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쓸모한 아름다움
보석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다이아몬드지만,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자수정, 옥이 유색 보석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초록, 빨강, 파랑, 보라색, 비취색 등 색깔 순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톤을 고르기도 쉽다. 옥과 자수정은 우리나라도 원산지여서 관광상품으로도 많이 팔렸다. 역사에 보면 순금도 많이 나서 조공으로 바쳐졌다.(금맥은 그때 다 말랐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4대 귀보석이다. 다이아몬드가 가장 튼튼하고 루비와 사파이어는 동일한 보석=커런덤으로 빨간 것만 루비, 파란 것은 사파이어-그사이에 무수한 컬러 사파이어들이 있다. 컬러 커런덤이라는 명칭이 더 정확하지 않은가 싶다. (보석 배울 때 가장 처음 헷갈린 문제였고 너무 불명확하다고 느꼈다.)
보석은 이름과 이미지가 마케팅 수단이니 낯선 커런덤이라는 단어보다는 친숙한 사파이어가 더 값져 보이고, 파랑이 아닌 사파이어라니 더 낯설고 신비로울 거라 계산한 걸까.
에메랄드는 내포물도 많고 정말 약해서 고대에 에매랄드 반지를 꼈다. 라는 인물 묘사가 나온다면 손가락을 전혀 쓸 일 이 없는 높은 신분을 의미했다. 진주와 오팔도 무척 아름답지만 쉽게 깨지거나 변색해서 관리가 까다롭다.
처음, 보석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보석은 4대 귀보석이 아니고 자수정이었다. 탄생석이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라색 물방울을 응축해서 투명하게 만들어 굳힌 듯한 캐보션에 완전히 마음이 홀렸다. 자수정은 패싯을 내면 어쩐지 매력이 반감된다. 단굴절이고 휘광이 적어서 색은 엷어지고 빛은 지루하다. 깊이감 있는 캐보션 커팅 속에서 신비로운 보라색 액체가 갇힌 듯이 어룽어룽 하논 모양이 매력적이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친구들에게도 자주 선물했다.
영혼의 조각인 것만 같은 문스톤-화이트 레브라도 라이트, 별가루를 뭉쳐 노을에 풀어놓은 오팔, 태양의 조각들이 반짝이는 썬스톤, 주황색인데 초록색을 품은 안데신, 시원한 수박 한조각을 보석으로 잘라 굳힌 워터멜론 투어멀린, 고귀하고 부유한 자황수정, 청보라색 탄자나이트, 물살이 밀려오는 듯한 아투명한 라리마, 실크효과가 극대화되어 보라색 짐승이 동그랗게 웅크린듯한 채로아이트와 환한 달이 뜬 거 같은 그레이 펄드스파를 특별히 아끼고 있다.
사진에서 하얀 광채 부분이 비단결처럼 흘러다닌다(체로아이트)
이것들은 돌멩이를 돈으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전혀 금전적 가치가 없다.
유색 보석이 가치를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랩 유색 보석들은 더더욱 가치가 낮다. 살 때는 케럿당 2-10만 원대 (천연은 50-100만)인데 공식적으로는 전혀 매입되지 않으며 로컬 마켓으로 트위터의 수집가나, 보석을 공부하려는 학생들, 주얼리 연습용으로 주로 쓰인다.
랩 유색 보석이 천연 유색보석으로 탈바꿈해 거래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전문가와 마니아의 눈에는 외관부터 차이가 난다. 일반인은 랩을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 인간이 추구해 온 상품성에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전문가에겐 싱겁다)
하지만 전혀 보석을 접해보지 않은 일반 구매자라면 큐빅이나 모조 보석 주얼리를 천연으로 알고 구매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천연인양 행세하는 마케팅이 너무 많다. 스왈로브스키는 진주건 보석이건 모두 모조석이다. 보석 이름 앞에 수식어가 길다면 일단 조심하는게 좋다. 펀딩 물품이나 신제품 신소재에 특히 그럴싸한 신제품 가짜 보석이 많이 쓰인다.)
보석의 왕 다이아몬드의 가치에 비례해 랩 다이아몬드가 재빨리 왕자 자리를 얻었고, 주얼리에 세팅되어 결코 싸지 않게 팔린다. 물론 거래는 앞의 랩유색처럼 공식 매입이 아주 어렵다. 중고로는 잘 팔리는 편이다.
랩 다이아몬드는 아무리 싸져도 비싸다는 인상을 소비자에게 주는 것 같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아무리 못생겨도 천연이니까 약간 더 높게 평가받는다. 랩 천연 상관없이, 완벽히 내 취향으로 예뻐야 한다는 꼿꼿한 기준을 가진 분들도 있다.
천연보석, 천연처리보석. 랩 보석의 선호도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소비자의 취향과 보석에 대한 가치 척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 달랐다.
랩 다이아몬드는 무색투명한 다이아몬드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강점이지만 유색 랩다이아몬드는 여전히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거나, 천연 보석은 전통처리까지만 구입한다거나, 랩 유색 보석은 전혀 구입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예쁘면 모조석 큐빅도 다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빨리 마모된다는 점에서는 역시 기피되었으나, 천연 보석도 큐빅보다 약한 것들이 아주 많다.)
다만, 처리여부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합당한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모두의 소망이었다. (근데 유색은, 브랜드만큼 공부하지 않는다;;;; 유색 보석을 공부하면 지질학과 지구과학을 만나기 때문에 진짜 공부 같아서 도망가고 싶다ㅡ)
<천연처리는 무수히 많은데 대표적으로 >
1. 열처리-강도와 색개선, 감정서의 H 코멘트. 무색 다이아몬드 외 대부분의 유색 보석
2. 함침처리-내부충전으로 강도 및 투명도 개선, 루비와 커런덤에 주로 쓰이며 내부의 다공과 크랙을 유리질이나 납으로 충전해 강화하고 중량을 늘림
3. 디퓨전-변색처리, 블루 사파이어에 주로 쓰이며 화이트나 미색 사파이어를 파란색으로 만듦
4. 오일링-충전처리, 에메랄드의 강도와 투명도를 개선
5. 레이저홀-천연 다이아몬드 흑점을 미세하게 긁어내서 투명도를 높임,
6. 더블릿/트리플릿-오팔이나 깨지기 쉬운 보석에 다른 모암을 덧붙인 것으로 색상, 강도, 내포물등 그 외 개선처리
7. 핵처리-천연포함 대부분의 진주는 조개에 재빨리 핵을 넣는 수술 후, 그 조개를 키워 진주를 만들게 해서 산채로 진주를 추출 후 죽은 조개를 버림
8, 코일링/색코팅처리-보석 뒷면에 반사판금속을 대거나, 색을 입혀서 강도와 색을 개선처리.
등등, 한 가지 천연 보석에 수십 가지 개선 처리가 있으므로 처리법은 몇 배수가 있다. 전통적인 처리는 보석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시장에서 마케팅되지 않은 새로운 방식이나 사기(?), 불법 시술등은 언제나 새롭게 발견된다.
때문에 미처리로 아름다운 보석은 아주 희귀하고 높은 값에 거래되며, 그 아름다운 신비로움은 처리된 보석에서는 보기가 어렵다.
혹자는 되팔 수도 없고 쉽게 싫증나며 가치가 떨어지는 잔잔 부리 준보석에 돈 쓰지 말고 귀보석 좋은 걸 하나 사서 고급스럽게 쓰는 편이 낫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 귀보석도 별 자산 가치가 없으니 되팔기 쉬운 브랜드 주얼리와 순금을 사라 한다. 요즘처럼 금이 금값인 시대에 순금 장신구는 걸친 것만으로 부를 과시한다.
하지만 부의 과시에 어떠한 아름다움이 있는가? (권력미? 실제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게 정설이긴 하다.)
보석의 가치는 아름다움이다. 예쁨만으로 그 무쓸모한 것이 사람을 홀려 비싼 값을 치르게 한다.
보석을 즐기는 건 자연의 아름다움 일부를 발견하고 찾아내며 심미안을 높이는 일이다.
보석이 흐린 날은 시력과 몸 상태를 살펴보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보석을 닦으며 감정의 더러움도 닦아낸다. 흐린 보석의 아름다운 맑음이 드러나면 마음도 같이 맑아진다. 보석 닦기를 시작으로 난잡하던 주변도 깨끗이 청소하고 때로는 슬픔과 고통과 분노와 좌절도 잠시 유보한다.
보석을 걸고 빛나는 손과 얼굴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늘이 한 걸음 빛 너머로 물러난다. 좋은 날이 된다.
보석을 즐기고 다루는 일은 미감과 색감과 입체와 조형, 세심함과 집중과 결단도 필요하다.
찾아낸 보석과 더 친해지기 위해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갖고 하루의 태양빛의 변화와 장소에 따른 빛의 변화와 그늘의 색깔, 그리고 주어진 모든 환경에서 천연 보석이 다르게 반응하는 모습을 찾는 탐험이다.
보석을 깨끗하고 오래 사용하기 위해 광물과 주변 지식을 확장하고, 보석이 어울리도록 일상의 청결과 옷매무새도 다시 살핀다. 한결 단정하고 침착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아름다워지는 일이다.
나의 낡고 어두워진 테니스 팔찌를 거둬가시면서 보석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좋은 거 예쁘게 쓰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과 함께 다이아몬드를 한 알 한 알 골라내었던 팔찌는 선생님에게 다시 돌아갔다.
무엇이 되어 올진 모르지만 선생님처럼 믿음직하고 단아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다시 그 팔찌를 만날 때는 나도 선생님처럼 내 분야에서 정직하고 타협 없이 강건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부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