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엄마 Jun 22. 2023

출판도전기 1화

내 돈 내 책

둘째 출산 후 육아휴직 중에 알게 된 동네 독립서점에서 글쓰기 모임을 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4주동안 사장님을 포함해 네 명이 모였다.  우리는 차를 한 잔씩 올려놓고 주제가 정해지면 그 자리에서 연필로 써 내려갔다. 글을 써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설레기도 했고, 짤막한 글이었지만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에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브런치에 매일같이 글을 쓰고 글쓰기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이 모든 시작이 동네 독립서점에서의 글쓰기 모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곳이 내겐 특별하고 의미 있다.   

그러나 그 후로 독립서점은 거의 가지 못했다. 그렇게 독립출판물에 대한 관심도 차츰 저물어갔고 가끔 sns로 서점 소식만 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눈에 띄는 피드 하나가 올라왔다.

 

작은 서점 지원사업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었는데 그중에 '북디자인'에 시선이 머물렀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출판 관련 책들도 여러 권 읽다 보니 출판 과정에도 관심이 생겼다. 출판사에 여러 번 투고를 했으나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지금은 투고를 잠시 멈추고 글쓰기에 집중하며 지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일 벌이기 선수급;;)


책 표지부터 내지 까지 내가 직접 디자인한 나만의 개성이 있는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볼까?

내 돈으로 직접 내 책을 만드는 일명 '내 돈 내 책'


후기에도 '내 돈 내산'이 달리면 뭔가 진정성이 느껴지고 신뢰감이 상승하는 법이다.  '내 돈 내 책'에도 진정성과 애정이 더욱 깃들지 않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북디자인 과정을 신청했다. 마침 수요일 저녁엔 아이들이 수영 수업을 가서 저녁시간이 여유가 있고 수영장에서 다 씻고 오기 때문에 육아가 한결 수월해진다. 일단 남편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며 부탁을 했고, 허락을 가장한 통보이지만 남편은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우주가 나를 돕는구나..)

마음을 정한 뒤에 독립서점 사장님께 디엠을 보냈다.

"사장님, 오랜만이죠? 잘 지내셨어요?~"

간단히 안부를 묻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북디자인 수업은 어도비에서 제공하는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고 하셨다. 원래 유료 수업이지만 작은 서점 지원 사업으로 하는 거라 무료로 진행하니 좋은 기회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5주간의 수업을 마치고 나면 여름방학이다. 그럼 여름 방학부터 부지런히 편집, 다지인 작업을 하면 올해 책이 나올 수 있다.(나는 다 계획이 있구나. ㅎ)


그런데 사장님께서 준비물로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었. 무료 수업이라고 좋아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다. ^^:;그러나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문한 노트북이 도착하고 어도비에서 제공하는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려고 했더니 비용이 한 달에 38000원이다. 배꼽이 자꾸 커지고 있다. 연간 결제하면 월 24000원이지만 일단 한 달만 결했다. 차라리 잘됐다. 일을 미루지 않을 이유가 생겼으니.

오늘은 수날이었다.

총 네 분이 오셨는데 다들 나보다 나이가.. 아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었다. 그리고 다들 소설이든 그림책이든 책을 쓰신 경험들이 있었다. 배움의 열정 앞에선 나이가 무색함을 느꼈다.

"무슨 책 만드실 거예요?"

"아... 전 에세이요.. " 말로 뱉고 나니 진짜 책이 만들어질 것만 같아 두근거렸다.

오늘은 인디자인 기본 툴 사용법, 단축키 사용법 등 기초작업을 배우고 실습해 봤다.

두 시간짜리 수업인데 한 시간이 지나니 슬슬 어깨가 아파왔다. 퇴근하고 아이 케어 후에 왔더니 어찌나 피곤한지 하품이 연신 나오는 바람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무언가를 배운다는 기대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도착해서 동네 북클럽 함께 하는 동생을 만났다. 지난 주말에 서울에서 열린 국제 도서 박람회에 다녀왔다고 했다. 나도 가보고 싶었지만 스케줄이 있어 가지 못해 아쉬워하던차였다.

동생은 언니 주려고 챙겨 왔다며 출판 관련 서적과 책갈피, 부채, 떡메모지 등등 그곳에서 받은 다양한 굿즈들을 쇼핑백에 넣어 선물처럼 전해줬다. 그리고  "언니, 꼭 작가가 되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책맞게 눈물이 날 뻔했다.

신이 완벽함은 주시지 않고 완벽주의만 주셔서 괴롭다는 글을 보고 나 역시 재능을 주지 않으시고 하고싶은 마음만 주셨다며 신을 원망하고픈 날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있냐며 허세를 부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열하게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