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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un 20. 2023

치열하게 글쓰기

글을 쓰는 이유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니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남편은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데 건강검진 중이라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 전화를 끊고 확인해 보니 큰애한테 부재중 전화가 열여섯 통이나 와있다. 수화기 너머로 대답 없는 엄마를 애타게 찾았을 걸생각하니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침에 콧물도 나고 기침도 좀 하길래 "오늘 엄마 퇴근하고 같이 원 가자~ " 하고 출근했던 참이었다.


내 전화를 받자마자 아이는 큰소리로 울었다.

"엄마 나 아픈데, 지금 와줄 수 있어? 열도 나고 좀 전에는 토도 했어"

만사 제쳐 두고 달려가고 싶지만, 아.. 7교시에 수업이 있는데..

교시 선생님께 7교시 수업 교체를 부탁하는 전화를 하고

그다음엔 조퇴를 하기 위해 복무 기안을 올려 교무부장과 교감선생님 결재를 받아야 한다.

마음은 다급한데 절차를 생략할 수가 없다. 공무원에게는 복무가 생명이니까...


다행히 아이는 병원에 다녀와서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죽도 먹고 약도 먹고 누워서 쉬더니 이젠 살만한가 나에게 농담도 건다.

"너 많이 아프다더니 꾀병인 것 같은데.?!" 장난스레 받아치니

"아깐 진짜 아팠는데.. 엄마 있으니까 안 아파.^^" 한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지역 국어교사 모임이 있는 날이다. 그걸 알고 아이가 "엄마 나 두고 가는 건 아니지?" 한다.

"그럼~ 당연히 안 가지! 같이 있어야지!" 했다


모임 불참 표시를 하려고 핸드폰을 찾는데 건강검진을 마친 남편이 바로 들어왔다.

"모임 있다 하지 않았어? 다녀와~"

아들은 바라보니 "이젠 아빠 있어서 괜찮아. 엄마 다녀와" 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섰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와서는 바로 쓰러져 자고 싶지만 매일 글을 쓰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실 오늘 같이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날이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리 바삐 사나? 글은 써서 무엇을 하나?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데 누굴 위해 쓰는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나 글을 쓰다 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에는 또다시 평화 찾아온다.

겉보기엔 맑아 보이지만 언제든지 헤집고 나면 온갖 것이 뒤엉켜 혼탁해지는 흙탕물 같은 내 마음. 글을 쓰는 일은 그런 내 마음이 홀로 침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리하여 다시 맑아지면 그땐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랑 있으니까 안 아프다는 아들이 기특하고, 걱정 말고 모임에 다녀오라고 등 떠밀어 준 남편이 고맙고, 교사로서 겪는 고충을 너무 잘 알기에 서로 위로하고 토닥여주는 동료들이 있어 다행이고, 하루를 돌아보며 조용히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와 글쓰기를 함께 하는 분들은 돌쟁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거나 애가 셋이거나, 워킹맘.. 그러니까 다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분들이다. 줌미팅을 할 때면 아이들이 엄마 목에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을 쓸까?

하긴.. 나는 시간이 많고 할 일이 없어서 글을 쓴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없을수록 여기저기서 치고 들어오는 일상의 균열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글을 쓴다.

 그렇데 치열하게 쓴다. 치열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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