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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주얼리

동경과 선망, 그리고 브랜드.

by 은림


동경과 선망, 이라는 마음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존경하는 은사님이 웬일로 반지를 끼고 계셨다. 깔끔한 평반지였고, 나는 까마귀답게 멋스러운 주얼리를 구경하게 해 주십사 청했다. 너무 밋밋해서 좋아하지 않는 브랜드인데, 은사님이 끼신 것만으로 갑자기 너무 근사해 보였다.

그 뒤로 약 일주일간 엄청난 써치 끝에 정품 반지와 짝퉁 반지 두 개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물론 결제는 하지 않았다.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반지 선전을 보면 은사님이 생각나고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미혼시절, 멋진 장거리 연애 중이던 C가 해외에 있는 약혼자에게 받은 일본 브랜드 초콜릿을 나눠 준 적 있었다. 초콜릿을 굉장히 좋아해서 여행 테마로도 삼았고 신상품이나 해외나가서 꼭 사먹어 보던 때였다.

들어보기만 한 명품브랜드의 초콜릿이라니 뭐가 얼마나 다를까. 그래봤자 초콜릿이지 했다. 달랐다. 그때 혀끝에서 녹아내리던 짜릿한 맛과 촉감은 질투였을까 선망이었을까.

그런 초콜릿 상자를 선물해 주는 연인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운에 닿지 않아서 내 돈으로 열심히 질릴때까지 사 먹었다. ㅎ)


좀처럼 작업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때 억지로라도 매주 만나서 카페 작업을 하던 F님이 어느 날 거울도 안 보고 립스틱을 쓱쓱 문질러 바르는 모습을 보았다. 워낙에 뭐든 쉽게 - 까다로운 글작업이나 고충스런 집안일이나 복잡한 독서나 어려운 요리도 마법처럼 쉬운 길을 일러 주시는 분이긴 했는데 화장도 그럴 줄은 몰랐다.

뭘 해도 아름답지만 대충 발랐는데도 F님의 입술에 번지는 색은 자연스럽고 고왔다. 당연히(?!) 내가 써보게 해 주셨는데, 본체가 일반 립스틱처럼 플라스틱 덩어리가 아니라 두꺼운 색연필 같았다.


갑자기 머리에서 확 꽃이 피었다. 나는 연필 다루는데 아주 능숙하다. 지금껏 종이에 입체를 표현해 왔으니 내 얼굴이라는 입체에 색을 칠해보는 것도 즐거울 거 같았다. (30대 중반까지 선크림과 립밤만 썼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색연필(?)을 사각사각 깎아나가며 조금씩 짧아지는 걸 아까워하는 것도 호사스럽고 즐거웠다. (새 연필 한 다스를 몽땅 깎아서 필통에 넣어두거나, 무뎌지지 않은 연필을 그냥 재미로 끝까지 깎아본 경험이 한 번씩들은 있지 않을까?)


그 뒤로 나는 하늘 아래 같은 색이 없다는 레드 립에 푹 빠져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건 정말 진리인데, 사람에 따라 피부톤도 다르고, 그날그날의 혈색에 따라, 계절과 시간에 따라 같은 립이라도 미세하게 느낌이 다르다. 보석에도 적용된다.)



색계의 양조위가 탕웨이에게 선물해 준 밴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찬 핑크 다이아몬드 2캐럿 반지는 나의 오랜 위시다.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의 미모는 모르겠고 바다에 떨어지던 푸른 하트 목걸이를 기억하는가? 정말 아까워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서 꺼내오고 싶었다.

물랑루주에서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최고 친구'라던 합창에 같이 춤추고, 여전히 그 노래가 진리라고 생각한다.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독립과 재산이다.


만화 가제트의 크로우 박사는 매번 거대한 보석 반지를 낀 붕대 오른손만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등장하는데, 악역만 아니라면 그가 되고 싶었다.(결국 그렇게 되었다!)

보석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고, 가장 닮은 캐릭터는 골룸이며, 되고 싶은 것은 스마우그(보석 산의 소유자 드래건), 타노스의 장갑쯤은 이미 다들 갖고 있다.



(자료: 물욕없는 호빗 친구가 골룸에게 던져준 절대반지. 덥썩 골록골록)


좋아하는 연예인이 착용한 주얼리, 혹은 좋아하는 종류의 보석을 누군가 끼고 나오면 대체 어디 제품이냐고 온 저녁 커뮤니티가 왁자했다 누군가는 결국 그걸 찾아내서 자료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우리는 그 보석/브랜드를 발견하고 공부하고 다른 디자인과 더 취향인 것들을 속속 끄집어냈다. 스스럼없이 상대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기꺼이 보고 즐겼다.

가격 같은 건 모르겠다. 보는 데는 돈이 안 든다.


가끔 보석 오프모임을 하면 보여주고 싶은 아름답고 희귀한 보석을 들고나가고, 특별히 청하기도 했다

다들 기꺼이 자기가 가진 것들을 보여주고 정보를 교환하고 아름다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귀하고 값진 것이 한데 모인 자리인데 불미스러운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엄두도 못 내볼 보석들을 직접 보며 서로의 안목을 높여주는 즐거운 자리였다.(서로의 지름신을 부르는 자리이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는 잘 모르는 주얼리는 사기 전에 서로 의견을 물어보고, 이미 산 것들을 다시 발견하며 후기와 고충과 기쁨을 나누었다.





왜 C의 달콤함 초콜릿이, F님의 아름다운 풀 레드립이, 은사님의 단정한 반지가 선망으로 마음을 물들였을까.


내가 그분들을 퍽 좋아했기 때문일까? 혹은 그분들의 지위와 미모와 연애가 부러웠을까?

어쨌든, 나에겐 없는 그들에게는 있어 보이는 무언가에 매혹된 확실하다.



동경과 선망


명품의 브랜드 마케팅이 가장 잘 짜는 전략이다.

원래 이니셜은 한 집안의 가문이 자기네 물건에 표시를 하면서 (시작은 손수건에 머릿글자 수를 놓는 정도였다) 시작되었고 일부 관계된 사람들만이 그 물건을 사용할 수 있어서 더욱 동경과 선망을 자아냈다.

명품=권력=과시였다.


현대의 브랜드는 기업의 정신 혹은 정체성을 알리는 용도로 쓰인다.

소비자에게는 그 물건을 소유/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용도로도 쓰이게 되었다.

자신의 고유성을 주장하는데 보편성을 확립한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이 다소 모순적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세상이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한다. (사람이 사람 말로 해야지 서로 이해하지 나만 아는 외계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는 것일까)


유색 보석과 커스텀 세팅은 성질이 정 반대다. 어떤 돌이건, 주얼리건 단 한 개뿐이다. 디자인할 경우 특히 그렇고 비슷한 색의 원석이지만 내포물과 색상이 다르고 똑같아 보이는 세팅이지만 보이지 않는 마감과 금의 성분 배합이 다르다. 한 개씩 보면 비슷하지만 모아 놓고 비교하면 품질 차이가 난다.

까다로운 커스터머들은 복제품이 나오지 못하도록 주얼리를 만든 가다(금속 틀, 거푸집)까지 회수한다. 캐드 파일도 회수한다. 천연석은 보석 사이즈가 다 달라서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금속의 주물 형태가 특이할 경우 이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주얼리 디자인도 창작품에 속한다. (카피가 너무 많아서 혹시 없나 했다;;)


균일한 품질과 정찰제를 좋아한다면 브랜드가 나은 거 같다. (브랜드도 사람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 내는 것은 동일하고 보석 간의 유격이 있거나 품질이 떨어지거나 AS가 안되거나 수선비도 만만치는 않다)

선택과 성향 모두 구매자가 판단하는 편이 좋겠다.


귀한 유색 천연 보석 커스텀 주얼리 한 개는 브랜드 명품보다 비싸다. (명품 주얼리 중에서도 유색 보석은 한정품으로 가장 비싸다) 하지만 유색 보석은 보편적인 금전 가치를 확립하지 못했고, 되팔기가 어렵다. 그나마 매입 거래 가능하며 가격 방어를 하고 있던 다이아몬드도 랩 다이아몬드의 등장으로 매입가가 곤두박질쳤다.


주얼리 판매처 측에서 자기네가 파는 물건을 재매입해준다고 마케팅하지만, 거의 드물고 구매가의 반의반도 안된다. 사치재로서의 투자와 재테크를 생각한다면 주얼리나 유색 보석은 보전이 어렵다. 고금은 현찰 매입해 준다. 명품은 중고 매입처도 있고 중고 거래도 활발한 편이다.(최근에는 활로가 적고 판매가가 떨어졌다는 풍문을 들었다.)





명품은 없지만 디자인은 서치 해두는 편인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고, 행여라도 비슷한 가짜는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하나 음절 하나의 표절 시비를 가르던 창작업을 하다가 주얼리 업계의 창작권의 헐렁함을 보고 많이 당황했다)



처음에 보석을 살 때는 책으로만 보았던 진짜 보석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타는 목마름으로 인터넷의 파도에 휘말려 해외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모조 유리알도 사보고, 짜릿한 비딩 낙찰도 해보고, (보석을 사는 경험 중에 제일 눈치싸움 치열하고 재미있었다. 소더비 경매에 가지 못하지만 타이젬 경매는 할 수 있다! 노리던 돌을 놓쳤을 때의 안타까움, 예쁜 돌을 싸게 낙찰받았을 때의 즐거움은 로또 당첨 보다도 알찼다.)


온라인 중고 마켓들에 마니아들이 정리하는 돌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원 주인이 본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도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설령 가짜 거나 흠이 있더라도 이 가격이면 그냥 괜찮다 싶은 것들만 샀다.)


돌아가신 작은 아버님이 수석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으셨는데, 아주 어릴 때도 그 싸늘할 돌방에서 산세를 닮은 돌과 기기묘묘한 괴석과 마노와 수정 클러스터를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그 돌들은 전부 내버려졌다. 멀리서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의 취향-수집품이 소멸되는 모습은, 물질화된 그가 세웠던 꿈과 뜻이 흩어지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해서 나는 주얼리 함에서 아이가가 쓸 것을 고르게 하고 수집한 장난감 들을 틈틈이 새 주인을 찾아주고 있다.)




<커스텀 주얼리 제작 시 주의점>


1. 유색보석은 구입 시에도 살펴본 자리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내포와 흠을 공유하고 결함이 커서 심미적 가치가 떨어질 경우, 가격을 협의할 수 있다.


2. 종로의 귀금속 거리의 경우 정찰제가 드물다.

도매가와 소매가의 차이이기도 하고, 그날그날의 달러 금시세 유색 리포트 시세차가 바로 반영되기도 하고, 정찰제가 아닌 '주인이 부르는 게 값'인 옛날 판매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3, 고가의 보석을 구입할 경우 (산지에 따른 가격차가 분명할 경우) 감정서를 요청한다. 감정서는 한미감정원에서 직접 뗄 수도 있고, 감정비를 내고 판매처에 위탁할 수도 있다. 감정원은 증서를 발행하거나 구두 감정도 가능하다. 비용은 차이가 있다.



4. 아무리 뒤저도 알맞은 게 없다면 디자인을 가능한 구체화 하여 제시한다.


4-1 제일 편한 것은 매장에 구비된 유색 주얼리 중에서 완성품을 고르는 것이다.


4-2 나석이 있을 경우 비슷한 크기의 돌이 세팅된 마음에 드는 주얼리를 고른 후 스톤만 교체하는 방법도 좋다.


4-3 완전히 새로 제작해야 할 경우 캐드 디자인을 뽑는데, 이때는 핀터레스트, 포토샵, AI, 명품주얼리 사진 등등 최대한 자료를 긁어모아서 정면, 옆면, 뒷면, 안쪽, 난발의 크기, 밴드의 두께와 너비, 보석이 여러 개일 경우 보석 간의 단차 밴드와 알물림과의 단차, 밴드 안쪽 굴림, 레이어드의 경우 다른 반지와의 높이 통일등등을 고려한다.


펜던트의 경우 전체 형태와 연결 고리 부분의 이음매 모양 크기 둥글게 넓적하게 등등 자세히 주문한다.(이게.어려우면 커스텀 잘 한다고 소문난 곳에 가면 된다)


4-4 캐드 시안을 받으면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주얼리의 빈 공간까지 꼼꼼히 원하는 모양인지 확인한다.

전문가가 전문가겠지 알아서 해주시겠거니는 너무 기대가 크다. 귀금속거리는 마진이 적고 기능사는 임금이 적다


당신의 돌의 이상향의 모습은 당신만이 알고 있다

기왕 온리원이라면, 취향을 마음껏 뽐내 보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학술서가 아닌 에세이라는 점을 명시한다. 현장은 분명히 전부 다르다. 보석 친구들과 내가 직접 부딪쳐 본 최소한의 고충만을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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