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책장에는 읽었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어찌 된 일 일까?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너라는 이인칭 시점으로 따라가는 동호의 움직임에서 머리 한쪽이 지끈거리며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날의 잔상들이 마치 생생한 어제의 일처럼 소름이 되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썩어가는 5월의 ‘시취’가 초의 연기와 뒤섞여 만들어진 공기를 마시며 느꼈을 동호와 방금까지 팔딱거리던 생명의 적막함을 그려나가는 작가에게 야속함을 느낀다. 아니다. 남아 있는 자들에게 배려는 사치이다. 동호와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만 나는 혹시나 날아올 파편 조각을 피하려고 무명 솜이불을 창문에 방패 삼아 걸어놓고 숨죽이며 밤이면 공포에 떨었다. 맞았다. 소년이 나의 기억을 지운 것이다. 마치 죽어 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혼이 되어본 것처럼 진혼곡을 읊조리듯 써 내려간 작가의 사실적인 묘사가 그날의 비겁함과 미안함을 소환했다. 사실의 힘은 이렇게 위대하다.
그녀의 뺨에 얼룩진 상처,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한 대 맞았을 때의 놀라움은 점점 공포로 다가오고 마침내 포기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마주한 5월의 진실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영사기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학생회관 강당에 숨어 숨죽여 지켜본 화면에 동호가 있었다. 이번에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날 나도 보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난 경찰서 지하 조사실 바닥에 엎드려 무방비 상태로 허수아비 풍선처럼 쓰러졌다. 흐느끼며 조심스레 걷어보았던 허벅지상처가 불현듯 기억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내가 살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그때도 나는 또 비겁했다. 사는 방법은 다양했으니까.
아파트가 드물었던 전라도 광주의 가옥들은 기왓장이 덮인 ㄷ자 형태의 한옥이 대부분이었다. 조그마한 마당에 공동화장실이 있었고 안방 양옆으로 상 하방이 있는 구조였다. 나도 동호처럼 한가한 시간이면 상 하방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형과 공장에 다니는 형의 누나와 배드민턴을 쳤다. 그날 대학생 형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나갔다. 시골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니 몸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밤새 새벽까지 나도 똑똑히 들었다.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으로 모여주세요.” 목 놓아 부르짖던 젊은 여자의 목소리는 날이 밝으며 사라졌다. 그리고 또 보았다. 다음 날 아침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쫓기는 사람처럼 이곳저곳 살피며 바라본 대로변 파출소는 머리에 얼룩무늬 철모에 흰띠를 두른 전쟁에서 승리한 점령군으로 채워졌다. 궁금했다. 휴전선에 있어야 할 국군이 왜 우리 동네를 지키고 있는지….
그날 밤 주검이 된 동호의 모습을 안고 살아가는 그녀는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녀는 한순간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애써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뿐이다.
며칠 뒤에 시골로 피신했던 대학생 형은 나머지 짐을 챙겨 떠났다.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자신이 없다고도 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그때는 그 형이 이해되지 않았다. 형이 왜 사과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사과하는 것인지…. 지금도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면 그 형님에게도 소년이 오고 있을까.
휴교령이 끝나고 등교한 교실에 비어있는 자리를 보았다. 선생님은 급하게 전학을 간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또 다른 동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음날 놓인 국화 한 송이는 전학을 축하하는 꽃이었을까 아니면 진실을 외면하지 못한 남은 자 중 누군가의 애도였을까.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아이는 그때 나보다 한 살 어린 까까머리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고등학교를 등교하기 위해 기다리던 지산동 법원 앞 통학버스 정류장이었다. 그 아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나와 다르게 유난히도 흰 피부를 가진 채 열심히 단어장을 들여다보던 모습 때문이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의식처럼 진행되던 학도호국단 행사에 그 아이는 맨 앞줄에 있었다. 87년 여름 그 아이는 재수까지 하며 그렇게 다니고 싶어 했던 대학교 교정 앞에서 최루탄에 맞고 떠났다. 교련복을 일상복 삼아 입고 공부밖에 모르던 그 아이는 중학교 1학년 때 비슷한 목화솜이불 밑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을까. 그에게 묻는다.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느냐고. 그도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냥 있어야 할 것 같았다고. 누군가는 본 것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동호가 그때 도청에 남았던 것처럼….
또다시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심문과 고문의 현장은 참혹하게 그려진다. 달라진 건 동호가 없는 자리에 삼인칭 시점의 그와 그녀가 지옥에서 죽지 않고 거기서 살아나왔다는 사실 뿐이다. 또다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안도감이 아니라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 살아나온 자들은 잊을 수가 없다. 평생 그 현장의 덫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날 이후 45년이 흐른 지금 북한의 사주라는 레토닉은 여전히 망령이 되어 살아남은 자들과 죽은 자들의 혼을 괴롭히고 있다.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다. 죽어서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
당시 시민 40만명, 공식 희생자수 606명, 계엄군에게 지급한 탄알 80만발, 허구가 아닌 사실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서사의 마지막에 소년 동호가 있다. 떠나보내려는 추모객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듯하다. 나의 눈에도 동호가 보인다. 기억해 줘서 고맙노라며 걸어온다. 그리고 살포시 안긴다. 나에게도 그렇게 소년이 왔다.
아마도 나는 오늘 책을 덮는 순간 또다시 기억이 지워질지 모르겠다. 몇 년 뒤 처음 보는 글처럼 다시 몸서리치며 되새김질할지언정 비겁함, 미안함에 힘들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 다가온 소년 동호가 치유도 해주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옛 전라남도청 분수대에서 다시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