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림 Mar 11. 2021

전쟁은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다큐멘터리 <마지막 동물들> 리뷰

https://thelastanimals.com/


아프리카는 항상 전쟁 중이다. 반군과 정부의 내전은 끊이지 않는다. 반군은 마약 밀매, 인신매매, 밀렵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마지막 동물들>(The Last Animals, 2017)은 이 중 밀렵을 다룬다. 전쟁 사진작가이자 감독인 케이트 브룩스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코뿔소와 코끼리의 멸종 위기를 초래한 아프리카 반군들의 밀렵과 주변 국가들의 욕망을 보여준다. 코뿔소의 뿔과 코끼리의 상아는 비싸게 팔린다. 반군은 뿔과 상아를 뽑아내 팔고, 그 돈으로 무장을 한다. 영화 초반에 일곱 마리였던 북부 흰코뿔소는 전 세계에 두 마리만 남았다. 상아가 채 자라지도 못한 새끼 코끼리는 엄니가 뽑혀 죽었다. 반군들에 대한 적대감이 절정으로 치달던 순간, 마침내 반군이 나타났다. 10대 소년이었다.


그전까지 난 코뿔소와 코끼리를 지키는 콩고 정규군을 응원하고 있었다. 반군은 적이다. 살아있는 동물의 상아를, 뼈를 무자비하게 뽑아내는 악마다. 하지만 그 대신 화면에 떠오른 것은 이제 막 사춘기의 중반의, 앳된 얼굴을 한 소년이었다. 십 대 후반은 되었을까. 키만 커버린 그 소년은 총에 맞아 괴로워하고 있었다. 먼저 총을 쏘지 않았다면 정규군이 죽었을 것이다. 더 많은 코뿔소와 코끼리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뿔소의 멸종과 정규군의 죽음보다도 먼저 내 눈물샘을 연 것은 그 얼굴이었다. 순간 화면이 뿌예지는 가운데, 9년 전 학교에서 본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2006)가 떠올랐다.


수업시간에 원어민 선생님이 틀어준 영화였다. 전쟁이나 액션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기도 했고, 아프리카는 내게 머나먼 이국에 불과했기에 영화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세계 3대 다이아몬드 광산이 시에라리온에 있고 없고, 그 다이아몬드 때문에 내전이 심해지고 말고는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를 향한 욕망 또한 내 관심사 밖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혁명 연합전선(Revolutionary United Front, RUF)”이라고 부르는 무장 반군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던 순간부터 나는 영화에 사로잡혔다.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의 반군 단체 혁명 연합전선(Revolutionary United Front, RUF)은 소년병으로 유명하다. RUF는 한 마을을 파괴한다. 마을 사람을 납치해서는 성인은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노예로 부리고, 어린아이는 소년병으로 키운다. 한창 전쟁할 때, 시에라리온 반군의 80%는 18세 미만의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소년병이라고는 불리지만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군사 교육은 받지 못한다. 잡일을 하게 되면 다행이다. 총만 쥐어진 채 전쟁터에 투입되어 인간 지뢰제거장치나 총알받이가 된다. 오래 버티면 총 쏘는 기계 역할 정도는 할 수 있다. 한 명 한 명 신중히 죽이는 군인이 아닌, 전장 한복판에 들어가 마구잡이로 총을 쏘는 기계 말이다. 영화 속 RUF는, 10살 전후의 어린애가 두려움을 잊고 전쟁터에 뛰어들도록 그의 인격을 말살한다. 강제로 마약을 주사하고, 너희 부모가 너를 버렸다고 말한다. 사람을 상대로 사격 연습을 시킨 뒤 새로운 이름을 준다. “너는 이제부터 살인자야. 그게 네 이름이야.” 그리고 아이는 대답한다. “제 이름은 살인자입니다.”


https://theindependentinitiative.com/2020/01/11/the-reason-why-you-should-watch-blood-diamond/

영화는 이 아이가 커서 또 다른 소년병을 만드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고리를 보여준다. 2006년에 개봉한 아프리카 배경의 영화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더 말도 안 되는 것은, 10여 년도 전에 개봉한 영화 속 일들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제3세계 국가 중 21개의 국가에서는 아동이 전쟁에서 ‘쓰이고,’ 13개의 국가에 25여만 명의 소년병이 존재한다. 2017년에는 한 해 동안 21,000명이 넘는 소년병이 징집됐다고 한다. 강제로 동원되기도 하고, 분쟁 상황, 가정 폭력, 빈곤, 불평등에 노출되어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소년병이 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지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PTSD를 겪으며 살아간다. 성장기에 마약에 절은 몸은 이미 고장이 났고,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운 적이 없으니 가정, 직업, 그리고 평범한 삶, 그 어느 것도 가지기 어렵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속 소년병은 주인공의 도움으로 금세 RUF에서 탈출한다.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기억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반군은 마약 밀매, 인신매매, 밀렵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그 돈으로 정부와 결탁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납치, 강간, 살인, 밀렵의 방식으로, 사회적 약자의 이미 다친 곳을 파고든다. 영화의 배경이 된 시에라리온 내전은 2002년을 마지막으로 끝났고, 이후 2003년에 UN은 분쟁 지역의 다이아몬드 거래를 금지하는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ey Process Certification Scheme)를 발표했다. 하지만 <블러드 다이아몬드>보다 11년이나 지난 <마지막 동물들>의 반군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와 코뿔소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분은 아래 사이트를 추천드립니다.

https://thelastanimals.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