 기억에 맞춰지면서  눈가가 뜨거워졌다. 혼자 오랫동안 이런마음을 가지고 지내왔던 ‘ 그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에게 오는 길이 너무도 길었던 것에 고맙고 안쓰러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울고있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  ‘그 아이’는 운전을 하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아이’의 입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나의 기억들을 몽글몽글 되살아나게 해서  차 안을 가득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서로 쳐다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다시 6개월 후에 이사가야 한다고 했을때 맘이 힘들었지. 좋아한다고 말하고 갈까? 생각도 했는데, 너무 쑥쓰러운거야. 그래서 못하고 갔지. 보고싶었지. 시간이 또 지나갔지. 또 중 3때 이사를 간다는 거야. 너 있는 곳으로. 네가 다른 곳으로 전학 갔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어느날 교복입고 등교하는 널 보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근데, 수진이라는 친구가 좋아한다면서 뭘 주기 시작하대. 정말 난감하드라고. 넌 아무것도 모르고 꽃도 주고 선물도 주고. 가끔 네가 너무 보고싶을땐, 나가서 받아오기도 했지.수진이라는 친구 얼굴도 잘 기억이 안나.”


   그랬었다. 내가 수진이가 난리법석치면서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던 그날의 훨씬 전부터 ‘그 아이’는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쩜 이렇게 모르고 있었을까..

    

    “중3 졸업하고 이제 서로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되었으니, 얼굴을 보고 싶을 때는 어쩌나 생각하다가, 이미 다른 교회 다니는 네가 다니는 곳이 어딘가 물어보고 다녔어. 내 친구가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찾아갔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볼수 있는게 너무 좋았지.”


     ‘그 아이’가 전도사님 뒤를 따라 쑥 들어온 그 날, 히터를 돌린지 얼마 안되어 실내인데도 추웠던 그 느낌, ‘그 아이’와 눈길 한번, 말한마디 마주하지 않던 쌩한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 아이’를 감싸고 있던 그날의 공기는 설레임과 따뜻함뿐이었던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그때를 다르게 기억하는 우리는, 지금 차 안에서 함께 웃으면서 마주하고 있다. 아마도 이제는 다르게 기억하는 ‘내일’을 없을거라 생각하듯이,오랜동안 차안에 앉아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너희 집에 오락을 하러 간 거는 형이랑 놀려고 간것도 있지만, 너 보러 간거거든. 방에서 뭐 하는지 나오지도 않고. 온 신경이 네 방문에 있었지. 그래도 너하고 같은 공간에 오래 있다는 것만해도 좋았다.”


   “ 난 네가 오면 수진에게 전화해서 놀러오라고 전화로 수다 떨고 있었지.나가기도 쑥스럽고.” 우리 둘은 마주보고 푸르르 웃었다. 


“학교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 볼때 삐삐도 치고, 음악을 들어도 네 생각이 나고 그래서 네 생일에 편지에다가 쓴거야. 이제 만나보자고.”

 

 “만나보잔 말이 없든데. 알수 없는 말만 늘어놓고는.”


  ”내 마음을 써 놓은거야. 못알아 들어 놓고는. 소개팅이나 한다 그러고. 이제 안되겠다 싶어서 소개팅 장소로 간거야.”


   머리가 멍해졌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렇게 오랜 인연이 있었구나. 너무나도 신기해서 얼마간을 말없이 있었다. 집에는 왜이리 빨리 도착하는지, 차를 대고 가로등 밑에 둘이 섰다. 그날따라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땅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이제 우리 만날까?”


“….. 그래 그러자.”


  차를 돌려 가는 ‘그 아이’도 새가 된듯 날아서 갔겠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나의 마음에도 아직도 한참 남은 봄이 찾아 온듯, 이른 봄바람이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제 모든 시간을 함께 할 것에 마음이 설레어, 똑같은 마음으로 잠을  오랫동안 못 이뤘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가시지 않은 겨울바람에 손이 시려워하면 손을 말없이 잡아주고, 영화를 볼때 어깨에 기대기도 하며 수줍은 뽀뽀를 하기도 하는 연애가 시작이 되었다. 서로에게 마음을 다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선택한 미래’를 이루기 위해 달리는 연애시절을 보냈다.


   물끄러미 옆을 바라본다. 내가 사랑하기로 결심했던 ‘그 아이’ 가 누워있다. 조금은 살이 붙고 피곤에 쪄들어서인지 풋풋한 모습이 많이 사라져있지만, ‘ 그 아이’가 나의 옆에서 자고 있다.  참치캔을 던진 그날, ‘ 그 아이’는 내가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나를 생각하는 방법을 잊은듯 했다.그 섭섭한  마음이 며칠을 갔는지 몇시간을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때 역시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면서 6학년때 처음만난 ‘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갑자기,  ‘그 어린 아이’ 가 우리 가정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듯 하여 맘이 아파 울었다.


  지금도 미국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여행하는 듯이 사는 우리 부부 그리고, 우릴를 쏙 뺀 두 아이들. 결혼과 함께 자연스레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육아라는 것이,  그 어느 인생의 훈련보다 도전정신과 인내심을 요구하는지를 매순간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을 공유하며 이해하며 사는 것이 부부이지만, 힘이 드는 순간에 맞딱뜨리면 그동안 함께했던 오랜 시간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 그저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기만을 이기적으로 바라기 마련이다.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던 '그 아이' 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볼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의 못된 마음이 솟구친다. 

  다행인건, 결혼생활이 익숙해져가면 갈수록 조금씩 서로에게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발전적인 것은, 이제는 노력을 실천하며 한결 나아지는 부부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부부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실쳔에 옮기기 위해서는,  예전의 추억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현재에 감사하고, 그리고 미래를 다시 약속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부부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자주 꺼내는 것은, 두 아이들을 돌보면서 점점 변해져온 우리 둘의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수줍게 내밀어 보는 과정이다. 그 위로와 격려는 분명히, '나보다 저 사람이 더 힘들겠지’, '당신은 정말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어.', '우리는 앞으로 더 잘할수 있어' 라는 이해의 깊이를 더 진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부부생활에 아주 중요한 비결이다. 


    앞으로도 삶의 여정을 지나면서 고되고 힘들어 서로를 향하 섭섭한 일들은 어김없이 일어날 것이지만, 그때마다 나는 우리 함께 사랑하던 그시절을 생각하면서 또 한번 산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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