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던 소년이 발걸음을 멈추고 노인에게 묻는다.
“ 어르신! 정말 그림을 엄청나게 그리셨네요.”
노인은 짐짓 놀라는 체하며 자랑이라도 하듯이 슬그머니 그림들을 펼쳐 놓는다.
“ 앞으로도 그려야 할 그림이 많이 남아있나요? ”
그제야 노인은 의자를 고쳐 앉으며 먼산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 글쎄…. 5장, 10장, 아니면 1장이 될 수도… .”
말을 잊지 못하는 노인의 눈빛에 아쉬움이 담겨있다.
“ 그런데요. 어르신, 그려야 할 그림이 많을 수록 좋은 것일까요? ”
노인도 가끔 생각했던 화두이다. 공백 없이 채웠던 그림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마냥 즐겁지 만은 않았다.
“ 그런데 어르신이 그린 그림들은 여백이 전혀 없네요.”
그랬다. 노인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여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죽이되 든 밥이 되든 채워야만 그림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백에 대하여 묻는 소년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 여백이 있어야 했을까? ’노인의 눈이 흔들린다.
“ 들여다 보니 그렇구나. 그런데 그림에 여백이 많으면 좋은 그림일까? ”노인이 반문한다.
“ 저는 여백이 없는 그림들이 어르신의 의도였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 에는 여백을 다시 만들 수 없음을 노인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 그렇구나. 그림들 에는 새로 그리는 그림은 여백의 자리를 살펴 보아야 겠구나.” 노인은 산 너머 노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소년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찡긋 눈인사를 한다.
“ 저는 지금 비워야 할 여백을 찾는 여행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